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지식백과] ‘감정독재’와 싸우는 법 (감정독재, 2014. 1. 9., 인물과사상사)
분노, 슬픔, 두려움, 즐거움, 사랑, 놀람, 혐오, 부끄러움 등 8명의 가족과 그밖의 여러 식객을 거느리고 있는 감정은 한마디로 말해 ‘행동하려는 충동’이다. 감정(emotion)이라는 단어는 ‘움직이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 ‘모테레(motere)’에 ‘떠나다’의 뜻을 내포한 접두사 ‘e’가 결합된 것으로, 이는 행동하려는 경향성이 모든 감정에 내재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그래서 캐나다 신경학자 도널드 칸(Donald Calne)은 “이성은 결론을 낳지만, 감정은 행동을 낳는다”고 말했다.
1899년 『유한계급의 이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을 출간한 미국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은 합리적 이기심을 경제행동의 기본 동기로 본 주류 경제학, 즉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합리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효용을 계산해 선택한다는 평균적 인간 유형을 가정한 신고전학파의 이론은 잘못되었다”며 인간은 그보다는 탐욕, 공포, 순응 등과 같이 훨씬 근본적인 심리적 힘에 의한 지배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베블런 역시 학계에서는 ‘왕따’를 당한 인물이었지만, 오늘날 전성기를 맞고 있는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은 감정의 힘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베블런의 계보를 잇는 것이다.
미국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Dan Ariely)는 “경제학은 종교입니다. 경제학은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행동하며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도록 행동하리라고 가정하죠. 하지만 이것은 믿음일 뿐 증거는 없어요”라고 단언한다.
행동경제학의 대중화 덕분에 이제 우리는 인간이 ‘합리적 존재(rational being)’라기보다는 ‘합리화하는 존재(rationalizing being)’라는 걸 상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2006년 1월 28일 미국의 성격과 사회심리학회 연례학술대회에서 에모리대학 드루 웨스턴(Drew Westen) 교수 연구팀은 “정치적 판단을 할 때 인간의 뇌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 영역이 작동한다”는 요지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성균관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이정모는 감정적 판단은 사전에 가진 신념이나 감정 중심으로 이루어지므로 여러 정보를 분석해야 하는 이성적 판단보다 속도가 빠르다며 “감정적 판단이 이성적 판단보다 발달한 것은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 우리는 생존과 번영에 유리한 길을 찾아 진화해왔으며, 속도가 생명인 인터넷과 SNS로 대변되는 커뮤니케이션 혁명의 결과로 과거보다 더욱 견고한 ‘감정 독재’ 체제하에서 살게 되었다. 속도는 감정을 요구하고, 감정은 속도에 부응함으로써 이성의 설 자리가 더욱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감정 노동(emotional labor)’과 ‘감정 자본주의(emotional capitalism)’가 주요 이슈로 등장한 것도 바로 그런 변화와 무관치 않다. 감정 독재가 심화되면서 자본이 감정을 활용해야 할 ‘감정 식민지화’의 필요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