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은 햇볕이 있어서 따뜻해보이고 상쾌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집안에 들어오면 사정이 다르다. 실내온도가 20도면 춥다는 생각이 정상인가. 30도를 넘으면 나역시 덥다고 느낀다. 지난 겨울 가스요금 폭탄을 맞은 이후로 난방에 자꾸 신경이 쓰이지만 해결책은 없다.. 외풍이 심한것도 아니어서 비닐을 창문마다 가린다고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딱 하나 방법은 겨울을 맞기전에 그만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그런 내가 할수있는 일이 아니다.ㅎㅎㅎ. 5월을 맞아 친정식구들 밥한끼 드시라고 얼마를 보내드렸는데, 고모님들이 '잘 먹었다'고 연일 전화를 해오셨다. 내게는 물론 쉬운일이 아니었지만, 딸이랑 함께 참 잘했다고 서로를 친찬했다. 나를 극진히 사랑해주신 것 알고있다. 그 사랑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한번이라도 잘한일인 것 같아서 나역시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내가 하고싶은 일이 이런일이 아니었을까. 때마다 일마다 찬조금을 내고 오지랍도 떨고 생색도 내고, 얼마나 신이날까. 그런데 하나님은 단칼에 나의 이런 허영심을 잘아내셨다. 뿐아니라 시궁창에 처넣셨다. 얼굴을 들지 못하게 하신것이다. 만일 내 원대로 살게 하셨다면, 그 기광이 어떻했을까. 허지만 그러면 또 어떠냐고, 그게 하나님을 해롭게 하는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볼맨 소리를 해보고 있다. 내가 얼마나 어리섞은 존제인지를 알고있다는게 사실은 사실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모님들과의 통화는 사실 순조롭지 못했다. 그냥 고모 목소리를 듣는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부디 사시는 날까지 건강하시길! 어제는 아들에게서 '온열 마사지'매트를 선물 받았다. 나 역시 다른 할머니들과 같았다. 선물을 해주어서 기쁘고, 고맙다는 말을 하지않았다. 왜 이런걸 샀느냐고 불평했다. 솔직히 뜬금없는 선물이었다. 좀 물어보고 사주던지 하지, 하나도 반갑지 않는게 진심이었다. 가격도 만만치 않을탠데, 헛돈 쓴것처럼, 그랬다. 아직 사용해보지 않았으니까( 잠깐 맛보기만 했다) 얼마나 좋은지는 모르겠고, 뒤늦게 찾아가서 '이런것 사주면 오래오래 살면 어떻할려고 샀어' 했다. 고맙다는 말은 아직도 하지않았다. 써보고 나중에 하고려 아껴두고 있는 것인가. 역시 어리섞다. 역시 받는게 좋다. 나는 어머니께 해드린게 없다. 늘 호주머니 생각만 했다. 무리를 해서라도 뭔가 선물을 하는게 좋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다. 남편은 있으나마나 한 존제였고, 무능한 내가 공장에서 몇푼 버는것으로 생계를 꾸려가기에는 늘 허덕여야 했다. 나는, 어머니께는 물론이고 아이들에게도 인색했다. 아니, 누구에게도 사람노릇 못했다. 친교도 서로 오가는 쌍방통행이어야 지속가능하다. 나는 그걸 못했다. 딸은, 꼭 없어서가 아니라 성향이라고 꼬집었지만, 딸이라고 어찌 다 알겠는가. 나를 묻어버리고 오직 생계에 전심일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누군들 알겠는가. 남편이 떠난지 24년이 지났다. 인간적인 측은 지심이 아예 없는것은 아니지만, 무슨 장애 무슨 장애라고 말들을 많이 하지만, 이해하기 정말 힘들고, 용서는 더욱 안돼는게 남편이다. 이웃집 남자라면, 뭐 그런사람도 있을수 있겠지, 할수도 있지만 내 남편으로는 아니다. 내가 깜량이 안된다. 이해하고 사랑하고 품어야할 가족이라고? 나는, 내가 이해받고 사랑받고 품어주길 바라는 사람이었다. ㅎㅎㅎ. 나는 시골 소녀였다. 풀꽃을 좋아했다. 사랑을 사랑했다. 먼 하늘을 보며 공상의 나래를 펼치며 소녀시절을 보냈다. 그 어리던 소녀는 지금 반지하에서 노년을 외롭게 살아간다. 가끔 하늘을 보기도하고, 구름을 보기도 하면서, 그리고 어릴쩍 소녀을 잊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