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에 떨어지는 찬물 한 방울
- 김종철의 '곤충채집'
강인한
여름방학이 되면 으레 숙제가 발목을 붙잡아 마음이 편치 않았던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나를 괴롭힌 건 식물채집이라거나 곤충채집이었다. 열심히 친구들과 함께 풀숲에 들어가 나는 메뚜기며 실잠자리, 방아깨비 같은 것들을 잡았다. 매미를 잡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어른 엄지손가락만큼 크고 검게 빛나는 매미를 잡아 곤충 표본을 만들어 숙제로 제출하는 아이가 그렇게 부러웠지만, 높은 벚나무 가지 혹은 미루나무 우듬지 어딘가 숨어 있는 그 매미를 찾아내는 일조차 나에게는 쉽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아쉬웠던 추억으로 보물찾기도 생각난다. 소풍 가서 보물찾기 시간에 다른 애들은 잽싸게 뛰쳐나가 몇 장씩 보물 표시의 종이조각을 찾아내건만 나는 한 번도 찾아낸 적이 없었다. 셜록 홈즈처럼 조심스럽게 쪼그려 앉아 괴석 같은 돌을 살그머니 떠들어 보기도 하고, 나무 등걸의 수상한 구멍 같은 것을 손가락으로 후벼 보기도 하였지만 내게는 보물찾기는 진짜 보물찾기라도 되는 양 어렵기 짝이 없었다.
은빛 핀으로 죽은 곤충을 꽂아 상자에 정리하고 방학이 끝나 숙제로 제출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왠지 내가 만든 곤충 표본들은 한결같이 힘없이 바스러지고 가는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둥 형체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항상 초라한 꼴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알콜 처리를 하지 않아서 그렇게 엉성한 결과물이었을 것 같다.
쓰르라미, 잠자리, 풀무치
생체로 잡아 핀으로 꽂아두었다
푸들거리며 갇혀 떠는 곤충들이
우리들 눈에는 즐거웠다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더 이상 죽지 않는 그들의 여름을
우리는 추억처럼 간직했다
삼십여 년이 지난 요즘도
꿈속에서 화들짝 놀라 깰 때가 있다
아직 숙제를 끝내지 못한 여름 하나가
밤마다 나를 잡기 위해
포충망을 들고 따라다녔다
등에서 복부를 관통한 핀 하나가
나를 더 이상 꿈꾸지 않게
더 이상 떠들지 않게
그 여름의 끝에 매달아 두었다
그때마다 곤충이 아니길 기도했지만
내 옆에는 벌써 두어 사람이
십자가에 못질되어 울부짖었다
― 김종철의 「곤충채집」
누구나 이 시의 첫 연에서 느낀 건 소박한 유년의 기억일 것이다. '더 이상 자라지 않고 / 더 이상 죽지 않는' 곤충 표본에서 문득 귄터 그라스의 「양철 북」이 떠올랐다. 그 작품 속의 성장을 멈춘 주인공 소년 오스카를 연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나는 그라스의 소설을 직접 읽어보진 못했으나 영화 「양철 북」을 퍽 의미 있는 작품으로 인상 깊게 보았다. 철탑 위에서 고함을 치는 오스카, 그 소리에 깨져 나가는 유리창들. 죽은 말 대가리가 해안의 바닷물에 잠겨 있고, 그 눈과 콧구멍 귓구멍 속으로 넘나드는 뱀장어들. 세월처럼 덧없이 흘러가는 기다란 열차. 영화라 해도 심상찮은 상징과 세태에 대한 풍자가 무섭게 번뜩이는 빼어난 수작이었다.
죽은 곤충은 더 이상 죽지도 않고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성년의 나이에도 성장을 멈춘 채 양철 북을 가지고 노는 오스카, 그가 즐거운 여름의 추억거리가 된다는 무심한 고백이 사실은 얼마나 끔찍한 말일 것인지.
이 시의 둘째 연은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첫 연과 대비되는 이 둘째 연에서 시적 화자가 곤충으로 환치되어 나타난다. 한 마리 곤충처럼 시적 화자를 포획하러 나타나는 것은 '아직 숙제를 끝내지 못한 여름'이다. 그 숙제란 무엇인가. 바로 이 시에서 시적 화자를 십자가라는 핀으로 꽂아두고 즐거운 추억거리로 삼는 일이다. 거기에는 아무런 죄의식도 개재되어 있지 않다. 단순한 놀이일 뿐.
'더 이상 꿈꾸지 않게' 등에서 복부로 관통하는 핀의 정체는 마지막에 십자가로 드러난다. 처형인 것이다. 꿈꾸고 싶어하는 건 인간의 본능과 닿아 있다. 꿈, 곧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인간에게는 천부적으로 주어져 있는데 그 꿈을 박탈하기 위한 처형이 나에게 가해진다. 무엇 때문일까. 시인은 거기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내가 알기로 시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그는 이 시에서 '십자가'를 인류에 대한 구원의 상징으로 표현하지 않고 인간에게 가해지는 무서운 처형 도구로 형상화하고 있다.
내 옆에는 벌써 두어 사람이
십자가에 못질되어 울부짖었다
무섭고 섬뜩하다. 빙긋이 웃음 지으며 추억을 즐기는 '숙제를 끝내지 못한 여름'의 상징성을 생각해 본다. 운명, 절대자, 대우주 이런 것들도 생각나지만 그보다는 우리 인간들이 저지르는 무심한 죄의식― 아무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죄의식이 바로 그 여름의 정체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사실은 엄청난 죄일 수도 있는 그 무심한 행위가 우리 스스로를 십자가에 못질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김종철의 이 시는 단순한 생명 존중의 차원을 넘어 그 이상의 것으로 뇌수를 찔러온다. 마치 얼음처럼 차가운 물 한 방울이 문득 이마에 떨어지는 듯한 느낌으로 읽히는 충격과 예지의 시이다.
근래에 읽은 김종철의 시집 『등신불 시편』에서 이 시를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모호하고 난삽한 시들이 넘쳐나는 요즘의 오탁(汚濁) 속에서 한 줄기 맑은 생수를 보는 듯했다.
(2001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