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박사 부부가 있었다.
평소 부모에게 전화를 하면“잘 계세요?”
“건강은 어떠세요?”
“잠은 잘 주무세요?”
서로 안부를 묻고 답하는 평범한 전화였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면서 전화의 내용이 달라졌다.
“아이가 요즘 밤에 자꾸 깨요.”
“밤만 되면 울어서 우리 부부가 잠을 못 자요.”
평소에는 잘 놀고 잘 자던 아이가
요즘 들어 밤만 되면 칭얼거리니
부부가 걱정이 된 것이다.
자식이 생기면 부모에게 묻는 질문도 달라진다.
원리를 알면 질문이 되지만,
원리를 모르면 부모에게
대묻거나누군가의 탓을 하게 된다.
첫아이가 태어나면 예전부터 삼칠일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장모님이 미역 한 꾸러미를 들고 딸의 집에 와서
21일 동안 산모를 돌봐준다.
그리고 삼칠일이 지나면 말씀하신다.
“이제 둘이서 잘 키워라.”
백일이 되면 백설기를 만들어 이웃과 나누고,
돌이 되면 친척들이 찾아와
아이의 성장을 함께 축하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번쯤 물어볼 필요가 있다.
왜 삼칠일이었을까?
왜 백일이 중요했을까?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단순히 자식을 하나 얻었다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부부는
처음 혈육이라는 인연을 만난것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다가
아이를 맞이하면서 비로소 부모가 된다.
아이의 탄생은
두 사람이 부모가 되는 첫 번째 공부이기도 하다.
삼칠일 동안에는 어른의 도움을 받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부모가 직접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
백일안에
“우리는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단순히 내 자식으로 잘 키우겠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귀한 생명을 우리에게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아이가 바르게 성장하여
사회와 나라를 위해 뜻있고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져보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아이는
‘내 아이’이면서 동시에 ‘우리 아이’다.
우리 부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키워준다는
고마움도 알게 된다.
그러면 밤에 아이가 우는 것도
단순히 잠을 못 자게 하는 일이 아니라
부부에게 던지는 하나의 질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아이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는 부모로서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자연이 있다, 없다를 먼저 따지기보다
두 사람이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부터
서로 의논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식이 있어 부모가 되고,
백성이 있어 임금이 존재한다.
아이의 탄생은
부부가 처음으로한 생명을 함께 책임지는 일이자
서로 의논하고 대화하며 실행해야 하는
첫 번째 공동의 미션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자식이 던지는
질문 속에서
부부가 함께 배우고,
아이를 이해하고,부모가 되는 원리를 찾아보아야 한다.
자식은
때로 말을 하지 않고도
부모에게 묻는다.
엄마 아빠 나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요?”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것이
자식을 키우는 첫 공부가 아닐까.
같이 연구해 보아야 한다.
2026년 8월 26일사회연구원 김수길
육아일지를 왜 써야 하는지
자식이 태어나면
시험을 본다.
연구한것이 있다면
풀어서 이해를 시키고
필요한 질문을 하고자 다가온다.
질문은
예상 문제에 없는 질문은 존재하질 않는다.
정법강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