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탕이 좋다. 입안이 쓸때 말고도 달콤한 사탕은 늘 좋다. 예전에 큰할머니께서도 사탕을 즐기셨다. 할머니 곁에는 사탕이 담긴 바구니가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나누어 주시던 사탕은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의 사탕은 할머니 권력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사탕 하나면 얼마나 공손해졌던지, 나만 그랬을까. 작은집 어린 고모나 아제들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사탕의 위력은 대단했던 것 같다. 사탕 한알을 입에 물었을때 느낀 달콤함은 그냥 행복 그 자체였는데,,, 그때는 단순해서 였을까, 소박해서였을까. 지금 아이들은 아마 상상도 할수 없을게다. 그만끔 더 좋은 먹거리가 널리고 널려 있으니까. 우리 손주들만 해도 뭘 사달라고 조르거나 보체는 것을 본적이 없다. 초코렛이나 과자나 과일이 늘 대기중이고 장난감도 지천이다. 옷이며 신발도 구하지 전에 미리 준비되어 있다. 어쩌면 하나님보다 더 유능한 부모를 곁에 두고 있는 듯 하다. 이것은 아닌듯 싶다. 사람이면 필요한 욕구를 갖는게 당연하고,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열심을 내기도하고 노력도 기울려야 하는게 아닐까. 아무것도 할필요가 없을정도로 다 있는 일상이 무슨 의욕이 있을까. 마치 다 늙어버린 노인들처럼, 하고싶거나 해보고 싶거나 하는 희망마저 없게된게 누구 탓인지 모르겠다. 아니, 마치 나 처럼, 희망없는 인간도 예나 지금이나 있게 마련일지도 모르겠디. 씁쓸한 얘기다.
오늘은 작은 시누님의 손자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불참을 표하긴 했지만, 친인척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아니, 이건 친인척이 문제가 아니라 평소에 친밀감이 척도가 아닐까. 시누이와는 가끔 카톡을 받고 안부를 드리는 정도로 지내고 있다. 조카 내외와는 평생동안 서로간에 연락 없이 살아왔고, 결혼 당사자는 얼굴은 커녕 이름도 모른다. 친 인척이 맞아? 어쩌면 애경사를 통해서라도 관계를 트고 살아야하는게 친인척인지도 모르겠지만, 이것도 다 늙어서 오늘 가던 내일 가던 놀랄것도 없는 상황에 이른 내가 할 일은 아닌듯하다. 늙어서, 몸가누는 것마저 불편한 천덕스럽고 거추장한 모습을 누가 반겨준다고? 사실, 시집쪽으로는 조카들이 많다. 내 쪽에서 어른노릇 못하고 살았으면서 무슨 문안 받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 다들 바쁘게 사는 상황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이미 친인척이나 친구마저도 필요한 시절은 지난것 아닌가 싶다. 혼자서 빈둥대며 살다가 외롭게 죽는게 정해저 있는 수순아닌가. 달콤한 사탕이나 빨면서 말이다. 친정쪽 사촌들도 연락 없이 살고있다. 그게 나 아닌가. 굴욕이 맞다. 사탕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