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는 1786년 6월 3일에 충남 예산 왕궁리에서 태어났다. 1809년 24살이 되었을 때 청나라 방문 사절단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연경 사행(使行) 길에 올랐다. 그는 출발 후 며칠 되지 않아 생원시 합격 교지를 발급 받는다. 생원 시험은 오늘날로 따지면 철학 과목을 테스트하는 과거 시험이다. 생원시 합격자들은 대체로 따지기 좋아하고 원칙주의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많았다고 한다. 반면, 진사시는 문학 과목을 주로 테스트하는데, 진사시 합격자에는 둥글둥글한 성격의 소유자가 많았다고 한다. 아무튼 생원시 합격자 추사는 연경에 도착한 후 당대 최고의 늙은 학자였던 “옹방강”과 같은 여러 학자들을 만나 학문에 대해 토론하면서도 당시 인기가 높았던 명소(名所), 즉 천주교 남당이나 자금성 같은 곳에는 가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이 목적이지 관광지 탐방은 그의 관심이 아니었던 듯하다.
추사는 평생 잠을 자지 않았다는 증언이 있다. 추사 자신도 “나는 평생 잠이 없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예 잠을 자지 않았다기보다는 눈을 뜨고 있는 동안에는 흐트러짐 없는 상태를 유지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의 냉정하고 원칙주의적인 성격은 억울한 귀양살이를 초래한 원인으로도 파악된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이미 처벌받은 경미한 사안에 연루되어 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김정희가 억울한 귀양살이를 하게 된 것은 천재를 시기한 범재들의 시기심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2. 오늘의 강사 정후수는 누구인가?
정후수 교수는 디테일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는 꼼꼼한 학자다. 그는 역관 출신의 우선(藕船) 이상적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어로 씌여진 해린척사라는 책을 6개월 동안 읽었다. 이상적에 대한 연구는 그와 많은 편지를 주고받은 스승 김정희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다. 그는 김정희의 청나라 사행 경로를 일일이 탐방했다. 추사의 청나라 방문은 1809년 10월 28일 한양을 출발하여 의주와 책문을 거쳐 청나라의 원래 수도였던 북쪽의 심양을 들른 뒤 다시 서쪽으로 향해 산해관을 거치고 12월 25일 연경에 도착할 때까지 무려 3100리에 걸쳐 이루어졌다고 한다. 정후수 교수는, 통과가 어려운 북한 땅과 통행이 금지된 중국 내 고속도로를 제외하고, 과거 추사가 걸었던 동토의 사행(使行) 길을 따라 겨울 서북풍을 정면으로 맞아가며 혼자 걸어가 보았다. 추사와 같은 내적 체험을 해 보고 싶어서였다. 북경에 도착해서도 옹방강이 살던 보안사, 기적적으로 완원을 만났다는 연성공부, 추사의 송별연을 베풀었던 사공사, 추사의 유명한 시(자오천)에 영감을 준 자오정(호강회관)도 직접 탐방했다. 이 같이 꼼꼼한 현장 탐방과 문헌 연구를 통해 추사가 옹방강을 만난 날짜는 1810년 1월 29일이 아니라 1809년 12월 29일이라는 설득력 있는 증거도 찾아냈다.
그는 추사의 세한도를 보고 거기에 제찬(題讚, 칭송하는 글)을 올린 학자들을 추적해 보았다. 세한도를 감상한 사람들은 총 19명인데, 그 중 20대는 1명, 30대 7명, 40대 3명, 50대 1명, 60대 2명이었다. 이들 중 다수는 오늘날의 중국 인명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중국의 이름난 지식계층이거나 과거시험 합격자들이고, 당대 문화의 꽃이라고 볼 수 있는 강소省의 소주(蘇州)와 항주(抗州) 출신들이었다. 또한 그는 추사와 우선 사이에 오고 간 편지를 통해 세한도 이외에 또 다른 그림 “해객금준第二圖”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여기에 기념사를 쓴 23인에 대해서도 추적해 보았다. “海客琴樽第二圖”는 중국인들이 세한도를 보면서 놀라워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오늘날 전해오지 않으나 여기에 붙인 제사(題辭)는 전해온다. 이 제사에는 1846년 1월 연경에 사는 매증량으로부터 시작해 1861년 12월 호북성에 사는 정요손에 이르기까지 모두 23인이 15년에 걸쳐 글을 보탰다. 이들 역시 세한도에 제찬을 올린 사람들 위주로 구성되며 현재의 중국 인명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당대의 지식인들이라는 점을 정후수 교수는 밝혀냈다.
3. 정후수 교수가 찾아낼 수 없었던 세한도
김정희는 1840년 평범한 사람들의 미움을 사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그의 제자 이상적은 중국에 사신단으로 갔다 올 때마다 입수한 좋은 책들을 유배지의 추사에게 보내 주었다. 크게 고마움을 느낀 추사는 1844년 여름에 ‘권력을 잃고 세상 쓴 맛을 봐야 진짜 친구를 알게 된다’는 요지의 감사 답장을 보냈다. 여기에 세한도를 덧붙였다. 크게 감격한 이상적은 중국에 가서 이 그림을 중국의 유명인사들에게 보여주고 그에 대한 평가를 받아오겠다는 편지를 남긴다. 그리고 실제로 세한도 제찬(題讚)을 받아오고, 아울러 세한도를 감상하는 모습을 그린 해객금준제이도에 대한 제사(題辭)를 부탁하고 귀국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해객금준제이도 제사는 중국에서 15년 후에 완성되어 이상적에게 들어온다.
세한도는 특이한 그림이다. 세한도에 그려진 집은 제주도에는 없는 집이다. 둥그런 입구를 기준으로 보면, 집을 바라보고 왼쪽에 서서 그린 듯하고 대문 위 삼각형 지붕을 기준으로 바라보면 정문에서 바라보고 그린 듯도 하다. 건물 지붕을 기준으로 바라보면 위에서 그린 것 같다. 이런 신기한 그림을 당대 중국의 지식인들은 열심히 살펴봤고, 그들이 세한도를 구경하는 모습도 해객금준제이도에 담겨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정작 추사의 문집에는 세한도의 내용과 관련된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세한도를 감상하고 적은 중국인들의 제찬에도 정작 세한도라는 놀라운 그림에 대한 칭송의 글은 없다. 그렇다고 세한도를 그리게 된 동기, 즉 “우선 이상적의 의리와 절개에 고맙다”고 한 김정희의 말에 대한 평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상적의 절개와 의리에 대한 칭찬의 말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절개가 곧은 김정희에 대한 칭송의 글로 일관되어 있다. 교통·통신 수단이 발달되어 있지 않은 1840년대에 당대의 지식인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해 해객금준제이도라는 그림의 모델로 삼고, 세한도 제찬을 받아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정후수는 이상적이 당시의 집권자들에게 김정희의 제주도 귀양을 빨리 풀어달라고 호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한도를 이용한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 즉, 당대 중국 지식인들에게 부탁하여 세한도 “제찬”을 작성한 뒤 이를 조선의 정·관계 인사들에게 보여주고 다닌 게 아닌가 추측하였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세한도가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 맞는 지에 대한 의문이다. 당시의 김정희는 유배된 몸이지만 다른 양반들과 마찬가지로 필경사를 두고 있었다. 필경사는 양반이 글을 잘 쓸 수 있도록 끊김 없이 연속적인 좋은 질의 화선지를 만들고 화선지에 쓴 글을 병풍이나 문집으로 잘 가다듬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김정희의 그림은 종이의 질도 낮고 여러 장의 화선지가 불연속적으로 이어져 붙어 있다. 정후수 교수는 필경사가 늘 양반 옆에 붙어있는 것은 아니며, 김정희가 이상적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다가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는 필경사가 부재중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아이디어가 사라지기 전에 추사가 직접 질 낮은 화선지를 이리저리 조잡하게 붙여 세한도를 그렸을 것이라고 선의(善意)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후수 교수는 북경 경매시장에 출품된 팔대산인(八大山人)의 “세한도” 얘기를 들려주었다. 팔대산인은 추사보다 150년 이전에 중국에서 활동한 황족 출신의 화가이다. 2010년 5월에 북경 경매장에 나온 세한도는 팔대산인이 1705년에 그린 작품이라고 소개되었지만, 1844년에 추사에 의해 그려진 세한도와 거의 완전히 똑같은 그림이었다. 이 그림은 낙찰은 되었지만 낙찰가가 얼마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정후수 교수는 추사의 세한도와 똑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붓끝에 생동감이 부족해서 진품이라기보다는 가품, 또는 가치가 높지 않은 그림으로 평가됐을 것이라는 식의 얘기만 슬쩍 덧붙였다. 그러나 아무리 가짜 그림이라 하더라도 왜 하필 140년 후에 그려진 김정희의 세한도와 똑같은 그림을 모방해서 팔대선인의 그림으로 경매에 내 놓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해서는 꼼꼼하기 그지없는 정후수 교수도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4. 명품인가, 허위인가?
정후수 교수는 세한도를 명품으로 평가했다. 세한도와 그 제찬(題讚)은 타협을 모르는 원칙주의자로서 권력자에게 버림을 받은 추사 김정희를 위해 제자 이상적이 헌신적으로 뛰면서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상적은 중국에 사신단으로 가면서 세한도에 대한 감상문을 쓸 준비하라고 미리 편지까지 적어서 19명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고, 결국 16명으로부터 세한도 제찬(題讚)을 받아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제찬(題讚)의 주인공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즉 자신의 진심이 훼손되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상적이 김정희에게 보여준, 제주도까지 왕복한 세한도 제찬(題讚)은 원본이 아니라 (조작이 가능한?) 필사본으로 추정된다. 세한도의 명품적인 가치는 이상적의 사후에도 이어진다. 세한도는 이상적이 죽은 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후치츠카의 손에 들어간다. 이를 알게 된 한국인 손재형은 해방 후 일본으로 돌아간 후치츠카로부터 세한도를 받아내기 위해 설득에 설득을 거듭한다. 후치츠카는 그에게 감복하여 결국 공짜로 세한도를 넘겨준다. 당시 부자였던 손재형은 이를 공짜로 받지 않고 그를 위해 도서관을 지어준다. 세한도는 이런 아름다운 스토리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명품이다. 허접한 종이에 그려졌고, 세한도에 붙은 제찬에 그림이나 편지 내용에 대한 평이 하나도 없고, 심지어 세한도를 김정희가 그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러나 불과 한달 전까지 사피엔스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사피엔스 책을 이리저리 읽어 본 독자이자 오늘 강의를 진지하게 들은 수강자들이라면 세한도가 그런 명품이라는 진단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모든 신화는 붕괴된다. 인간이 짐승보다 낫다는 것도, 심지어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것도 신화이다. 신화는 그걸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허위의식에 의해 유지되지만, 신화가 포용할 수 없는 짐승이나 일단의 사람들은 신화로부터 고통을 받는다. 신화를 믿는 사람들은 신화가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렵고,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그걸 지키고 싶어 한다.
세한도가 김정희가 그린 진품이 아니고 이상적이 중간에 어떤 조작을 했다 하더라도 고지식한 원칙주의자 김정희의 역사적·학문적 의의, 그리고 절개와 의리를 가진 이상적의 인간적 면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상적 연구자인 꼼꼼한 정후수 교수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만일 세한도가 추사 김정희의 진품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나. 추사는 눈치가 없는 샌님이거나 복권(復權)을 위해 미필적 고의를 저지른 나약한 지식인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상적은 김정희를 통해 권력의 세계에 발을 디디고 싶은 야심가로 그려질 수도 있다. 세한도의 수수께끼를 파헤치거나 그러고 싶어 하지 않을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 씁쓸했다. 세한도가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 또는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내고 싶어 하는 것, 이 모두는 신화나 우상 없이는 하루도 살기 힘든 우리 사피엔스들의 허위의식 때문일 것이다.
첫댓글정기 강좌를 듣지 못해도 주백님 덕분에 강의의 일면을 알 수 있어 늘 든든합니다. 소설이라 주장하시는 강의 후설 아주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아무 의문없이 신화를 믿어버리고 걍 지나갈 것 같은데, 주백님의 마지막 문단 덕분에 한번 생각하고 넘어갑니다.^^
저에게는 충격적인 강의였는데, 강사님은 선문답 식으로 마무리 하시더군요. 제가 잘 이해했는 지도 불확실하고.. 결과적으로 자극적인 마무리 글을 남기게 되었지만, 그건 그냥 강의 메시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일 뿐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마셔요. 뒷 문단은 저도 맘에 안 들어요. 암튼 강의를 직접 들으셔야 했는데.
인간이 살아가는데는 붕괴될 수밖에 없는 신화만이 존재하고.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지키고 싶어하는 신화만 존재한다고 보진 않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치않는. 동물이건 사람이건 공히 존재하는. 관계속에 지켜야 할 어떤 것 '신의'라 할 수도 있는 그것이 신화대신 존재하여 우리를 '우리'로 만든다고 생각됩니다.
늑대간에 서열을 지키고 무리를 위해 어려움을 감수하고 공동으로 새끼를 키우고 이런것은 동물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존과 관련하여 혹은 생존을 넘어서 키워낸 자식을 뒤로하고 죽을 때는 무리를 떠나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숭고함까지
ㅎㅎ제가 실은 마지막이 진호님 처럼 '이건 뭐지?'싶었지요 그러다 뒷풀이 준비하느라 질의 응답도 다 못들어서~~~ "제가 오가며 마무리를 잘 못들어서 그런데 그럼 세한도가 추사의 원 창작품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까?"하고 교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제 주변사람들이 무슨 그런 뜬금없는 질문을 하느냐는 표정을 지었고 교수님은 말이 없으셨지요
ㅎㅎ저야 말로 교수님의 좀 더 재미있게 강의하려던 추리소설 기법에 말려들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집중한체 달을 보지 못한건 아닌지 싶더라고요~~^^ '추운 겨울이 된 뒤에나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게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무엇보다 오랜세월 의의를 지녀온 세한歲寒에 집중하면 될것 같습니다.
첫댓글 정기 강좌를 듣지 못해도 주백님 덕분에 강의의 일면을 알 수 있어 늘 든든합니다. 소설이라 주장하시는 강의 후설 아주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아무 의문없이 신화를 믿어버리고 걍 지나갈 것 같은데, 주백님의 마지막 문단 덕분에 한번 생각하고 넘어갑니다.^^
저에게는 충격적인 강의였는데, 강사님은 선문답 식으로 마무리 하시더군요. 제가 잘 이해했는 지도 불확실하고.. 결과적으로 자극적인 마무리 글을 남기게 되었지만, 그건 그냥 강의 메시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일 뿐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마셔요. 뒷 문단은 저도 맘에 안 들어요. 암튼 강의를 직접 들으셔야 했는데.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이날의 강의를 통해 세한도의 위대함을 안것이 아니라 세한도에 얽힌, 그 그림이 유명하게된 스토리를 통해서 '관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생각엔 세한도가 추사가 그린 그림이 아닐지라도 그 그림과 글에 담긴 이상적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담겨있어 추사의 이미지가 손상될것 같진 않고요
또 이에 보담하거나 꼭 보답이 아니더라도 19인의 중국 문인을 모아 추사의 귀향에 대한 탄원의 의도를 담았더라도 이런 과정들이 담긴 세한도 속의 제찬의 글들은 관계의 소중함과 이상적의 정치적 야심보다는 그 모든 번거로움을 감수한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는 붕괴될 수밖에 없는 신화만이 존재하고.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지키고 싶어하는 신화만 존재한다고 보진 않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치않는.
동물이건 사람이건 공히 존재하는. 관계속에 지켜야 할 어떤 것 '신의'라 할 수도 있는 그것이 신화대신 존재하여 우리를 '우리'로 만든다고 생각됩니다.
늑대간에 서열을 지키고 무리를 위해 어려움을 감수하고
공동으로 새끼를 키우고
이런것은 동물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존과 관련하여 혹은 생존을 넘어서
키워낸 자식을 뒤로하고 죽을 때는 무리를 떠나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숭고함까지
바로 그런면의 숭고한 관계의 관점에서의 <세한도>를 저는 보았습니다~~^^
덕은 쌤도 그렇고 제 결론에 따뜻한 관심, 혹은 불편함을..
ㅠ ㅠ 소설로 읽어달랍시고 쓰다 보니 마무리가 좀 막 나갔죠...
근데 구태여 소설로 읽어 달라고 우긴 이유는요.
1. 세한도를 그린 사람이 김정희가 아닐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충격과 당혹감..(지금도 여전히..)
2. 정교수님이 그걸 인지하고 있다면 구태여 덮어두려는 이유(학자로서)
이런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몰라서입니다. 신화 어쩌구..한 제 허접한 결론은 그냥 구색 맞추기로 봐 주시면 감사
ㅎㅎ제가 실은 마지막이 진호님 처럼 '이건 뭐지?'싶었지요
그러다 뒷풀이 준비하느라 질의 응답도 다 못들어서~~~
"제가 오가며 마무리를 잘 못들어서 그런데 그럼 세한도가 추사의 원 창작품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까?"하고 교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제 주변사람들이 무슨 그런 뜬금없는 질문을 하느냐는 표정을 지었고 교수님은 말이 없으셨지요
ㅎㅎ저야 말로 교수님의 좀 더 재미있게 강의하려던 추리소설 기법에 말려들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집중한체 달을 보지 못한건 아닌지 싶더라고요~~^^
'추운 겨울이 된 뒤에나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게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무엇보다
오랜세월 의의를 지녀온
세한歲寒에 집중하면 될것 같습니다.
@장유경 놀랍네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하실 수가..
꼼꼼하신 정후수 교수님도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네요. 힌트는 열심히 주시고 끝까지 침묵하시는..
진호님의 꼼꼼한 강의 후기 잘 읽었습니다 ~~^^
진호님의 치밀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군요~~^^
그림에 얽힌 이야기가 이토록 무궁무진한 것이 참 신기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이 그림은 덕분에 계속 살아있겠죠.
정후수교수님도 멋있는 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