오뚝이
수천 미터 상공을 비행한다. 일본군이 점령한 태평양 마샬제도를 향해 날아간다. 루이(루이스잠페리니 영화 Unbroken)는 문득문득 지난날이 떠오른다. 펜실베이니아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술과 담배, 도둑질, 싸움으로 말썽이었다. 경찰에 붙들려 부모에게 넘겨지길 여러 번이다.
예배 중에 꾸벅꾸벅 졸다 아버지가 어깨를 흔들어 깨운다. 그때 “용서하는 마음이 하나님 마음이다”라는 목사설교가 들린다. 이태리계라고 따돌림당하며 손가락질받을 땐 참을 수 없어 반항했다. 패거리와 치받다가 경찰이 오면 부리나케 내빼기도 잘 한다. 소년원으로 넘겨질 뻔한 아들을 회초리로 다스리던 집안이었다.
섬 가까이에 이르니 대공포가 요란하다. 편대 주위에서 펑펑 터진다. 폭음에 폭격기가 흔들거린다. 맞아 곡선을 그으며 바다로 떨어지는 게 보인다. 일본 제로기가 나타나 대공포를 쏘며 벌떼처럼 달려든다. 공중전이 벌어져 필 중위 조종간이 위태위태하다. 포 조준경 루이 중위와 후방사격수 맥 하사는 폭탄투하와 기관총 사격을 시작한다.
집에서 꾸중 듣고 학교에선 불량학생으로 선도 대상이다. 어머니와 형은 철없는 망나니 루이를 불쌍히 여기고 보듬어준다. 뜀박질을 잘하는 동생에게 육상선수를 권하여 가로수 터널인 공원길을 달린다. 형이 자전거로 뒤따르며 도와준다. 토렌스고등학생인 루이는 최연소 마라톤 국가대표선수가 되어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한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육군에 입대한다. 그는 도쿄올림픽에 참가하려고 틈틈이 부대 내를 뛰고 또 달린다. 긴급구조 요청을 받고 출동하다가 그만 바다에 빠진다. 두 개 엔진이 고장 나 멈췄다. 철썩 떨어져 바다 위에 두 동강이 났다. 가라앉는 물속에서 엉킨 줄을 풀고 겨우 물 위로 올라왔다. 맥과 머리를 다친 필 세 사람이다.
다행히 고무보트에 의지해 달포나 망망대해를 흔들흔들 표류하며 지난다. 햇볕이 따가워 온몸이 타고 입술이 터진다. 조금 남은 초콜릿과 생수를 불평 많은 맥이 다 먹어치웠다. 물고기를 낚아 날 것을 뜯어먹고 내려앉은 갈매기를 붙잡았다. 새끼 상어도 끌어 올려 그냥 먹었다. 메스꺼워 막 토해낸다. 비 올 때 빗물로 목을 축인다. 지나는 비행기에 손을 흔들고 소리쳤지만 소용없다. 저 멀리 사라진다.
지쳐 쓰러질 때쯤 또 비행기가 나타난다. 연막탄을 쏘아 올리며 구조를 바랐는데 기총사격으로 죽을 뻔했다. 바다에 뛰어들어 피하다가 우글거리고 득실대는 상어 떼에게 혼쭐이 났다. 올라보니 두 보트는 총탄으로 구멍이 숭숭 났다. 겨우 때워서 하나에 의지하고 있다. 참지 못하고 절망에 안달하던 맥이 숨을 거두자 함께했던 전우를 바다에 떠나보낸다.
갑자기 거센 풍랑이 일어 파도가 넘실대며 삼킬 듯하다. 비바람이 휘몰아쳐 눈코 뜰 수 없자 “하나님 살려주시면 평생 몸 바치겠습니다.” 지쳐 쓰러져 어디까지 떠다닐 때 그늘이 지며 다가서는 게 있다. 일본 군함이다. 마킨섬 독방에 갇혀 조사받을 때 동료 해병들의 참수 소식을 듣고 오싹한다.
일본 도쿄 오모리 수용소로 옮겨지면서 천신만고를 겪었던 필과 헤어진다. 같이 뛰었던 올림픽 마라톤 선수 와타나베가 소장이 되어 나타난다. 얼굴을 알아보더니 죽도로 내리쳐 넘어뜨리길 여러 번 코피를 철철 흘리며 일어서 부동자세를 취한다. 수용소를 한 바퀴 돌아오는 달리기를 시켜 지쳐 또 쓰러지게 한다. 미운털이 박혀 수시로 불러내 참을 수 없이 괴롭힌다.
고단한 몸을 뉘어 잠들자 또 찾아와 혁대로 마구 때린다. 다음날 방송국에 나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라디오를 통해 고국으로 전한다. 그에게 또 다른 원고를 보이며 수용소를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다고 권한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거짓 선전 내용이었다. 복귀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오장의 폭행이 시작되었다. 같은 포로들을 시켜 주먹으로 뺨을 수없이 갈겨 꼬꾸라지게 한다.
미군 공습으로 도시와 수용소가 불타 폐허가 되자 기차로 눈 내리는 북쪽 나오에츠 수용소로 간다. 줄 서서 입소식을 기다리는데 그만 실신해 쓰러진다. 중사로 승진해 떠났던 지독한 와타나베가 이곳 소장이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다더니 험한 생활이 기다린다. 입을 옷도 신발도 없다. 헐벗은 굶주리는 곳에서 중노동에 처해 진다.
커다란 대바구니에 무거운 석탄을 담아지고 나르는 일이다. 온몸이 검댕으로 형편없다. 떨어져 죽는 사람이 생긴다. 갑자기 병사가 달려들어 끌어낸다. 와타나베 군조 앞에 선 루이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겁에 질린다. 무거운 침목을 들라 한다. 앙상한 루이는 힘에 겨워 비틀거리며 어깨 위로 올리고 스러질 듯 지탱한다.
거총한 병사에게 명령한다. 떨어뜨리면 사살하라. 무슨 힘이 있어 견뎌내나 곧 죽음이 어른거리며 다가옴을 느낀다. 팔에 힘이 빠져 목덜미로 내려온다. 지옥에서 살아나가야 이긴다는 상급자의 말이 떠오른다. 모든 걸 참고 참아야 한다는 게 스친다. 용서가 하나님 마음이라는 설교와 폭풍에 살려달라며 빌던 게 생각난다.
배 위로 석탄을 나르던 포로들이 루이 조금만 참아 참아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젖먹은 힘을 다해 번쩍 들어 올리며 소리친다. 도쿄올림픽을 꿈꿨던 그는 금메달을 향해 달리고 있다. 약이 오른 와타나베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달려들어 죽어라 패댄다. 발로 차고 주먹으로 얼굴을 내리친다.
모진 목숨이라 살아나서 호쿠라 강으로 몸을 담그며 들어간다. 연합군에 이겨도 져도 포로는 살 수 없단다. 모두 죽인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밀어 넣고 있다. 불안에 떤다. 그때 별이 그려진 미군 폭격기가 날아든다. 팔을 높이 들어 환호하고 흔들며 목청껏 소리쳤다. 하늘에서 쏟아진 캔과 과자, 빵, 음료를 먹고 마시며 웃음과 울음을 터뜨린다.
방문을 열고 조심조심 들어간다. 작은 침대가 있고 옆에 두들겨 패며 얻어맞던 죽도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다. 벽엔 미처 떼지 못한 사진이 걸렸다. 해군 군관 아버지가 어린 아들 와타나베 손을 잡고 다정히 서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