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날을 챙기며 살아온적은 없지싶다. 꽃 좋아하지 않는 사람 없다면서도 가격에 놀라 왜 샀느냐고 핀찮아닌 핀찮을 하며 살았다. 내가 마음들여 꽃을 사본적도 없다. 내 어머니 말씀마따나 "지천이 꽃인데 꼭 돈을주고 살필요가 있겠냐"는 심정을 공감하는 이유도 뭐겠는가. 늘 돈이 부족해서다. 그리고 오늘이 어버이날이다. 내가 늘 부담스러워 했던 것 처럼 지금의 내 아이들도 그러하겠지. 어제저녁 며늘의 전화를 받으면서 자꾸 힘이 드는것을 느꼈다. 전화받는거 자체가 힘들었은까. 엇그제 사촌과 전화하는데도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는데,,, 어머니도 그러셨다. 그냥 숨이 찬다고. 또 있다. 배가 불편할 정도로 부르다. 그런데도 정작 뭔가 먹을게 없을까 냉장고를 스킨하는 나를 본다. 허해선가. 모르겠다. 임박했다는 증좌라면 몰라도. 오늘 하루도 선물로 주신것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어찌 기쁘지 않는것인지 모르겠다.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산다는것은 큰 축복이 맞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세상이 좋다는 말도 있는데, 어쩌다가 오래사는게 재앙이 되는 세상이 된것일까. 3-4대가 모여살던때가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가족간에 갈드이 왜 없었겠는가. 시집살이는 매섭고도 매서웠다고 했다. 오늘날에와서 시집살이라면 경기를 이르키게된 단초가 그래서 였는지는 모른다. 사람이 모인곳에는 서렬이 따르고, 권력이 집중되는 부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가족간에도 마찬가지 였을게다. 양보가, 협력이 배려가 쉽지는 않음을 안다. 그것을 잘 할수 있는 가정,혹은 가문은 형통했을테고, 그렇지 못한 가정,혹은 가문은 멸망을 당길수 밖에 없었을태고.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네집 네가 챙기고, 내집 내가 챙기고"가 화두처럼 되어버린 오늘날인듯 싶지만, 지금도 서로를 배려하고 협력하며 살아가는 착한 보통사람들이 더 많다고 본다. 각자도생이 판을 치고, 차라리 혼자인게 더 좋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책임을 다하기 싫다면 혼자가 좋고, 당연하다. 남을, 가족을 희생시켜가며 자신의 유익만을 실천하는 못된 사람들은 당연히 도퇴되길 바라마지않는다. 어쩌면 나야말로 그런 사람중에 하나가 아닐까. 이기심으로 가득차 있는것은 네가 아니라 바로 나 임을 고백한다. 다른 사람들의 배려가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았다. 어려서는 몰라서 그랬다지만 다 자라고 어른이 되어서까지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나에게는 늘 나 뿐이었다. 어쩌면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게 그점이 아니었을까. 오늘날에 와서도 받는게 더 좋다는 생각에서 못벗어났다. 어제는 어버이날이라며 놀이터에서 떡을 나누어 준다며 나오라는 전화를 받고, 좀 뻘줌하기도 했지만 분명히 좋아서 입이 헤벌죽했다. 받은 떡봉지가(바나나 한개, 과자 한개, 물한병, 그리고 떡) 허접하다고 속으로 불평을 했다. 뭘 기대했는데? 그거나마 나는 나누어 본적이 없으면서? 걷으로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이게 내 실체다.매를 버는 악한 습성이다. 주님, 이러고 사는 모습을 언제까지 보고 계시렵니까. 더 많은 죄를 짓게되기전에 부르심이 마땅하지 않겠는지요. 불쌍히 여기시고 살펴주십시요. 간절히 바람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