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영웅 워커장군
며칠 전 하버드 박사 과정을 포기하고 한국 전쟁에 참전해 28세의 나이로 전사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이야기를 썼다.
글이 나간 후 많은 분들이 "이런 분이 계신 줄 몰랐다. 너무 부끄럽고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반응들이 내게는 조금 충격적이고 씁쓸하게 다가왔다.
우리가 매일 숨 쉬고 밥을 먹으며 당연하게 누리는 이 나라의 평범한 일상이 실은 남의 나라 청년들의 찢어지는 피와 눈물 위에 세워진 기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철저하게 잊고 살았구나 싶어서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 먹먹한 부채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았던 또 다른 기가 막힌 사연 하나를 더 써볼까 한다.
1950년 여름, 6.25 전쟁 초기.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북한군 앞에서 대한민국은 멸망 직전이었다.
임시 수도 부산이 지척인 낙동강 방어선. 미 제 8군 사령관 월튼 워커(Walton H. Walker) 중장은 후퇴를 입에 올리는 미군과 한국군 지휘관들을 모아놓고 권총을 빼들며 그 유명한 명령을 내린다.
"Stand or Die" "버티거나, 아니면 죽어라."
우리가 여기서 밀리면 수백만의 한국인들이 바다로 쫓겨나 학살당할 것이다.
덩케르크는 없다. 더 이상의 후퇴는 없다.
그는 그 절망적인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며 기어이 대한민국의 숨통을 살려냈다.
우리가 아는 서울 워커힐(Walkerhill) 호텔의 이름이 바로 이 장군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것은 익히 알려진 유명한 일화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당시 그 끔찍한 전장에는 8군 사령관인 아버지 워커 장군뿐만 아니라, 그의 외아들인 24세의 샘 워커(Sam S. Walker) 대위도 미 제 24 보병사단의 중대장으로 소총을 들고 최전선에서 함께 뒹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미국 최고의 장성이 자신의 귀한 외아들을 가장 위험한 사지로 밀어 넣은 것이다.
비극은 1950년 12월 23일에 찾아왔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다시 악화되던 매서운 겨울, 전선을 시찰하러 이동하던 워커 장군의 짚차가 서울 도봉구 부근에서 한국군 트럭과 충돌해 전복되었다.
'낙동강의 영웅' 워커 장군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도쿄에 있던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는 최전방에서 중대장으로 전투를 지휘하고 있던 워커 장군의 아들, 샘 워커 대위에게 특별 지시를 내린다.
부친의 유해를 모시고 당장 미국 본토로 귀환하라.
아버지가 전사했다. 장례를 치러야 한다.
최고 사령관이 직접 귀국을 명령했다. 그 어떤 누구도 이 24살의 청년 장교가 짐을 싸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비난할 수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 합당하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완벽한 '명분'이었다.
하지만 얼어붙은 참호 속에서 아버지의 부고를 전해 들은 청년 장교는, 그 달콤하고도 합당한 생존의 동아줄을 단칼에 찢어버린다.
샘 워커 대위는 맥아더의 귀국 명령을 거부하며 이렇게 타전했다.
나의 부하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목숨을 걸고 악전고투하고 있습니다.
중대장인 제가 어찌 부하들을 이곳에 버려두고 나 혼자 살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남겠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차가운 관을 홀로 태평양 너머 알링턴 국립묘지로 돌려보냈다.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대신, 그는 다시 수류탄을 챙기고 눈 덮인 전방의 참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버지는 타국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불사했고, 아들은 자기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아버지의 장례식마저 포기했다.
그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모를 나라에 총과 대포만 보낸 것이 아니다.
미국 상류 사회의 가장 고결한 도덕과 핏값을 함께 보낸 것이다.
이것이 얄팍한 이념 장사꾼들이 틈만 나면 훼손하려 드는 '한미동맹'의 진짜 밑바닥에 흐르는 묵직한 본질이다.
화사한 봄꽃이 피어나는 출근길. 우리가 숨 쉬듯 당연하게 누리는 이 4월의 아침은 아버지의 관을 태운 비행기가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다시 총을 쥐었던 24세 이방인 청년의 그 거룩하고도 고독한 뒷모습 위에 세워진 기적이다.
위기가 닥치면 특권 뒤로 숨기 바쁜 비루한 시대에, 진짜 어른이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가 가슴을 서늘하게 짓누른다.
기록 "My men are fighting hard. I cannot leave them. I will stay here."
해석 내 부하들이 악전고투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떠날 수 없습니다. 저는 이곳에 남겠습니다.
-1950년 12월, 부친상으로 인한 귀국 명령을 거부하며 샘 워커 대위가 맥아더 장군에게 타전한 내용.
= 옮겨온 글 =
漢陽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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