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USS 인디애나폴리스가
미국 현지개봉으로는 9월1일 개봉했네요.
원제는 USS INDIANAPOLIS MEN OF
COURAGE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명작 영화 죠스에서
상어잡이를 하는 퀸트가 식인상어를 잡으러
가는 배에서 서장과 해양학자에게 이야기하죠.
자신이 USS인디애나폴리스에 타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배가 침몰한지 반시간쯤 지났을까.
엄청난 수의 상어가 몰려왔다.
큰 놈이었다. 놈들은
우리들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상어의 눈이 가만히 우리들을 응시했다.
마치 죽은 사람의 눈 같은 새카만, 인형같은 눈.
하지만 상어가 인간을 물기 시작하자
그 검은 눈은 새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비명이 울리며 바다가 시뻘겋게 물들기 시작했다.."
퀸트의 이 대사는 죠스에서 다른 장면보다
더 기괴했죠.
그 이유는 이 인디애나폴리스 사건이 실화이기
때문이죠. 소설을 바탕으로 한 죠스영화와 달리..
이 인디애나폴리스 사건은 미 해군의
정말 바보같은 짓의 집합체였고
그들은 모든 죄를 맥베이 함장에게
뒤집어 씌웠죠.
맥베이는 1968년 온갖 모욕을 견디다가
결국 자살로 비극적 삶을 마감합니다.
그의 명예가 회복된것은 2000년
이었습니다.
USS 인디애나폴리스 함은 1930년대에 취역한 중순양함으로 몇 번의 개장을 받아 화력과 대공지원능력을 향상시켜 오키나와 공격에도 참여했으며 카미카제 공격으로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혁혁한 전과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형 전투함은 자체 스크류 소음이
크기 때문에 대잠작전 관련 장비는 탑재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었고, 따라서 구축함급 이하의
호위함 대동이 필수사항이었습니다.
1945년 7월 16일,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한 인디애나폴리스는 함장 찰스 B. 맥베이 3세
대령의 지휘 아래 1,196명의 승조원을 태우고, B-29가 출격 대기 중인 티니안 섬으로 향합니다.
여기에는 역사를 뒤바꿀 물건인 원자폭탄,
리틀보이의 재료. 고농축 우라늄을 싣고 있었습니다.
리틀보이는 1945년8월6일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이죠.
당시 미 해군은 이 임무를 극비임무로 취급했으며 일본 해군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중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가 단독으로 이동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맥베이 대령은 호위함을 여러번 요청했으나
지휘부는 이를 묵살했죠.
1945년 7월 28일, 무사히 화물을 실어나른 인디애나폴리스는 다음 작전을 위해 필리핀
레이테 섬으로 이동을 시작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이미 비밀 준수가 필요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상부에서 호위함을 붙여주지 않아서 단독으로 항해합니다.
그리고 7월 30일 새벽. 일본 잠수함 I-58은 이를 발견하고 어뢰 6발을 발사, 2발을 명중시키며 인디애나폴리스를 격침시킵니다.
침몰에 걸린 시간은 약 12분.
침몰 직후 함장은 즉시 구조신호를 보내고, 승조원들에게 퇴함 명령을 내려, 폭발 직후 사망한 300여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승조원들이 모두 탈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생존자는 900명에 가까웠고.
거기서 빨리 구조가 이루어졌으면 모두가 생존했겠지만…
무려 4일이나 지난 1945년 8월 2일, 정기적으로 정찰을 하는 해군 항공기가 처음으로 바다위에
떠있는 생존자들을 발견하고 구조를 시작하였고,
그 후 약 이틀간 구축함까지 동원되어 모든
생존자를 건져올립니다.
그러나 남은 최종 생존자는 316명이었습니다.
약 5일간, 생존자들은 바다 위에 떠 있었고, 식수나 의약품이 매우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바다위에서 탈진한 승조원들은 서서히 죽어가거나 환각증세까지 보였고, 그 주변해역은 상어 떼의 출몰지로, 상어들은 처음에는 시체를, 그 다음에는 주변의 부상자를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해군 수상기가 구조하는 도중에도 상어가 생존자를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상황까지 발생했습니다.
당시 생존자들은 맥베이 대령이 지휘하는 그룹과 군의관이 지휘하는 그룹, 또 다른 한 명의 장교가 지휘하는 그룹의 세 그룹으로 나뉘어 표류했는데, 군의관이 지휘하는 그룹에서는 군의관이 사망하는 승조원들의 인식표를 일일이 모으다가 군종관이 사망하자 절망해 모아둔 인식표를 바다에 던져버리기도 했습니다.
맥베이 대령은 이 순간까지도 구조신호를 계속 보냈고, 조명탄, 거울까지 동원해 구조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었습니다.
침몰 직후의 구조신호는 근처의 미 해군 수신소가 감지했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행동을 취하지 않았는데.
한 수신소는 당직사관이 술에 취해서 쳐자고 있었고 다른 수신소는 당직사관이 노느라 신호자체를 무시했으며, 다른 수신소는 일본 해군의 계략이라고 판단해 구조신호 자체를 무시했습니다.
후에 맥베이 함장이 구조된 후 해군본부에 바다에 떠있는 5일간 왜 구조요청이 없었는가를 물어보았으나, 해군본부의 대답은 그런 구조신호는 없음이었습니다.
때는 일본의 패전이 짙어오는 시기였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감히 미 해군의 함선을 가라앉힐 거라 의심하지 않았던 시기이긴 했지만, 가뭄에 콩 나듯이 피해가 발생하긴 했습니다.
인디애나폴리스가 침몰하기 6일 전 그 해역에서 미 구축함 한 척이 잠수함의 공격으로 침몰한 경우도 있을 정도였으니 확실히 안심하기는 이른 시기였던 셈이지만.
해군본부는 함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도 않는 중대한 실책을 저지릅니다.
설상가상으로 7월 31일에 레이테 섬에 도착해야 할 배가 제 때에 도착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관심하나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도 해군은 책임 떠넘기기 식으로 함장인 맥베이 대령을 군사재판에 회부합니다.
해당 군사재판이 결국 책임 떠넘기기가 된 것도 미해군은 제 2차 세계대전 동안 약 700척의 군함을 잃었지만 자신의 함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된 함장은 맥베이 대령이
유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책임 떠넘기기에 걸맞게 죄목도 "적의 공격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서 함을 침몰시킨 것"이었습니다.
맥베이 대령은 이후 체스터 니미츠 제독의 사면으로 인해서 복직은 하였지만 1949년 소장 계급을 끝으로 예편되었습니다.
전쟁 중 생존한 항해/항공병과 동기들이 대부분 중장이나 대장으로 예편한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의 불명예 제대였죠.
이 후 유족들의 비난을 뒤집어쓴 채 맥베이 제독은 1968년 70세의 나이로 자택에서 권총으로 자살합니다.
실제 찰스 맥베이 대령(왼쪽 사진:
당시 인디아나폴리스 함 함장)과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찰스 맥베이의 억울함을 벗겨준
소년 헌터 스콧( 오른쪽 사진)
헌터 스콧은 그후 미 해군 대위로
복무중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11살 소년(1985년생)이었던
헌터스콧은 National History Day 라는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서
'Triumph & Tragedy' (승리와 비극)이라는
그 해의 테마에 어울리는 미국 역사 기념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죠스 시리즈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
흥미를 가지고 자료를
모아보게 됩니다.
그런데 실제 기록이 별로 남아있지 않자,
약 150명 가량의 생존자들을 직접 인터뷰하여
자료를 모으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맥베이 제독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었음을 알고, 숙제를 넘어서서 제독의
명예회복을 위한 탄원 운동을 벌이게 됩니다.
이 소식은 언론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고,
1999년 미국 상원 군사위원장 존 워너 의원을
통해 미의회 공식 결의안으로 오르게 되었고..
그리고 엄청난 편지가 존 워너 의원 앞에 전달되었으니… 다음과 같았죠.
"미합중국 상원 군사위원장 존 워너 의원 귀하
저는 당시 USS 인디애나폴리스 함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던 일본제국 해군 잠수함 I-58의 함장이었던
전 제국해군 중좌 하시모토 모치츠라입니다.
저는 귀하의 결의안이 1945년 7월 30일 격침된 미해군 중순양함 USS 인디애나폴리스의 함장 故 찰스 버틀러 맥베이 3세 대령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어뢰공격을 지시했던 장본인으로서
저는 맥베이 대령이 왜 군사법정에 세워졌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경계태세를 소홀히 했다는
유죄 이유도 납득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전 인디애나폴리스가 어떤 상태라도
격침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인디애나폴리스의 승조원들은 끔찍했던
전쟁과 그 결과에 대해 서로를 용서했으며, 이제 귀하와 귀하의 나라도 인도적 차원에서 맥베이 대령에게 씌워진 부당한 혐의를 벗겨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전 I-58 함장, 제국해군 중좌 하시모토 모치츠라."
인디애나폴리스를 격침시킨 I-58함의 하시모토
모치즈라 함장(해군중좌)의 모습.
맥베이 함장의 억울함을
벗기는데 그도 노력하죠.
그의 서신이 아니었다면 맥베이의 명예회복이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2000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맥베이 함장을
비롯한 생존자 316명에게 은성무공훈장을
수여하고 맥베이 함장의 명예를 복권시킵니다.
I would not have hesitated to serve under
him again.
His treatment by the Navy was unforgivable and shameful.
저는 다시 그런 상황이 와도 그의 밑에서 일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것입니다.
해군이 그에게 내린 처사는 용서할 수 없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1999년 설립된 추모비 앞에서, CA-35 인디애나폴리스의 생존자 플로리안 스탐.
아래는 영화 죠스에서 퀸트가 말한 인디애나폴리스
회상장면과 이번 9월에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USS인디애나폴리스 예고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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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애나폴리스 구조 당시 장면.
첫댓글 헐 대박이네요
상어봐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