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세계
62기 조아영
1.
망원경으로 보아도 나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집사가 준비해둔 침의를 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티 한 올 없고 빳빳해 정성이 보이는 하얀 옷. 본디 흰 천은 쉽게 물들어 귀족의 특권이라 볼 수 있다. 나는 성마저 희게 칠한 고귀한 인간이었다. 그 날도 창문으로 좌르르 쏟아진 별을 보며 눈을 감았다. 보통의, 기분 좋은 밤이었다. 선선함이 속눈썹을 간질였다.
1.1
그러니까 잠에서 깼을 때 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이상한 곳이었다. 낭만이라곤 전부 증발한 닭장 같은 방. 나는 내 왕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눈을 떴다. 당황한 발이 하늘색 이불에 엉켜 우당탕 소리를 냈다. 뺨을 때려도 깨지 않았다. 때아닌 소란에 나이 든 부부가 문을 두드렸다. 이 몸의 부모였다. 걱정스런 목소리가 나를 정현이라 불렀다. 아무 일도 아니예요! 외치는 목소리가 낯설었다.
나는 그 날 아침부터 대한민국 이십팔세 김정현이 됐다. 아무 계기도 죄도 없이 여기에 이식 당했다. 로맨스 판타지를 좋아하는가? 나는 끔찍이 싫다. 내게 로맨스 판타지는 살아남아야 할 전쟁터다. 나의 진짜 ‘현실’에서 불리던 이름이 흐릿하다. 매일 베란다를 열고 목을 빼 하늘을 본다. 한번도 내 세계를 찾을 수 없었다. 2세계, 이세계. 이곳이 이세계인지 내 고향이 이세계인지, 망원경으로 보아도 나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다. 하긴 별 하나 없는 부연 밤하늘에서 보일 리가 없다.
2.
휴대폰을 뒤져 가장 큰 서점으로 갔다. 거기서는 이 말도 안되는 일을 장르로 표현했다. 거기서 처음 알았다. 서점 가운데 보기 좋게 진열된 로맨스 판타지들은 유달리 화려했다. 표지 속 사람들은 대체로 내 고향 옷을 입었으며, 눈이 반짝거렸다. 그들은 평생을 호흡기 달고 병실에 누워 있다가, 3층에서 떨어지는 화분으로부터 고양이를 구하다가, 책에 머리 박고 잠들었다가, 참 다양한 이유로 이세계로 간다. 나는 여기로 완전히 ‘왔다’라고 말하기 싫어 내가 당한 것을 빙의라 이름 붙였다.
이 사람들에게 내 고향은 로망이다. 탈출구다. 다들 마음 한 켠에 드레스 입고 왈츠 추는 꿈을 꾸며 산다. 어쩐지 화가 났다. 내가 실제로 숨 쉬던 내 인생은 한낮 유행 취급 당한다. 한참을 서서 읽었다. 주인공이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탐색했다. 그런데 어디에도 다시 돌아가는 방법이 없었다. 주인공은 대부분 엔딩에서 이세계에 남는 걸 택했으니까. 안개 대신 연기 낀 여기로 돌아오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
3.
내가 빙의된 몸은 보잘것없다. 대한민국 김정현은 평범하다. 개성도, 특출난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인간이어서 볼품없다. 스물 여덟살 좁은 방에는 종류가 다른 자격증 교재들이 듬뿍 꽂혀있다. 뚱뚱하고 포스트잇이 삐져나온 책. 키가 들쭉날쭉해서 반듯하게 서 있어도 참 모나보인다. 어찌나 많은지 촌스런 책장 바닥이 조금 휘었다. 재미없고 흉한 게 여기 한국같다.
이 사람은 무슨 자격이 그렇게 부족했을까? 이만 오천원짜리 두꺼운 책은 나중에 카드 하나로 함축될 것이다. 고작 이름 밑 단조로운 글자 몇개가 된다. 이 세계는 서민으로 사는데도 그렇게도 많은 조건이 필요한 모양이다. 내 세계는 날 때부터 호화로운 미들 네임을 서너개 달고 태어나는데, 김정현씨는 김 정 현 세글자뿐이라서 이렇게 아등바등했나보다. 딱딱한 제목 사이 간간이 ‘오늘부터 취업 뽀개기’ 라거나 ‘따라만 오면 나도 공무원!’ 같은 이름이 끼어 있다. 우스꽝스럽다.
3.2
이 닭장에도 왁스와 고데기가 있다. 화장실 문 옆 뽀얗게 먼지 슬었다. 낡은 드라이기 선과 한데 엉켜있다. 풀어본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김정현씨도 멋진 머리였을 수도 있다. 잡지 속 아이돌처럼 빨간 머리였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화장실 거울 앞에는 덥수룩한 검은 머리만 있다. 고데기 위 먼지처럼 시간이 흐르는 대로 방치한 머리카락.
사실 나는 그가 서랍장 구석 엎어둔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보았다. 볼 사람도 없는데 옛 전공 책 밑에 꽁꽁 숨겨 두었다. 누런 표지를 넘기면 종이가 너덜거린다. 물때만 남은 이 거울 주인도 이 책을 끄트머리 닳도록 읽으며 허무맹랑한 꿈을 꾸었을까? 하지만 그는 자격이 부족한 인간이라 어차피 내 나라에서도 2등 시민이나 되었을 것이다. 왕이 될 포부도, 드래곤에게서 공주를 구할 용기도 없는 인간. 책 대신 호미 들고 종일 밭이나 가는 초라한 삶. 이 방에서는 그 정도 그릇이 보인다. 태어나기를 특별하고 고귀하게 태어난 나는 평생 이해 못 할 이 빠진 작은 그릇이 훤하다. 그러니까 나는 김정현에게 빼앗겼다. 돌아가야만 한다. 샌들 자국 그대로 탄 발 옆에 오래된 고데기 선이 엉켜있다.
4.
나와 똑같은 처지인 애를 만났다. 기막힌 우연이다. 걔는 바이올린을 전공했으며. 김정현씨의 친한 친구다. 바이올린 케이스를 맨 걔가 지나갈 때 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유는 없지만 뿔테 낀 걔 얼굴을 보면 느낄 수 있다. 걔는 내 기억에 옆 왕국의 유명한 귀족이었다. 갑자기 행방불명 됐다더니 나보다 먼저 끌려 왔구나. 나는 반가움에 걔를 돌려세우고 말을 걸었다. 쌓인 불안이 횡설수설 터져 나온다. 먼저 겪었을 그 애에 대한 걱정도 아끼지 않았다.
걔는 내 말에 전부 동의했다.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준다. 다행이다. 사실은 이 비밀스런 이야기를 김정현씨의 부모님께 한 적 있다. 그 때 그들의 주름진 얼굴을 기억한다. 혼란, 공포같은 감정을 뚜렷이 기억한다. 나이 든 어른들은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래서 농담이라며 웃어넘겼다. 그 뒤로 나는 누구에게도 내 사정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드디어 희망을 본다. 동병상련의 마음이 부푼다. 함께 우리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로 한다. 꺾였던 의욕이 돌아온다. 반드시 함께 돌아가야지. 그 애는 조율이 흐트러진 바이올린의 음계를 다 잡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간혹 팽팽한 현에서 화음 소리가 난다. 바이올린이라니, 여기서도 귀족다웠다.
5.
행운의 연속이다. 나는 며칠간 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리저리 뛰었다. 그러다 그 사람을 만난다. 박지우. 지우씨는 말투에 품위가 넘치고, 다정하며, 재치있다. 당연했다. 이 지루한 세계 사람이 아니니까. 지우씨는 내 고향의 막내 왕족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흰 색이 정말로 잘 어울렸다. 이곳으로 끌려온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정말로 소설처럼 세계 어딘가가 뒤틀린 게 아닐지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우씨는 우리의 세계를 완전히 잊었다. 아예 기억하지 못한다.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난 모양이다. 나는 그 사람의 손을 잡고 눈물을 떨궜다. 지우씨는 나보다 깊은 눈으로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나는 기억안나지만, 당신은 얼마나 힘들까요.”
나는 당연스럽게도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됐다. 로맨스 판타지 속 주인공이 자신을 이해해주는 왕족과 사랑에 빠지는 일은 흔했다. 지우씨는 아름다운 고향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함에도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나와 대화 나눴다. 그것은 애정이었다. 그 사람이 나에게 품은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사랑.
지우씨와 결혼하는 상상을 했다. 그 사람의 거대한 성에서, 새와 나비의 축복을 받으며 버진 로드를 걷는 상상. 그리고 내 세계를 포기한 채 여기에 남아 한국의 결혼식장을 걷는 상상. 마음이 뜨거운데 차갑다. 아렸다.
6.
바이올린 켜는 걔를 다시 만났다. 걔는 바이올린 케이스가 아니라 어깨끈이 축 늘어진 백팩을 메고 왔다. 의외다. 분위기 좋은 카페의 원탁 테이블에 앉은 걔는 백팩을 연다. 가방 주둥이에서 묵직한 책들이 튀어나온다. 메가스터디 9급 공무원 기초 영어 단기완성. 악기가 아니라. 나는 소리 못 내는 그 네모를 내려다 본다.
“정현아, 나 이제 바이올린 안 해. 밥 빌어 먹고 살기에는 재능이 부족해. 취직해야지.”
너도 그 세계로 못 돌아갈 수도 있으니까 일단 취업 공부 하는 게 어때?
그런 선언. 걔는 포기했다. 자유와 음악과 꿈과 사랑 그 어떤 모든 화음을. 나는 멍하니 있는다. 그러다 웃는다. 걔도 웃는다. 나는 상체를 앞 뒤로, 양 옆으로 흔들거렸다.
7.
결심의 날이다. 역시나 나는 혼자라도 돌아가기로 했다. 친구는 여기 순응해 살기로 했고, 바이올린 줄을 끊었고, 나중에는 이세계에서 왔다는 사실조차 잊을 테지만, 그건 걔의 선택이니까. 또한 왕족인 지우씨조차 사실 이 숨 막힌 세상에서 이미 결혼했다는 걸 알았지만, 나는 모두 이겨냈다. 사실은 조금 한심하다. 나약한 사람들. 발밑에 들꽃이 자박자박 밟히고 첼로 소리 가득한 고향을 고작 그런 이유로 포기한 사람들. 이해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
나도 그렇게 돼버릴까 무섭다. 나는 대한민국 이십팔세 별 볼 일 없는 김 정현씨가 빙의되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사이트를 안다. 내 삶을 빼앗기 전 보았던 인터넷 소설을 보았다. 조회수 50이 겨우 넘는 진부한 로맨스 판타지. 간혹 조회수 없이 묻혀 흘러가기도 하는 글을 정현씨가 어떻게 찾았는지 모른다. 왜 즐겨찾기 할 정도로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런 초라한 글을 누가 썼는지도 알 수 없다.
그래도 나름 재밌게 읽었다. 그래서 다 읽었다. 그 소설 1챕터에서, 주인공은 평소 갈망했던 이세계로 가기 위해 달리는 트럭으로 몸을 던졌다. 몸을 던졌다.
8.
상쾌한 바람이 분다. 김정현 환자는 쉽게 갑갑해 하기 때문에 창문을 살짝 열어두었다. 김정현의 부모들이 그에게 고개를 숙인다. 눈물로 젖어 있다. 그는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보았다. 부모에게 엄한 목소리로 말한다.
“인정하기 싫으셔도 입원 치료받으셔야 합니다. 약을 드시면 좋아지실 겁니다. 걱정 마세요.”
정현이 기분 좋게 웃는다. 창밖 노란 고양이를 보고 박수 치기도 한다. 손 끝에 품격이 가득하다. 박지우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흰색 방. 김정현은 그리웠던 하얀 성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다. 그러면 된 거였다. 이전에 나눴던 대화 내용을 토대로, 흰 가운에서 펜을 꺼내 차트에 꼬부랑 글씨를 더한다. 박지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