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가 지날 때면 윗집할머니에게 절기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추분이 지날 때 가야지 가야지 하던게
한로를 코 앞에 두고야 할머니댁에 갔다.
마침 할머니는 떡취 씨앗을 받고 계셨다.
인사를 하자마자 할머니는
“떡취 씨앗받으려면 따서 가져가.
그냥 오지말고 담을 그릇을 가져와야지”
손에 잡히는 박스 하나를 들고 엉거주춤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떡취를 산등성이에 많이 심어두셨다.
할머니는 길게 올라온 떡취 꽃대를 낫으로 베고 계셨는데
허리가 아파서 힘에 부친다고 하셨다.
안그래도 할머니 일을 좀 도와드리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
나는 꽃대를 낫으로 베고
할머니는 정리하는 일을 했다.


할머니가 주신 떡취(수리취) 꽃대. 햇볕에 말렸다가 털면 씨앗이 나온다.
"한로에는 서리가 내리는 절기지.
서리내리기 전에 고추, 호박, 밭작물을 모두 수확해야 해.
서?� 맞으면 맛이 없어.
서리가 내리면 더 알곡이 익지는 않아. 마르는 거지."
올해는 한로 전에 된서리가 내렸다.
비가 많이 와서 곡식이 잘 안익었는데도,
서리로 갈무리는 빨리 시작됐다.
할머니 밭에는 이제 덜익은 팥과 수수, 김장농사만 남았다.
들깨도 수확해서 갈무리까지 모두 끝내셨다.
할머니에게 갈무리 일을 좀 거들고 배우려고 했는데...
할머니는 느리면서 아주 빠르시다.
무술하는 사람처럼.
내년 농사를 생각하며 고추농사에 대해 궁금한 것을 여쭈었다.
"모종이 있기 전에는 고추농사를 어떻게 지으셨어요?"
"춘분지나 땅갈고 나서 고추씨를 헤프게 뿌렸지. 그럼 가을에 빨간 고추가 돼.
고추씨를 사지 않았으니 그렇게 할 수 있었어."
올 해 입하 이후에 직파한 고추가 이제야 빨갛게 되었는데,
다 방법이 있었다.
김장하면 이제 한해 농사 갈무리는 끝난다.
"김장하고 겨울에 뭐하며 지내세요?"
"노인정에 모여서 맛있는거 해먹고, 화투치며 놀지"
한글을 아시는지 조심스럽게 여쭈었는데, 할머니는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하셨다.
참 멋있다.^^·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야지.
피난 때 나 혼자인가 싶다가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다 어울려 살라고 있는거야."
난 그 시대를 경험하지 않았지만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해본다.
할머니를 만나면 보물지도를 하나씩 풀어가는 느낌이다.
절기이야기도, 예전에 짓던 농사법도.
할 말 없다고 하시다가도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보면 다 나온다.
올 겨울,
마을 할머니들과 어떻게 만나면 좋을까.. 재밌는 상상을 해본다.
첫댓글 한로, 서리, 된서리, 갈무리... 참 정겨워요. 윤정이처럼 이웃 할머니 마실가고 지혜 듣고 그렇게 지내고 싶어요. 윤정이 글 편안해요. 또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져요. 대학시절 신문 연재소설 읽으며 다음 편 기다렸는데, 그런 느낌이에요.
며칠전 누군가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고 알려주었을 때 나는 별 생각 없었는데... 시골에서 살면 서리 내린것이 생활에 영행을 많이 주네요..
안녕~ 서리마냥 지연도 때가 되니 왔군요.
홍천에 계신 할머니 말씀을 이곳에서 윤정언니를 통해 생생히 들을 수 있으니
할머니와의 만남이 참 반갑고, 또 기다려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