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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8일 쇠날, 어순당 길에 오릅니다.
그러고보니 지리산으로 어순당 첫걸음을 뗀 지 꼭 일년이 되었습니다.
지리산 둘레길로 시작하여, 남녘 강진땅, 시현이네 농장으로,
한옥현 선생님댁 토마토 농장 그리고 섬진강...
이렇게 걷고 또 걷는 길이 마냥 좋았습니다.
어순당의 단장님이자 큰언니 푸른솔,
당신이 계셨기에 어순당이 존재했습니다.
저 멀리 저희 언니 해바라기가 보이네요.
'낯익은 것들과 애써 안녕하며 새 길을 떠나는 나... 어순당과도 아름다운 마무리...'
'ㅠ ㅠ ㅠ 서운! 잘...모쪼록 잘... 마무리에 딱 좋을 날씨! 감사!'
멀리서 주고받는 문자...
알 수 없는 눈물 주르르...
빗님이 보드랍게 어루만져 주네요.
그래요. 이렇게 서로 각자의 길을 가는 건가봐요. 따로 또 같이.
"막내이모, 내 길은 내가 선택했고 내가 간다."
'네, 개구리...'
가을의 끝자락이 이렇게 익어갑니다.
체험마을에 주차하고 올랐던 촉촉한 산길
한 시간여 걸었을까요. (이 쯤이야~)
드디어 한원식 선생님댁에 도착!
그런데 이 여인... 심상치가 않네요.
설레는 마음으로 선생님을 뵈러 갑니다.
밥상은 이미 차려져있고, 그 선물을 맛있게 받는 사람은 바로 나.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내려앉은 장독들과...
땀과 세월이 어려있는 농기구들이 먼저 반겨줍니다.
바로 이 분!
숨이 멎을 듯..!
두더지 길을 걷다 하신 말씀,
"순천에 오면 가장 먼저 뵈러 가야겠다 생각했던 분이 한원식 선생님이신데 이제야..."
인연의 끈은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 어디서든 이어지는 법이겠지요.
선생님께서 직접 개량하신 볍씨랍니다.
건강한 나눔의 밥상을 일궈낼 소중한 씨앗
전기도 들여놓지 않고 사시는 댁에
희미한 빛을 가져다 준 유일한 태양광 덕에
겨우겨우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방에 옹기종기 둘러앉습니다.
예를 갖추어 선생님을 뵙습니다.
"우리 집에 오셨으니 노래 하나 불러드릴까요?"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우리가 아는 많은 선생님들이 이 노래를 애창하십니다.
우연이 아니겠지요. 상선약수(上善若水)...
"그래도 커튼이 삐에르가르뎅이네요"
효건파의 한마디에 파안대소
모든 세간살이는 주워오신 거래요.
그 물건 안에는 원래 주인의 일(事)이 들어있대요.
그래서 그 물건을 쓰면서 놀 수가 없대요. 허투루 살 수가 없대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저는 30년간 농사만 지은 농사꾼입니다. 서른 네살에 깨달았어요. 밥을 사고 팔지 않는 농사꾼이 되어야겠다.
그 이후로 30년동안 단 한 번도 먹는 것을 거래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자랑할만 하잖아요? (웃음)"
"먹는 것을 거래하지 않는 것은 나눔입니다. 같이하는 삶이에요.
같이 해야 재밌잖아요? 어릴적 우리는 놀이를 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게임을 해요.
놀이에는 나눔이 있어요. 남을 제치는 법이 없지요. 그런데 게임은 어떻습니까?...
나누는 삶은 날마다 잔치입니다."
"이 사진을 보세요. 여름에 밥이 세군땜에 쉽니까? 아니예요.
세균이 달라붙을 수 있는 조건이 되었을 때 쉬는 거예요....
땅은 뭍생명을 맞이하는 일을 합니다.
씨앗을 뿌리면 뿌리가 제일 먼저 내립니다. 그 다음이 이파리와 꽃이에요....
진흥청에서는 거름땅에서 잘 자라는 씨앗만 줍니다.
저는 퇴비 없이 메마른 땅에서도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는 그런 씨앗을 뿌립니다.
뿌리가 깊이 발달되어 있으면 흐린 날에도 태풍이 불어도 메뚜기가 먹어도 (메뚜기가 먹으면 얼마나 먹습니까)
문제가 되질 않아요. 땅이 내게 주는 게 뭔지를 알면 농사 짓는 거 얼마나 쉬운 지 몰라요.
귀농학교에서 뭘 가르쳐달라는데 이것만 알면 가르칠 게 없어요."
"의식주란 말을 틀린거예요. '식주의'가 맞아요. (식의주도 아니고..) 밥이 가장 중요해요.
밥은 받든다라는 뜻입니다. 밥이 첫번째니까 나눠야 해요. 밥을 나누고나면 모든 걸 나눌 수 있는 정신이 생겨요."
바로 이때,
우리 사모님 밥상을 내어주십니다.
아.....
어찌 받들어야 할 지 모를
이 소중한 밥상 앞에 할 말을 잊습니다.
"밥은 내 님을 맞이하는 겁니다.
그 길을 살리는 길로 갈거냐 저버리는 길로 갈거냐...
흰 쌀은 저버리는 길이에요. 우리 아이들에게 저버린걸 먹일 것이냐 온전한 걸 먹일 것이냐..."
"밥은 150번 씹어서 드세요.
우리 집의 밥은 일부러 뜸을 들이지 않은 거친 밥입니다. 씹고 또 씹어서 녹여서 드세요.
밥은 님을 맞는 거라고 그랬죠?
님은 녹여야 하잖아요. 그래야 하나가 되잖아요? (아...!)"
한원식 선생님댁에서 밥모심 하는 법을 잠시 소개할까요.
우선 첫 숟갈은 물김치로 목을 축입니다.
그리고 밥 한 숟갈을 떠 입에 넣고 150번 이상 씹습니다.
정말 신기하게 씹을수록 단맛이 나며 살살 녹아 굳이 삼키지 않아도 넘어갑니다.
현미, 흰콩, 까만콩, 조, 옥수수, 흑미, 밤...
기억조차 할 수 없는 곡물이 담겨있으니 그럴 수 밖에요.
일단 입속에 음식물이 있으면 숟가락은 내려놓습니다.
다음에 반찬 한가지를 넣고 음미합니다.
한 번에 한 가지만... 집중하여 마음모아 느낍니다.
밥과 반찬을 섞어 먹는데 익숙한 저는
따로따로 한가지씩 맞이하며 먹는게 쉽지 않았어요.
150번 씹느라 아구가 아파 고통을 호소하는 분들도 계셨구요....
"저희 집사람은 하루 한끼 먹습니다. 농사 짓기 위해 그래요.
일이 고통이냐 놀이냐 그것이 문제예요.
우리에게 농사는 놀이입니다. 놀이는 극진하기 때문에 오로지 내 것입니다.
먼동이 터서 해질녘까지 말 그대로 삼매경에 빠집니다. 씨앗 뿌릴 때는 설렙니다."
"저는 아침을 먹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음양의 이치를 말하며 아침을 꼭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맞나요? 저는 온도의 이치로 봅니다.
겨울에 나무가 자랍니까? 여름에 곰이 여름잠 잡니까?
움추림과 펼침입니다.
새벽엔 우리 몸이 어떻습니까? 움추려듭니다. 밥은 펼침입니다.
일은 펼침입니다. 그래서 일을 한 후에 밥을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몸이 펼쳐질 때 밥을 맞이해야 합니다. 이것이 펼침과 펼침의 조화입니다.
어제 먹은 밥이 아직 소화가 안되었는데 어떻게 또 먹습니까?
넘침은 고통을 부릅니다. 쓸 데 없이 먹으니 이웃과 관계가 깨집니다.
지금 여러분과 나도 밥이 있어 이렇게 관계가 형성되는 겁니다."
"이 친구들도 제 아이 잘 키워보겠다고 모였습니다. 한 말씀 해 주시죠."
"다른거 없어요. 밥모심만 잘하면 돼요."
낮 12시반 넘어 시작한 밥모심...
시간이 어찌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듭니다.
(얘기 끝나고도 상 안물린다고 사모님께 혼도 나고 ㅋㅋ)
이 날 선생님은 총 열 한시간이나 말씀을 하셨다네요.
대단한 체력과 열정...
"병을 우리 말로 하면 뭡니까? '앓이' 아닙니까? 안다는 거예요.
내 몸에 있는 것을 잘 내보내는 것,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걸 예수님이 풀어주셨어요.
'네 믿음이 너를 구원케 하리라' 하셨잖아요.
네 안에서 '앎'이 일어나고 있고 그것이 너를 살린다는 말씀이에요.
아픔 그 자체가 나를 살리고 있다 이 얘깁니다.
흐름이 안 좋을때 아픈거예요. 흐름을 트이게 해 주는 것이 앓이입니다.
흐름이 막히면 만사가 귀찮습니다. 그러면 얼이 빠져요. 어울림이 안되는 삶이 되는거예요."
출발부터 몸이 좋지 않았던 준이 엄마는 결국 이렇게 앓이를 합니다.
선생님댁에서 앓이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선물이 아닐까요.
그 선물 잘 받고 제대로 앓고 일어나길...
"장일순 선생님과의 인연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시지요."
"어느날 사경회에서 이현주 목사님을 뵈었는데 '통'의 말씀을 하시는겁니다.
그 날을 계기로 목사님과 가까워졌는데 어느날 목사님께서 장일순 선생님을 꼭 뵈었으면 좋겠다 하시는 겁니다...
선생님을 처음 뵈고 제가 그랬죠. '농사꾼은 저 밖에 없습니다'
'네 말이 한마디도 그른게 없다...'하시며 장 선생님께서 다 들어주셨어요..."
"병석에 계실 때였어요.
제가 가는 길이 바른 길이라 세상이 그냥 놔두지 않을거라시며
세상이 칼로 너를 찌를때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하시더군요.
저는 대답을 미리 알았지만 그 말씀을 선생님의 입을 통해 듣고싶어 '말씀해 주십시오' 그랬어요.
칼을 빼며 피를 닦는 상대방에게 나를 찌르느라 네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느냐 위로해 주는 삶,
그런 삶이 너의 삶이라고 풀어주셨어요. 지금 네가 사는 삶이 그런 삶이지 않냐고..."
"88세 장모님이 우리 집에 오셨을때 다리를 못 쓰셨어요.
'어머니, 돌아가실 것 같은데 왜 드십니까' 그랬죠. (웃음) 밥은 살 사람이 먹어야하는 거라고.
그래서 굶으셨어요. 그런데 굶으신 지 3일만에 뒷간 출입을 하시는 겁니다. 나들이도 하시고요.
그래서 '어, 이제 사실 분이니 잡수셔야겠네' 그랬죠. (웃음)
다음엔 보식을 시작했어요. 단식을 하면 어린아이같이 깨끗한 몸이 됩니다.
그 이후 장모님은 순환 단식을 하셨어요. (엿새 먹고 하루 굶고, 닷새 먹고 하루 굶고....)
그렇게 석달을 하니 밭을 매러 다니시대요. (웃음) 그래서 이제 일부러 굶읍시다 그랬죠.
6일을 단식하니 몸이 날아갈 듯 하시대요. 그리고나서 한 달은 과일만 드셨어요...
지금은 3천평 밭을 혼자 다 하세요.
장모님을 모시려고 오시라했는데 지금은 장모님이 우리를 모십니다. (웃음)"
"저희 어머님도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나오시고
평생 열심히 농사 짓고 사시는데 백미만 드십니다. (웃음)
왜 선생님처럼 그런 깨달음을 얻지 못하시는걸까요?
그 차이가 대체 뭘까요 선생님?"
"아... 아마 이걸겁니다.
5살때 아버지를 여의시고 저 혼자 다 했어야 했어요. 가진 것 없고 아프고...
그 때 저의 할머니께서 기도를 해 주셨어요. 잘 되게 해 달라고가 아니라 '바르게 살게 해 달라'고요.
참나무는 그루터기에도 숨은 눈이 있어요. 그래서 죽은 것 같았던 나무에도 새순이 돋아납니다.
할머니의 그 기도가 내 안에 (참나무의 숨은 눈처럼) 담겨져 있었던 것 같아요."
술도 하시고 담배도 하세요. 뭐든 과하지 않게 하면 된다고 하시더군요.
즐겨 태우시는 이 곰방대 덕에 많이 웃었습니다.
(아침에 눈 떠 이부자리 속에서 태우시는 담배맛이 그렇게 좋다고...ㅎㅎ
월매 삼인방도 탄생했구요 ㅋㅋ 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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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일년에 손님이 천명 정도 오신다네요)
제가 그럽니다. '나는 못 살립니다. 하지만 잘 죽게 할 순 있어요.' 그러다 살릴 순 있지만 (웃음)"
"넘치게 저버리고 먹는 삶속에서는 펼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경우엔 농사도 놀이가 아닌 게임이 됩니다."
일은 놀이입니다.
삶이 곧 놀이가 됩니다.
큰 잔치마당입니다.
날마다 잔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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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씀 품고 돌아섭니다.
어느새 해는 지고 빗님이 거세집니다.
준이맘과 한결맘을 두고 거처를 향해 걷습니다.
칠흑같은 어둠속을 빗님과 함께 동행합니다.
걷다가 당산나무 아래서 어순당만의 숭고한 의식(!)도 치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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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답사를 마친 푸른솔 덕에
아주 인심좋은 어르신 댁에서 잠모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묵은지와 홍시, 정성껏 담그신 증류주...
후발대를 기다리며 두 어르신들을 모시고
두더지, 브라보, 저는 흥겨운 노래잔치를...
브라보와 저는 오랜만에 밤비 맞으며 산책도 했구요.
멀리 벵쿠버에서 오신 '제인'이라는 두더지의 벗님과
조목사님, 통통과 무지가 당도하고
조 목사님의 등살에 못이겨(ㅎㅎ) 첫사랑 진실게임도하고,
황토방에 등 지지며 편한 잠... zzz
아침이 밝았습니다.
조목사님의 우렁찬 모닝콜에 더 이상 미적거릴 수가 없었지요.
어제 배운대로 아침은 깔끔하게 건너뛰고 커피 한 잔~
어르신이 직접 빚은 막걸리로 내리시는 증류주 비법을 배웁니다.
새터로 가면 하고 싶은 일 많았는데... 양조장 하나 추가요! ㅎㅎ
이것저것 기꺼이 내어주신 어르신 덕에 몸도 마음도 따뜻해집니다.
나눔은 이런 것이겠지요.
"어르신, 고맙습니다. 또 뵈러 오겠습니다."
돌아갑니다.
사랑어린 부인들의 어순당
그 앞길을 위해 축배를!
감초같은 이런 분이 계시기에 어순당은 계속될 것입니다.
아침에 서로 살아 다시 만난 준이 맘!
'앓이' 해 볼만 하지요. 우리 그런 복 많이 누리고 살게요~!
축하해요.
가을이 깊어가고 만남도 깊어갑니다.
이제 저는 다른 이름으로 새로운 순례길을 떠나겠지요.
정든 어순당과 마지막 순례였기에 저에겐 한걸음 한걸음이 소중했습니다.
일년동안 같이 걷고, 같이 울고 웃어준 길 위의 도반들께 전해요.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자고...!"
아름다운 마무리,
미처 몰랐어요. 당신이 계셔 내가 있음을...
첫댓글 삶이 곧바로 말씀이 되는 분........저는 언제쯤 배울(알) 수 있을까요................
한원식선생님을뵙지못해서아쉬웠지만..이렇게라도 뵐수있어서 감사합니다~밥은..님을녹이듯이~^^
서로에게있어주는것..어순당^^가을의끝자락에좋은시간이였어요..
아.... 제가 미처 담지 못한 말씀이 얼마나 많은지... (차마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ㅎㅎㅎ)
그런 이야기는 함께 하신 분들이 나눠주시면 좋겠지요?
멋지다...깊어가는 가을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허준맘! 한원식선생님과 사모님의 지극한 정성에 감사드리고 그리고 귀한 잠자리도 편안하게 마련해 주심에도 감사! 그 날 간택(?) 되셨던 한결맘께도 감사! 감사할 일만 있네요!
그대가 계시기에 많은 분들이 귀한 말씀 나누는 은총을 누리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근데 내 사진이 ...
잘 좀 찍어주세요! 이뿌게!
막내이모의 정성과 애틋함에 마음이 뭉클!~ 복많이 누린 시간이었어요.
말씀에 삶의 알짬이 그대로 느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