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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전시가를 대표하는 인물은 송강 정철과 고산 윤선도이다. 둘 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빛낸 ‘연금술사’로 불린다. 특히 윤선도에게는 ‘자연미의 시인’이라는 찬사가 늘 따라다닌다. ‘뫼흔 길고 길고 물은 멀고 멀고’( <견회요> 제4수)에서 보듯, 그는 평이한 우리말을 마치 ‘물 흐르듯’ 유연하게 구사한다. 또한 ‘물‧돌‧소나무‧대나무‧달’(<오우가>)을 벗 삼은 ‘서정적 산수시인’이기도 한다. 윤선도는 광해군 당시에 권세를 누리던 이이첨의 전횡을 폭로하기 위해 올린 상소문에서 보듯, 간신이 나라를 그르치는 것을 방관하느니 차라리 할 말을 다 하고 죽겠다는 혈기방장하면서도 꼬장꼬장한 정치 논객의 모습도 갖고 있다.
다른 한편 윤선도는 대지주였다. 해남 윤씨 어초은공파의 장손이었던 그는 윤씨 문중의 거대한 부를 유지 또는 증식해야 할 막중한 임무를 지니고 있었고, 실제로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남 인미에게 보낸 가훈서인 <충헌공가훈>에서 근면 절검을 강조하고, 노비 부리는 법을 가르치는 등 아주 꼼꼼하면서도 치밀하게 가문의 살림을 챙겼다. 이렇듯 윤선도는 복합적 초상을 지닌 인물이다. 자연미를 노래한 언어의 연금술사? 격정에 찬 정치적 노객? 검약하면서도 치밀한 경영자? 이 이질적 초상들의 간극을 하나하나 메워가는 것이 윤선도를 좇는 우리 여정의 목표다. 그러기 위해 17세기 중앙 정계의 한복판과 해남의 금쇄동과 부용동, 그리고 그가 찾아 정착했던 보길도, 그 그윽한 골짜기를 수없이 넘나들어야 할 것이다.
윤선도의 일생을 재구하고 그의 문학 세계를 가늠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단지 그의 생애와 삶의 흔적만을 찾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윤선도가 살았던 시대의 정치 상황을 긴밀하게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윤선도의 평전을 쓰기 위해, 보길도와 해남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나 역시 고전시가 연구자로써 해남과 보길도에 있는 고산의 유적들을 여러 차례 찾아보았다. 또한 윤선도의 시조는 작품을 창작했던 해남과 보길도의 자연 풍광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만 한다. 이제 고전연구가로 자부하는 저자는 과거에는 고전시가로 박사논문을 썼던 박학다식한 학자이다. 그의 설명에 따라 윤선도의 생애를 이해하고, 또한 시조가 창작되었던 상황을 고려하면서 평전을 읽는 것이 대단히 재미있다. 아마도 윤선도를 이해하고, 또 연구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서 입문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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