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들 2024 여름호)
회의 외 1편
이민숙
와온은 사랑을 회의한다
노을을 그리다가 갑자기 회오리바람의 방해를 받았을 때
회의할 수밖에 없다 어쩐지
전화 속 목소리는 저 먼 고비로 날아가고
망연히 수평선 노래 막막한, 오늘을 회의懷疑한다
너인 나를 앉혀두고
나인 우리의 찡그린 얼굴들을 마주보며
우리인 세상의 불안에 둘러싸여
세계를 강타한 반평화와 살육과 거짓을 향하여 저항하자고
굴복할 수 없다고, 겨우 안착한 결론에도 모르는체하는 회색빛 귀
다목적 무기업자의 의제를 두고 또다시 회의를 시작한다
회의는 언제나 무겁다가 가볍다
원탁 위엔 새카만 생쥐처럼 헹궈지지 않는 기름때 언어들
아직 맹렬히 뛰어다닌다 닦을 수 없이
중세의 암흑을 건너오며 90%를 잃어버린 부끄러움만이 최선인데
돌이킬 수 없는 개펄의 몸은 썩어간다
현대사에선 끝내 토론의 여력을 잃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 기대어 살아온,
하늘의 영광에 손 모으던,
한 떼의 신자들이 회의 시간에 늦게 도착했다
모두들 몸의 말 마음의 말이 서로 서로 뒤틀려 회의하고 있다 대책은?
잃어버린 면역력이 저녁노을을 따라 능선을 넘어가고 있는데 잡을 방법을 몰라
망연히 걷는다 선소船所*에서 웅성거리던
수군들의 언어를 받아 적는다, 21세기와 16세기가 꼭 닮았다고
다르거나 닮은 어떤 나라의 백성들이 회의를 잘못 하는 바람에
거북선은 낡아 이미 가라앉았다고 목숨을 저당 잡힌 이순신
임금의 헛발질만 아니면 된다고 성의誠意 있는 회의를 끝냈다는데
회의를 하다 연필을 놓는다
회의懷疑의 끝없는 유혹을 놓는다
끝내 선암매 피는 걸 회의하게 될까
육백년 동안 몸으로 몸으로 피어나는 선암매
끊어졌던 전화기를 집어든다
응! 회의懷疑는 도망가고 선암매는 끝내 피어나고 있다 혀 없는 몸이니까
그 다음은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청둥오리의 미색에 맡길 터?
*선소:여수시 시전동에 있는 造船所 遺蹟 대한민국 사적 392호.
항아리
오오오래된 그 어떤 것 내 육체의 세포에 자리 잡아 향기라든지 오방색 의식이 되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저 안에서 짭짤 달콤하게 익어가는 바다... ...대지... ...그 선물들을 앉혔다
콩만이 아니고 곰팡이만이 아니고 소금물만이 아닌 생명의 지독한 유혹이 숨어있다 맛깔스런 내 영혼, 메주의 맛은 산으로 들로 갯벌로 누비며 나를 잉태한 엄마의 시간과 공간이다
그 여자 유애심, 이녘은 사랑! 이녘은 무심! 샘물처럼 고독한 새벽길, 씨앗을 받아 안고 살아온 천 년이며 하루다
하루살이의 위대!
누 천 년이 녹아든다 보름달 뜬다 사이 동백, 등 업어온 돌고래인들 피지 않으랴! 푸우우 심해의 바다 빛 둥그런 항아리는 엄마의 주춧돌이다 첫 아들 죽음 품고 뜨거운 동백이 견뎌온 동안거冬安居, 살 살 살 녹여주었다 혀끝으로 황홀히 녹아드는 항아리 깊은 파도!
이민숙 약력
1998년 《사람의 깊이》에 ‘가족’외 5편의 시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나비 그리는 여자』『동그라미, 기어이 동그랗다』『지금 이 순간』 샘뿔인문학연구소에서 책읽기, 문학아카데미 운영하고 있음. 한국작가회의 회원. e-mail: 123lms@hanmail.net
전화번호: 010-4627-5226
주소: 전남 여수시 소호로 658, 101동 905호 (학동 부영아파트) -59674(우)
계좌: (농협) 351-0392-1784-53 이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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