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우편배달부
강회진
일요일에 우편배달부가 온다 편지를 쓰는 사람이 없으니 그는 빈 손이다 화요일에 우편배달부가 온다 편지를 받을 사람이 없으니 빈 우편함이다 상심한 얼굴로 되돌아간다 수요일에도 우편배달부가 온다 물끄러미 나의 얼굴을 바라보다 간다 목요일에 우편배달부가 온다 그가 안쓰러워 매일 그를 기다리던 나는 편지를 쓰기로 한다 금요일의 우편배달부는 우편함에서 편지를 꺼내 환한 얼굴로 나에게 전해준다
나는 빈 냉장고에서 날마다 스멀스멀 땅으로 손을 뻗치는 거대한 고구마줄기에 대해 쓴 편지를 읽는다 냉장고는 거대한 어항, 밤새 웅웅 혼자 방을 넓히며 수초를 키워내지 어항의 문을 열고, 문을 닫고, 나는 비늘갈이를 시작했어요 사랑해요 사랑하지 마 어쩌죠? 벌써 사랑해버린 걸요 어서 돌아와 예전처럼 내 가슴에 차가운 이빨을 박아주세요
토요일의 우편배달부는 휴가를 떠났다 나는 다섯 통의 편지를 써 우편함에 놓은 후 지느러미를 접고 강구江口로 간다 이제 일요일, 편지의 해독은 여인餘人의 몫이다
[일요일의 우편배달부] /문학들
우편배달부는 편지를 배달하고 싶다. 그러나 아무도 편지를 쓰지 않는다. 우편배달부는 당연히 빈 시간들을 왔다 간다. 빈손의 그는 상심한다. 드디어 그 우편배달부를 위로해 주기 위해 화자는 편지를 쓴다. 편지는 무엇인가? 사랑인가? 가버린 사랑에 대한 추억인가? 화자의 편지는 혼자 사랑하며 자아의 궁핍을 벗는 ‘비늘갈이’다.
화자는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우편배달부가 휴가를 떠난 토요일도, 일요일도 끊임없이 편지를 쓴다. 그러나 그 편지를 어디로 배달할 것인가? 누가? 이제 그건, 편지를 쓴 사람의 몫이 아니다. “편지의 해독은 여인餘人의 몫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편지, 우리가 쓰지 않는 사랑의 편지, 아무도 받아줄 사람 없는 그런 편지.... 이 시대는 편지를 잃어버린 시대다. 기다림과 아쉬움과, 진한 뒷모습으로 보여주는 마음의 편지....이 시의 덕목은 깊은 곳에 있지 않다. 내 일상의 가장 사소한 것들을 붙잡아 보여주는 것에 있다. 아름다움은 멀리에 있지 않다, 그대의 손끝에서 사라져버린 편지.....그것이다!
첫댓글 카~ 정말 섬세한 눈길입니다.시대의 변화와 함께 사라져 가는 미풍같은, 보내고 기다리는 설렘과 숙성의 여유도 함께 사라져가는 추억같은 문화 하나ㅡ편지를 생각하게 하는 시네요 . 안그래도 사전에 작가에 대해 알아보고 갈까 생각중이었는데 이렇게 작품으로 먼저 만나게 되었네요. 이번주 시인의 멋진 강론 기대됩니다.
우편함에는 광고 용지만 가득 들어 있고요 손 편지가 그리워 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