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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일
만우절인 오늘 거짓말처럼 또 4월이 왔다. 잔인한 계절이었지만 올해는 편안하고 여유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까. 어김없이 찾아온 2011년의 봄은 개나리와 진달래를 앞세우고 아른거리는 아지랑이와 함께 문 밖에 서 있다. 오늘은 낮 기온이 15도까지 오른다니 눈 내리고 찬바람 불었던 겨울의 세상은 이제 동화 속의 이야기일 뿐이다. 오전에 친구와 점심을 먹는 약속으로 시내에 나갔는데 아들한테 2학년 반을 다시 편성한다는 전화가 왔다. 학교에서 1,2학년에 특수반을 만들었다니 학부모들로부터 위화감 조성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교육청에서까지 지적을 한 것이다. 학교의 안일하고 편협한 행정이 문제를 만든 것으로 결과적으로 학생들에게 혼란과 불편을 안긴 꼴이 되었다. 오후에 향우회 대표자들 모임이 있다고 전화가 왔고 하지만 일정이 바빠서 활동할 수 있는 친구의 연락처를 대신 주었다. 신설동 2층을 계약한다고 약속한 세입자한테 연락을 했더니 전화가 불통이고 결국 어제의 대화와 서류는 공수표가 되었다. 4월의 첫날이 왠지 어수선한 기분이었는데 철저한 계획을 바탕으로 내일부터 다시 시작하리라 다짐하며 이른 시간에 집으로 향했다. 저녁에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새로운 반편성으로 당황스럽겠지만 어디서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잘하면 된다고 격려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우선이기 때문이다.
2일
잠을 잘 잤고 신문과 뉴스를 보며 아침을 맞이했다. 어제 밤에 술을 마셨는데도 오히려 몸이 가벼운 느낌이었고 아들과 딸이 학교에 간 8시에 식사를 했다. 주말 수업을 하는 아내가 이른 시간에 논술교실로 오르면서 오늘은 저녁까지 수업이라고 말하는데 아마 긴 하루가 될 것이다. 비가 오려는지 날이 흐린 오전에 도시락을 준비하여 나도 학원으로 나갔고 교재를 연구하다가 오후가 되어서는 수업을 하면서 보냈다. 강의를 마친 4시에 점심을 하고 부동산 업자를 만나러 신설동으로 갔다가 임대하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6시경 집으로 돌아오면서 평소와 반대로 저녁에 체육관으로 가서 운동을 했고 이후 논술교실로 갔더니 아내는 아직도 수업중이다. 중학생들 일곱 명이 공부를 하는 곳에 딸도 자리를 했는데 엄마와 함께 하는 지금의 시간은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20여분을 밖에서 기다리다 고등부 수업을 시작했고 늦은 시간 집으로 가서는 유달리 맛있는 삼겹살로 딸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오늘 긴 시간 수업을 한 아내는 피곤한지 일찍 잠이 들었고 안방에서 몇 시간 TV를 보다가 나온 아들은 컴퓨터 앞으로 자리를 옮겨 않는다.
3일
어제 맛있는 삼겹살에 잠까지 잘 자고 일어났더니 역시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도 행복의 한 부분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일요일 아침에 일찍 식사를 마치고 독서실에 간다는 딸을 태워 광화문에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화창한 날이 얼마나 좋은지 들이나 산으로 나가고 싶었고 하지만 수업을 하는 나로서는 가르치는 일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9시에 논술교실로 올라가 중간고사룰 대비하여 수업을 했고 그런데 오늘은 해설한 작품의 양이 너무 많아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졌다. 교과서에 실린 것만 해도 충분한 것을 신경향 작품까지 프린트로 모아 설명을 했더니 힘든 시간을 스스로 만든 셈이다. 점심쯤 집으로 내려가 식사를 하는 중 아침에 독서실에 태워준 딸이 아프다며 들어와서 여간 걱정이 되지 않았다. 오후에 고향에서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문자가 왔는데 30년 전 마을에서 뵌 건강하고 깨끗한 어르신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3시에 논술교실로 올라가 수업을 했고 하지만 이번에는 여학생들이 떠들어 많은 작품을 수업한 오전과 비슷하게 힘이 들었다. 6시경 내려오니 교실이 중복되었던지 아내가 집에서 수업을 하고 딸은 이제 종교인이 되어 친구와 처음으로 성당에 나갔다. 말레이시아에서 돌아온 큰형수는 시골에 있는 자신의 논이 궁금하여 밤에 전화를 했는데 인사도 할겸 이번 주 아내랑 함께 만나기로 했다.
4일
친구 부친상으로 고향에 가 봐야 하고 월요일이라 할 일이 많아 평소보다 이른 새벽에 일어났다. 거실에 8시경 나왔더니 아들은 벌써 학교에 갔고 몸살인지 어제부터 시름시름 아프다는 딸하고만 식사를 함께 했다. 오전에 체육관으로 나가 운동을 하고 곧바로 시내로 이동하여 신설동 임대와 관련하여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1시경 학원으로 들어가 집에서 가져온 가래떡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소작농 임대료에 대하여 형수한테 설명을 해 주었다. 논을 소작하는 선배한테 연락하여 쌀 열 가마를 형수한테 정산케 했는데 80킬로 한 가마 가격이 13만원이라 놀라웠다. 농자 천하지 대본이라고 농업을 생명처럼 여겼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이렇게 헐값이라니 당혹스럽기만 했다. 오후에 세무서를 운영하는 친구가 장례식장에 내려가자는 연락이 와서 용산역으로 나갔고 KTX는 2시간을 달려 고향에 도착했다. 김제역을 나서니 몇 명의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 반갑게 만났고 함께 장례식장으로 이동하여 조문을 하고 식사를 했다. 상가에서 저녁을 보내고 10시경 김제역에서 서울행 열차에 다시 몸을 실었더니 철마는 밤12시 용산역에 나를 내려 주었다. 늦은 시간 밖으로 나와 광장 건너편에서 친구와 막걸리를 마시며 시간을 지체했고 집에는 새벽 2시가 지나 들어왔다.
5일
새벽에 용산에서 택시로 집으로 왔지만 술을 많이 마시고 횡설수설한 친구로 인하여 적지 않게 스트레스가 있었다. 사람 간에는 적당한 거리도 필요할 때가 있는데 특히 친구는 소홀히 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허물이 없어도 불편할 수 있다. 아침 9시에 일어나니 아직도 정신이 어질하여 식사를 거르고 체육관으로 나가 땀을 흘리며 열심히 운동을 했다. 어제 상경하여 함께 있었던 친구는 새벽에 다른 동창을 불러내어 날이 새도록 술을 마셨다며 목소리는 아직도 취해 있다. 11시경 맑은 정신과 가뿐한 몸으로 집에 돌아왔더니 아내는 독립문에 있는 이진아 도서관에 책도 읽고 대여도 한다며 집을 나선다. 혼자 앉아서 라면으로 이른 점심을 하고 오후에 신설동 임대문의로 곧장 나가 이틀 후 반드시 계약하겠다는 사람을 만났다. 이틀이든 삼일이든 계약금이 있어야지 변덕이 심한 사람들이 말로는 무엇을 못할까 하지만 이번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약속한 것이다. 2시에 학원으로 들어가 교재연구를 하고 3시부터 수업을 진행했는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어제의 여파로 정신이 몽롱했다. 일찍 집으로 갔다가 저녁에 논술교실 나가는 중에는 학교에서 딸이 돌아왔고 교실에 오르니 아내가 수업을 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밖에서 기다리다 고등부 수업을 늦게 하고 집으로 왔는데 식탁에 지난번처럼 코다리찜이 놓여 있다.
6일
잠을 잘 자고 식사 후 30분을 더 누워 있었더니 몸이 한결 가볍다. 아내는 아침도 거른 채 일찍 산으로 갔고 나도 체육관에 나가서 운동을 한 후 임대 건으로 바로 신설동으로 출발했다. 도로에서 건물 외관에 대하여 인테리어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는 서울 가4211번 형이 운전하는 회색 개인택시가 앞을 지나간다. 형은 차에서 나를 보았을 것이고 나도 무덤덤하게 차만 응시했는데 멀어진 형제의 현실이 안타깝고 착찹하기만 했다. 오후에 학원으로 들어가 일을 처리하고 귀국한 형수를 아내가 안국역에서 만난다기에 오랜만에 뵈려고 나도 나섰다. 3시경 약속장소에 도착하여 10여분을 기다리니 형수께서 오셨고 반가움에 먼저 인사를 하자 다가와서 손을 잡아준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갈등이 있었고 그런 이유로 장례식장에도 오지 않았으니 나에 대한 미안함이 앞섰을 것이다. 형이 떠난 지 8년 형수도 슬픔 속에 외국으로 나갔다가 7년만에 돌아왔는데 세월이 약이라고 과거와 달리 조금은 편안해 보였다. 종로경찰서 뒷골목 아내가 과거에 들렀다는 지리산 식당에 들어가 나와 아내는 한정식 형수는 북어탕을 조금 드셨다. 이 집은 여자들이 주로 오는 집이라니 육류보다 산나물이 대부분이었고 내 입맛에는 가격에 비하여 만족감이 떨어졌다. 5시에 먼저 일어나 학원으로 갔다가 다시 논술교실로 이동하여 수업을 했고 집으로 들어간 밤에는 아들과 딸이 목석처럼 TV 앞에 앉아 있다.
7일
목요일 아침 비가 내린다. 오랜만에 내리는 봄비임에도 일본에서 유출된 방사능 때문에 방송사마다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인체에 피해가 없다고 하면서도 불신을 하는지 경기도는 자체적으로 휴교령을 내렸고 길을 가는 사람들은 특별히 우산을 준비했다. 아침 TV에서는 결혼의 틀이 달라져 부부간 갈등이 많이 생긴다며 상대를 이해하는 방법에 대하여 명사가 특강을 하고 있다. 노년의 강사가 자신의 경험이라면서 여러 번 강조하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라는 것이다. 부부뿐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에서 누구에게나 필요한 바람직한 내용이지만 실행이 쉽지 않다는 것 그것이 문제다. 식사를 마치고 체육관에 갔다가 엊그제 임대를 하겠다는 사람을 만나러 신설동으로 갔더니 父子가 먼저 와서 기다린다. 기존 시설에 방음을 하고 숙소와 음악실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음악을 하는 대학생 아들에게 아버지가 마련해 주는 것이다. 현재는 원룸을 한다고 일부분 철거를 한 상태인데 세입자 자신들이 새롭게 시설을 한다니 나중에 복구하는 조건으로 2년의 계약서를 작성했다. 원룸 업자를 다시 불러 나머지 주방기기 등을 가져가는 조건으로 내가 처리할 것들을 지시했고 방음시설을 잘 하라고 세입자에게 소개도 해 주었다. 오후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서류를 정리하는 중 비가 내리고 고향에서는 4월30일부터 1박2일 동창모임을 한다는 연락이 왔다. 얼마 전 영등포 모임이 있었으니 시간적으로 무리가 아닌가 싶었고 4시경 학원으로 들어가서는 7시경까지 수업을 진행했다. 밤에 식당을 운영하는 고등학교 정이식 친구를 용산에서 만나 식사를 하고 11시가 지나 버스로 집에 돌아왔다.
8일
수업이 없는 날이라 마음의 여유가 있지만 평상시 한 시간이라도 강의가 있다면 움직임에 자유롭지 못한 것이 우리의 생활이다. 때로는 지루한 시간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일이 없으면 오히려 무료한 일상이 될 것이기 때문에 긍정의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한다. 아침에 자다가 일어나 덥수룩한 상태로 거실로 나왔는데 식사를 하는 단정한 학생복 차림의 아들 딸과 모습이 대조적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산을 오르는 아내에 이어 체육관으로 나갔고 평소처럼 운동을 열심히 했더니 정신이나 마음이 한결 맑아졌다. 12시에 아내와 점심을 먹으려 연락을 했다가 전화가 불통이라 체육관 근처에서 혼자 콩나물과 고추를 넣은 라면을 사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신설동에 갔더니 어제 지시대로 보기가 흉한 부분은 철거를 했고 새로운 세입자는 방음시설을 한다며 분주하게 다니다. 내가 할 부분은 거의 무료로 했지만 호프집에서 사용하던 가스판 닭튀김기계 등을 중고시장에 처분하면 처리한 비용으로 충분할 것이다. 학원으로 들어가 엊그제 부친상을 당한 친구와 통화를 했고 저녁까지 걸려오는 임대문의 전화에는 계약한 임대료에 아쉬움이 생겼다. 임대를 하는 것도 업종이나 장단기 유무를 고려하여 세입자를 고르는 기술이 필요한데 계약하기에 급급한 나는 임대업 초보수준이다. 우리는 전철역이 가까운 단독건물이라 임대 현수막을 붙이면 찾는 사람도 많으니 차후에는 노련하게 대처해 볼 것이다. 감기로 목이 잠겨 일찍 집으로 갔더니 딸이 학교에서 돌아왔고 밤에는 수업을 마친 아내까지 내려왔는데 시간이 지나도 아들만 소식이 없다.
9일
어제 일찍 잤더니 아침에 몸이 가벼웠고 하지만 주말이라는 이유로 늦게까지 TV와 함께 뒹굴거리며 보냈다. 식사를 마친 9시에 보충수업을 한다고 논술교실로 오르니 단잠을 자는 시간인지라 수강생들 대부분이 결석과 지각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몇 명의 수강생이 더 왔지만 감기 기운으로 일찍 마쳤고 11시가 되면서는 중등부 수업을 하는 아내가 올라왔다. 교실을 내려가면서 바라본 하늘이 등산이나 여행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는데 집에서는 늦게 일어난 아들이 혼자 식사를 하고 있다. 12시경 집을 나와 학원으로 갔다가 내일 사용할 프린트와 교재 등을 정리해 두고 인사동에서 고향에서 올라온 친구를 만났다. 점심을 먹는다고 한정식 집으로 들어갔더니 가격이 1인당 2만원이었고 하지만 상차림이 백반집 수준이라 어이가 없었다. 집으로 일찍 왔다가 저녁을 먹은 후 교실에 올라가 수업을 하고 11시경 다시 내려오니 집안의 분위기가 냉냉했다. 아내와 아들 간에 대립이 있었던 것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에 밖으로 나가서 술을 마시고 새벽에 들어왔다.
10일
2시에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눈을 뜨니 일요일 아침 주변이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아내는 콧소리 때문에 오늘도 딸과 함께 자고 있지만 수술이나 치료를 받는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일요일에 꼬박꼬박 나갔던 교회를 요즈음 거의 한 달째 빠졌는데 오늘도 친구와 약속까지 해 놓고 또 결석을 하는 날이다. 된장국으로 식사를 하고 경기도 미사리에서 아디다스 마라톤 10킬로에 출전했다는 4촌 여동생에게 파이팅 문자를 보냈다. 마라톤은 고독하고 힘든 인생의 축소판 같은 것이니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반드시 완주하라는 내용이었다. 오전에 정독도서관을 가는 딸을 광화문에 내려주고 논술교실로 돌아와 수업을 하고 점심은 집으로 내려가 닭백숙을 먹었다. 3시가 지나서 오후반 수업으로 다시 올랐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저녁에는 정독독서실에 나가 딸의 친구까지 태우고 녹번동을 돌아왔다. 어제부터 갈등이 있는 아들은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고 아내는 교실에 늦게 올랐다가 11시경 수업을 마치고 내려왔다. 밤중인지 새벽인지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자다가 깨었는데 어제의 감정이 남아 있는 아내가 이제 들어온 아들을 심하게 꾸짖고 있다.
11일
어느덧 4월도 중순이 되었는데 지나고 나면 하루가 또 한 달이 순간이다. 아들의 학교에서는 반편성을 다시 했다지만 반과 담임까지 변화가 없다니 다행이고 다만 새로운 회장으로 아들이 또 나섰으면 좋겠다. 아침에 식사를 하고 10시경 체육관으로 나설 때 일찍 산에 다녀온 아내가 이제는 컴퓨터에 골몰하고 있다. 이틀이나 연속으로 아들과 심하게 대립이 있어 기분이나 심경이 복잡할텐데 역시 나에게조차 눈길은커녕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있다.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는 중에 할인까지 해 주며 지도했던 학생의 부모한테 수강료에 대하여 불만의 연락이 와서 당황스러웠다. 사람의 마음은 종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신설동으로 나갔고 그동안 세입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시설을 대부분 마무리했다. 음악실과 숙소는 물론 쪽문까지 만들었지만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에서는 원상대로 복구해야 하는 책임이 세입자에게 있다. 오후에 학원으로 들어가 점심을 하고 수업을 마친 7시에 집으로 왔더니 엄마의 치마를 입은 딸이 식사를 하고 있다. 나도 함께 자리하여 된장국으로 저녁을 먹었고 밤에 안방에서 TV를 보는 중에는 아들이 학교에서 왔는지 거실이 요란했다.
12일
잠자는 중간에 두 번이나 깨어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는데 봄이라고 해도 텅 빈 안방은 차가운 공기뿐이었다. 아무리 혼자 왔다가 떠나는 인생이라지만 고독은 끝이 없고 차라리 이승을 떠날 때 미련이 덜하여 좋을 것 같았다. 아들이 학교에 가는 8시경 식사를 마쳤고 오늘도 안산을 오르는 아내에 이어 나도 체육관으로 나가 운동을 시작했다. 12시경 밖에 나오니 바람이 부는 날 봄의 햇살로 눈이 부셨고 신설동으로 나가서는 2층 완성된 시설을 점검했다. 그 동안 호프집이었던 이곳이 주거공간과 음악실로 바뀌어 젊은 대학생이 이제부터 임대기간 2년을 여기에서 보낼 것이다. 고향에 있는 친구한테 4월30일 동창들 모임에 참석하라는 전화가 며칠 전에 이어 또 왔지만 중간고사 기간으로 어렵다는 답변을 했다. 오후에 학원으로 들어가 집에서 가져온 점심을 먹었고 식당을 수리한다는 고등학교 친구에게는 신설동 철거업자를 소개해 주었다. 오후에 교재를 연구하다가 5시경 논술교실에 가서 수업을 했고 집으로 내려간 밤에는 아들과 딸 그리고 과외선생까지 저녁을 함께 먹었다.
13일
새벽에 눈을 뜨니 평소처럼 6시가 되었고 하지만 신설동 건물에 며칠 전처럼 신경을 쓰지 않으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아침에는 아들 딸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모두가 불평의 분위기에 말 한 마디 없는 식탁이라서 하루의 시작이 무거웠다. 아들을 보면서는 앞으로 1년 남짓한 시간만 지나면 대학생이나 사회인이 될 것으로 당연히 교복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10시경 체육관으로 운동을 나갔는데 오늘은 여성 회원들이 유독 많았고 뿐만아니라 너무 시끄러워 대화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일찍 마치고 학원으로 달려가 일정을 정리하다가 점심을 먹는다고 밖으로 나왔더니 봄을 맞이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오후에 무심결에 거울에 비친 나를 보았는데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한 까닭인지 다행스럽게도 혐오스럽지 않은 모습이었다. 7시에 논술교실로 이동하여 수업을 하고 늦은 시간에는 서대문 로터리에 나가 친구와 술을 마셨는데 12시가 금방 지나버렸다.
14일
어제 짧은 시간에 급하게 술을 마셨더니 아침까지 취해 있다. 그나마 즐거운 시간이었으니 다행인데 친구든 선배든 대화가 통하는 사람과의 자리는 그래서 좋을 수도 있다. 아침도 거른 채 운동을 한다고 오전에 체육관으로 나갔고 하지만 술이 깨지 않아 어슬렁거리며 시간만 보내다 나왔다. 집으로 가는 중에는 매제한테 오랜만에 전화가 와서 반가웠고 저녁을 하자는 내 요청에는 선약이 있다며 다음으로 미룬다. 요즘 40대 마지막을 보내는 매제는 직장에서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술을 마시고 방황하는 시간이 많다고 한다. 여동생한테 들은 이야기지만 내 경험으로 보아도 그렇고 얼마 전에는 격려의 글을 편지형식으로 만들어 메일로 보낸 일이 있다. 집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고 오후에 신설동으로 나가서 내일 입주하는 세입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마지막 점검을 했다. 머지않아 군대도 가야한다는 세입자는 부모를 졸라 자신의 공간을 만들었지만 내가 판단하기에는 순서가 바뀐 느낌이었다. 초저녁에 집으로 들어가 일찍 저녁을 먹었고 어제 무리한 탓으로 수업을 하는 아내도 오기 전에 일찍 자리에 누웠다.
15일
아침부터 날이 흐렸지만 비는 오후에나 온다는 예보가 나왔다. 문득 사업으로 고전하는 친구가 생각이 났는데 아직도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그를 어찌해 볼 수가 없다. 외국에서 물건을 실은 선박이 제 때에 들어와야 하지만 설상가상 요즘은 일본의 원전 사고까지 절망의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서울에서도 랍스터나 킹크랍을 구경하기조차 힘들다니 친구 입장에서는 이렇게 일이 어렵고 안 풀리는 경우도 있다. 아침에 날이 잔뜩 흐린데도 아내는 이대부고 학부모들과 북한산에 오른다며 준비를 하고 식사를 마친 나는 어제처럼 체육관으로 나갔다. 운동을 마치고는 시내에 나가 친구와 점심을 먹었는데 완연한 봄이 되어 여기저기 개나리 목련 벚꽃 등이 화려하게 피어 있다. 오늘 신문 칼럼에는 죽기 위해 우리가 태어난 것이고 그러기에 죽음에 의연한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는 구절이 나왔다. 알다가 모를 알쏭달쏭한 내용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잠깐을 머물다가 떠난다는 것은 동서고금 불변의 진리다. 오후에 대치동으로 갔다가 저녁에는 신설동으로 이동하여 2층 마지막 보증금을 받았고 즉석에서 미납공과금 등까지 처리했다. 밤에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지만 대치동이나 신설동 하루종일 금전처리에 신경을 써서 그런지 정신은 그다지 맑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