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뉴스타임지 인문학 칼럼)/ 2024/06/25
느림과 엔트로피의 역설, 시 ‘연애’
이민숙(시인, 샘뿔인문학연구소장)
(1)무릉도원 : 느림과 엔트로피의 역설, 시 ‘연애’에 대하여 쓰는 6월이다.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고 발가락으로 발바닥 세포를 활짝 열어젖히면 모래알이 먼저 살살살 맨살을 쓰다듬는 곳, 물결은 잠방잠방 종아리를 두드리며 좋아라 한다. 이 세상의 성급한 오물들을 모조리 씻어주려는 듯...아니 그냥 가슴속 엉킨 이야기들일랑 펼쳐놓으라고...서늘한 바람결마냥 석기시대에 만들어준 대나무 빗마냥 정갈하게 빗겨준다는 듯...우리를 단박 무위의 살구맛으로 끌어당기는 그런 시공간이 있다. 여수 웅천 바닷가 해수욕장 그리고 예술의 섬 장도 나들목...
어느새 한 발자욱이 한 시간이 지나왔다고 수평선을 가리킨다. 하늘 한 번 쳐다봤을 뿐인데...저 아저씨는 언젠가부터 간이의자에 앉아 시를 읽고 있다. 그러다가 살짝 졸기도 한다. 저만큼 어느 부부도 자박자박 물결을 일으키며 걷고, 서넛이 함께 온 여자들 친구 손을 잡고 걷는다. 모래밭엔 하얀 치마를 펼치고 앉아 소나무 동산에서 내려온 비둘기랑 놀고 있는 여섯 살 남짓 보이는 여자아이...새가 안 도망가네? 신기한 듯 웃는 아이의 엄마...어찌 애기 키우기가 어렵다고 하나...이 모래밭 사랑이면 될 일을...느릿느릿 돌아다니는 비둘기가 글 쓰고 있는 의자 곁에 쫑쫑쫑 다가온다. 사랑스런 녀석! 팽나무 사이로 돌아다니며 짹짹거리는 새소리는 뱁새?
이곳이야말로 사랑 천지라는 듯...어떤 남자분 내 곁에 앉더니 노래를 흥얼거린다. 앗! 간식으로 가져온 뭔가를 먹으려고 팽나무 나무젓가락을 만드는? 우와 수렵채취 시대의 풍경이 연출 아닌 실재... 어깨 너머로 보아하니 수박 조각들이 담긴 컵을 들었다 놨다... 쩝! 새들은 금세 그 수박씨 냄새를 맡고 쪼르르...
사이, 장도로 건너가는 바닷길은 밀물만조가 되어 가만 닫혔다... 몇 시간 기다렸다가 열리는 그 길 위로 바닷물 초르르 들락날락거린다. 아무도 열 수 없는 물길, 물의 명령에 모래밭 오락가락 걷는 사람들 편안한 시간을 견딘다. 견뎌도 견뎌도 평화로운 이 자연스러움, 그러나...우리가 건설해온 문명, 평안하고 편리한 집으로 돌아오면, 그곳엔 바람을 일으켜주는 선풍기, 에어컨, 그리고 또... 그 많은 문명의 도구들이야말로 얼마나 크나큰 열망의 숨가쁨 따라 도배된 성취감의 바벨탑인가!
(2) 욕구충족이 남긴 엔트로피
과학적 개념이 대세였던 시대(이른 바 문명의 삶)로부터 인간은 ‘에너지’라는 피할 수 없는 삶의 정통성을 구가하게 되었다. 그 법칙은 이렇다.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며(열역학 제1법칙), 엔트로피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제 2법칙) --제 1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으로서, 에너지는 결코 창조되거나 파괴될 수 없으며, 한 가지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화할 뿐이다. 열역학 제1법칙뿐이라면 에너지가 고갈될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제2법칙은 말한다. 에너지는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갈 때마다 “일정액의 벌금을 낸다.” 여기서 벌금이라는 것은 ‘일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가 손실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바로 엔트로피(Entropy)이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유용한 에너지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레미 러프킨 [엔트로피]에서
우리의 삶은 이렇듯 역설적이다. 살면서 누리면서 친하게 지내는 ‘자연’임에도, 그곳에서 사는 방식의 차이에 따라서 인간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에너지와는 반대로 소모적 엔트로피의 과정(쓰레기 역)일 수 있다는 것이며, 우리는 이미 그 과정과 결과를 ‘경험’ 속에서 알고 있다. 스스로 만들어내는 그 엔트로피는 더 이상 우리의 에너지 총량으로 되돌릴 수 없다. 그러므로 지구(지구인 인간)는 남아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태부족한 시대에 와 있다는 것을. 저 먼 사막의 나라들이 보유한 에너지들도 곧 고갈될 것이라고 했지 않았는가? 그것과 연관관계가 필연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지구인들은 끝없는 소모전 내지는 권력다툼, 제국주의적 만용, 그리고 이유 없는 살상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가공할 통계치는 가상의 세계 같은...지겹지도 않은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역시, 위협과 위험에 끝없이 노출되어 있다.
(3)저(低) 엔트로피: [엔트로피의 최소치]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디서 왔는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제 와서 묻는 건 새삼스럽지만, 지금 다시 물어야 하는 건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이다. 그 물음과의 관계 속에 底 엔트로피로의 인생 목표가 생겨날 수 있다. 그건 단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닐 터. 底 엔트로피 세계관의 윤리적 기준은 에너지의 흐름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검약’은 중요한 덕목이 된다. “우리가 찬양해야 할 것은 절제, 단순함, 자발적인 가난, 한계의 인정 같은 것들이다. 인간의 신념을 밝히려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E.F. 슈마허
문명의 시대에 진입하여 최고의 성장을 위한 노력으로 여기까지 온 인류는 어떤 진로를 새롭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 전국가적 목표치는 해마다 고성장 통계치의 첨단 수치였다. 무엇이 행복을 견인하는가 라는 물음의 리서치에, ‘성장’ ‘고소득’ ‘OECD 국가중 상위권’이 아니라고 답하지 못 할 것이다. 21세기 행복의 개념 속에 든 우리들이야말로 그러한 교육의 피해자인가? 세계가 직면한 문제는 이렇다. 성장을 꿈꾸는 더 많은 개발도상국가가 지구의 엔트로피를 책임질 수 없다는 것. 그들의 노동시장은 더 확장되어야 하며 그들의 빈곤지수는 더욱 개선되어야 한다. 그리고...역설의 총화라면! 선진국인 우리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 나뭇잎 하나가 햇살에 반짝일 때의 그 한없이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아침 바다가 그립다. 파도에 흔들리던 모래 속 작디작은 투명 물고기의 살랑거림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런 시간을 그리워하며 이 글을 끝맺을 수 있다는 건, 이제 곧 막바지에 이른 지구의 에너지를 가장 적게 소모하는 시의 한 구절을 기억하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실제로 꿈이겠지만 말이다.
인간은 물이다
물은 비다
비 내리는 숲에서 맨발이 되었다
나무처럼 풀잎처럼 젖어들어
발바닥을 핥는 두 마리 고라니
비 내리는 개펄에서 맨몸이 되었다
온바다에 엎어진 영혼
뻘로 태운다
여전히 껍데기인 삶의 조개들,
부드러운 혀로 살살 속살을 채운다
파도치는 바다에 닿으면
온우주는 물의 비늘이 되어 윤슬윤슬
마침내 우리는 살조차 우리의 것이 아니다
혀 속으로 혀 속으로 처절하게 녹아내리는 살
뻘 속으로 뻘 속으로 솜사탕이듯 달콤한 발가락
연애, 얼마나 눈물 아픈가
그 얼마나 치명적인가
여자인 한 벌레와
남자인 한 곤충이 벌이는 자기해체
몸부림 훔쳐본 神이 또 한 외톨박이를 점지했던가
뜨거워져야 할, 피할 수 없는 생의 비의 (秘意)
유혹하는 노을, 절대적 연애론자
그대여 뻘의 동굴로 오시든지 말든지!
-<연애>전문 /이민숙 /『지금 이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