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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적 사유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 책의 주제가 그리 낯설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흔히 ‘업(業)’이라 번역되는 카르마, 그리고 그로 인해 이승에서 자신이 쌓은 업으로 인해 내세의 삶의 결정된다는 인과론은 불교 사상의 핵심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독교와 서양철학에 익숙한 저자에게는 이러한 이론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던 것 같다. 때문에 이러한 주제에 대해서 오랫동안 연구하고, 이를 토대로 대중강연을 한 결과 이러한 저서를 엮어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불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종교는 현세 중심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생전의 신앙이나 행동으로 인해 사후에 천당 혹은 지옥에 갈 수 있다는 내용도 있지만, 이러한 교리는 현세의 삶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맨리 P. 홀의 환생 강의 제1부’라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저자가 행했던 강의 원고를 엮은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 책의 문체에서도, 강의의 어조들이 그대로 옮겨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많은 사람이 환생을 육신에 속박된 인간이 머나먼 옛날에 진 도덕적 빚을 갚고, 다시 태어날 때마다 새로운 빚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영원히 되풀이하는 굴레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면, 지극히 초라하다고 자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환생으로부터의 해방은 자기의 개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을 때 성취할 수 있는 것’이기에, 저자는 각자 자신의 경험을 쌓으면서 스스로의 삶을 개선해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것이 어쩌면 환생의 굴레에서 벗어나 ‘불멸의 영혼’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도기 때문이다.
전체 3부로 구성된 내용 가운데 첫 번째 항목은 ‘전생과 삶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다루고 있다. '마무리 하지 못한 일의 무게'라는 보충 설명이 덧붙여 있는데, 대체로 환생과 카르마의 뜻을 설명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아마도 강의의 청중들도 대부분 불교이론에 밝지 못한 서양인들이라고 생각되기에, 저자는 서양철학 또는 기독교적 인식과 동양철학 곧 불교적 세계관에 대한 비교를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매 장의 표제를 적은 뒷면에 불교를 비롯한 각 종교의 격언들을 하나씩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저자의 이론이 특정 종교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종교에서 추구하고 있는 가치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 의도가 담겨있다고 여겨진다. 저자에 의하면 카르마는 ‘마음에 들지 않고 잊어버리고 싶은 것들이 뒷주머니에 담긴 상태’로 비유된다. 때문에 우리는 살면서 애써 자신의 카르마를 직시하기보다 살면서 성취한 자랑스러운 것들을 과시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익히 알고 있다시피 서양의 종교와 철학에서는 개인주의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 반면에 동양의 종교와 사상들은 흔히 ‘도(道)’로 상징되는 삶의 진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자기를 다스리는 법’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이기주의와 자연의 법칙이 맞선다면 항상 자연의 승리를 귀결되기에, 사람들은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인내심과 공감 능력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삶의 자세가 바로 새로운 빚을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삶을 성찰함으로써 카르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전생의 업보를 안고 태어났나?’라는 질문의 두 번째 항목은 특히 사람들의 노년의 삶의 자세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과학과 의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기대 수명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렇게 늘어난 수명에 비례해서, 사람들은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노년의 삶에 대해 혼란스럽게 생각하는 경향도 적지 않다. 저자는 젊어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살아야 했다면, 노년의 삶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사와 헌신하는 삶을 통해서 내면의 가치를 살찌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제 서서히 노년을 준비하는 나이인지라, 자기를 성찰하고 지혜롭게 시간을 활용하라는 저자의 조언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또한 인생의 후반부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서전을 쓴다는 마음으로, 노년의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당부하고 있다. 이 역시 자신의 카르마를 축복으로 만들면서, 죽음 이후의 삶에 대비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항목은 ‘인간은 태어나기 전에 다음 생을 선택하나?’라는 질문이다. ‘카르마라는 보상의 법칙이 정상적으로 작용하고 실현되기 위해서는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따라서 그러한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자는 끊임없는 공부를 강조한다. 인간의 존재는 육신과 불멸의 영혼을 정의할 수 있는데, 육신이 죽은 후 남은 인간의 객관적 상태인 육신에서 주관적 상태인 영혼으로 전환된다고 한다. 따라서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면서 자신이 영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종교의 교리를 통해서 그 당위를 설명하고, 자기 성찰을 통해 삶을 진솔하고 풍성하게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좋은 카르마’를 많이 만들어 내기 위하여, 일상의 부정적인 것을 억제하고 줄여나가면서 내 안의 좋은 것들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관념론에 치우친 시각이라고 파악되지만, 그 내용은 삶의 올바른 방향을 정립하는 데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뒷부분에는 각 연령층에 맞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스스로 답변을 하면서 ‘자기 성찰을 위한 자서전’을 써보도록 하는 내용의 부록을 것붙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나를 포함하여 적어도 불교 사상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그 내용이 그다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카르마라는 관점에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조언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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