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과적으로 역사란 늘 승자의 기록이며, 약자는 자신의 기록을 잃고 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어느 순간 약자의 처지에 있으면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약자를 위한 현실주의>라는 이 책의 제목은 이처럼 상대적으로 약자였던 처지를 극복하고, 끝내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던 우리 역사의 몇 장면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러한 현실을 버티어온 당시의 상황을 단순히 ‘약자’라고 치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상대적인 힘의 균형에서 약자의 처지에 놓였던 상황을 극복했다면, 그것을 단순히 ‘약자’의 논리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부제가 말해주고 있듯이, 이 책은 우리 역사에서 상대적 약자의 처지에 있던 상황에 대처했던 사건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모두 네 개의 역사적 상황을 중심으로 논하고 있다. 첫 번째는 삼국시대 한반도의 변방에 위치해 있으면서, 당나라를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했던 신라의 상황을 서술한 ‘신라는 어떻게 살아남았나?’라는 질문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다. 사람들은 역사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문제 역시 ‘만일 고구려가 중심이 되어 통일이 되었더라면?’이라는 질문이 뒤따른다. 그러나 역사에서 가정은 때로는 결코 현재의 상황을 되돌려 놓을 수 없기에, 전혀 무의미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저자는 상대적 약자였던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고구려와 백제에 맞섰던 상황에서, 당대의 역사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었던 ‘눈’과 자신만의 ‘무기’를 통해 극복해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뛰어난 인물들이 존재했다는 것도 역사의 전환을 이끌어내는데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하겠다.
두 번째는 고려시대 초기에 동아시아를 휩쓸었던 거란에 맞서 강대국들 사이의 균형을 조율했던 ‘거란전쟁, 동북아 균형자의 조건’이라는 내용이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당시 고려를 지켜내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던 강감찬과 서희라는 인물을 접하게 된다. 동아시아의 강자로 떠오른 거란을 상대하여, 정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담판을 벌였던 서희를 일컬어 저자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최고의 수훈자’라는 평가를 아끼지 않는다. 또한 이어진 거란의 3차 침입을 막아내고 귀주에서 대승을 거두었던 강감찬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상대적 약자의 처지에 놓여있으면서도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신하들을 이끌었던 고려 성종의 리더십도 빼놓을 수 없던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은 비록 약자의 처지에 위치했으면서도 결과적으로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었던 역사적 사건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민중들을 사지로 내몰았던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 저자는 우리 역사에서 일어났던 두 개의 사건을 나란히 후반부에 배치시켜 서술하고 있다. 세 번째는 고려시대의 무신정권 하에 발생한 몽골의 침입을 다루고 있는데, 저자 역시 이것을 일컬어 ‘몽골제국과의 이상한 전쟁’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당시 아시아를 넘어서 유럽까지 휩쓸었던 몽골과의 전쟁에서 무력하게 대처했던 무신정권 권력자들의 처신을 표현한 것이다. 몽골의 침입에 저항하여 30여 년 동안 이에 맞섰던 ‘고려의 대몽항쟁’에 대해서, 대부분의 역사 서술에서는 이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고 민중들을 사지로 내몰았던 소수의 무신정권 권력자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나마 꿋꿋하게 대몽항쟁을 이어갔던 ‘진정한 주역들’은 자신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고 싸웠던 당시의 민중들이었다. 결국 몽골과의 전쟁으로 인해 무신정권은 몰락하게 되었고, 고려는 기나긴 몽골의 식민지배의 처지에 놓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다룬 ‘병자호란, 궁지에 몰린 중립외교’에서도, 후에 중원의 지배자로 자리를 잡게 되는 청(후금)나라와 명나라 사이에서 무능력하게 대처했던 조선시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자신들이 오랑캐로 치부했던 청나라 황제에게 국왕이 무릎을 꿇고 절을 해야 하는 현실을 당시 위정자들은 절망적으로 바라봐야만 했을 것이다. 최근 당시 상황에 대처하는 인조의 무능력함이 부각되면서, 광해군의 외교 정책에 대해서 재평가하는 작업이 사학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광해군이냐, 인조냐’ 라는 단순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단정한다. 그것은 당시 중국을 차지하기 위한 청과 명의 싸움에서 조선이 처했던 당면한 현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대국 사이에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서 균형자로 역할을 했던 서희의 업적을 떠올리면서, 당시의 인조 정권에서는 자신의 권력 유지에 몰두하는 모습이 그러한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논의하고 있다. 이후 청나라를 정벌하자는 ‘북벌론’을 주장했던 인조와 정권의 주추 세력이었던 서인들의 무능력은 이미 역사에서도 충분히 평가되고 있다고 하겠다.
이상 4개의 역사적 사건들은 모두 상대적 약자의 처지에 놓여있었던 상황에서, 그 대처 방식에 따라 그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결과가 결국 상황을 바라보는 ‘정확한 눈’과 자기만의 ‘무기’가 준비되었는가 여부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고 논하고 있다. 실제 고려의 무신정권이나 조선의 인조 정권은 국가의 안위보다 권력을 유지하는 것에 힘을 쏟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나아가 이러한 과거의 우리 역사를 통해서,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에 대해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