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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6일
어제는 강의를 적게 하고 특별한 일도 없이 지냈는데 하루의 의미가 없다. 역시 사람은 목표를 정하고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가운데 삶의 보람과 기쁨이 생기는 것이다. 화창한 아침 아들과 딸이 등교를 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나는 식사도 거른 채 안방에서 TV를 보며 보냈다. 아내도 피곤한지 오전에 깊게 잠을 자더니 10시에 일어나 수업을 한다고 교실에 오르고 나도 체육관으로 나가 운동을 시작했다. 12시경 마친 후 학원으로 가서는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먹었고 오늘과 내일 사용할 프린트와 자료를 준비하며 보냈다. 다음주부터 5월 초순까지는 각 학교마다 중간고사를 실시하는 기간이라 바쁠 것인데 그래도 매사 즐거운 마음으로 임할 것이다. 오후에 식당을 수리하겠다는 친구의 전화가 와서 신설동 철거부터 방음까지 마무리한 고려대 근처에 사는 정사장을 소개했다. 경기도라 거리는 있지만 생각보다 공사가 크고 정사장이 일을 성실하게 처리하는 사람이라 친구에게 흔쾌히 추천을 한 것이다. 며칠 전에 있었던 향우회 모임에 사무국장을 맡았던 내가 불참했더니 조직이 어수선한 것 같았고 하지만 이제는 내가 특별히 신경을 쓸 상황이 아니다. 오후에 집으로 돌아오니 아들이 안방에서 TV를 보고 논술교실 올라가 수업을 마치고 온 밤에는 혼자서 정신없이 저녁을 먹고 있다. 하지만 낮이나 저녁이나 타인을 대하듯 고개도 돌리지 않는 아들로 인하여 존재감이 사라진 나는 초라하기만 했다.
17일
밤새 콧소리에 잠을 설쳤고 자다가 일어난 아내는 조만간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단과 치료를 받겠다고 한다. 코골이의 원인은 구강구조에 문제가 있다지만 대부분 비만에서 생기기 때문에 자신과 싸워 극복해야 하는 과제다. 무엇보다도 땀이 쏟아질 때까지 운동을 하고 적극적으로 체중을 줄이는 혹독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일요일을 맞이한 새벽에 서대문구청 주관으로 안산에서 걷기대회가 있다며 아내와 봉사활동 2시간을 얻겠다는 딸도 나섰다. 어제 먹던 김치찌개로 식사를 해결하고 아침부터 논술교실에 올라가 1시경까지 고1,2 수업을 연속으로 4시간 진행했다. 하지만 어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여 피곤했고 가르치는 내용까지 시험범위와 달라 집중력이 떨어진 시간이었다. 점심에 집으로 와서 아내와 닭곰탕으로 식사를 했는데 산에 다녀온 딸은 도서관에 아들은 오전부터 외출한 상태다. 3시경 다시 논술교실에 올라가 오후반 수업을 하고 날이 어두워지는 시간에 호젓한 한양아파트 길을 걸어서 내려왔다. 집에 들어서니 아들은 아직도 보이지 않고 수업으로 교실에 오른다는 아내와 도서관에서 돌아온 딸이 식탁에 앉아 있을 뿐이다. 저녁에 삼겹살로 혼자 저녁을 하면서 양주에 넣으려고 냉동실 얼음을 찾았더니 여러 번 당부를 했음에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내 이야기는 결국 헛소리에 불과했지만 살면서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눈치있게 대처하는 것도 행복을 만드는 기술이다.
18일
어제는 여의도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화사한 벚꽃축제가 성황이었고 상춘객들로 절정을 이룬 최고의 봄날이었다. 주말에 봄나들이를 하며 즐겁게 보낸 사람들과 달리 나는 수업을 했지만 그렇다고 부러움이나 아쉬움은 전혀 없다. 그들이 땀을 흘리며 일하는 주중에 산을 가고 운동도 하며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누리기 때문에 피차 마찬가지 입장이다. 어제 저녁에 얼음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 그것도 스트레스라고 술을 마시고 잤었는데 새벽에 다행히 머리는 맑아졌다. 비가 내리는 아침에 된장국으로 식사를 하고 체육관에 나가 달리기와 기구운동까지 며칠 만에 땀을 많이 흘렸다. 12시경 밖으로 나와 김밥을 주문하여 성북동 학원으로 달렸고 중간에 수업을 중단한다는 수강생 부모의 전화도 왔다. 오늘이 4월의 하순인데 강원도 한계령에는 폭설이 내려 인터넷 화면에 설원으로 비치는 모습이 장관이다. 점심을 먹고 오후를 보내다가 6시에 집으로 돌아왔고 곧장 논술교실로 오르는 중에는 아들이 수업을 듣는다고 따라왔다. 이대부고 국어시험을 위한 정리라고 했더니 오랜만에 참석한 것이고 그런데 생각보다 지문을 잘 파악하고 있어 다행이었다. 집에 10시경 내려오니 몸이 아프다는 딸이 누워 있고 방금까지 수업한 아들은 라면을 먹는다며 서성거린다.
19일
오늘은 아내가 소리 없이 잠을 자서 나도 깊은 수면을 취했고 덕분에 아침의 컨디션이 한결 좋다. 일찍 식사를 하고 아들과 딸이 등교한 후 아내는 산으로 나는 체육관에 나가 열심히 운동을 했다. 날씨는 어제보다 더 화창한 봄이었는데 4계절이 언제나 꽃 피고 새 우는 오늘과 같은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운동을 마치고 체중계에 올랐더니 키 170센티에 몸무게 68킬로 40대 중반의 64킬로에 비하여 50대에 4킬로가 증가했다. 아마 뱃살이 늘어났을 것으로 왜소하거나 뚱뚱하지 않게 또 건강을 위해서라도 관리를 철저하게 해 나갈 것이다. 12시에 학원으로 가면서 성북동 김치왕이라는 집에서 김치찌개를 사 먹었는데 간판을 생각하면 2% 정도가 부족한 맛이다. 1시에 자리에 돌아와 공부를 하며 한가한 오후를 보냈고 지난달처럼 산행 일정으로 여러 명의 고등학교 친구들과 통화도 했다. 5시에 집으로 돌아오니 아들이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고 아내는 일산까지 가서 내일 딸 생일에 놓을 훈제통닭과 고기류를 사 왔다. 요즘 봄이 되어서인지 아니면 시험대비로 신경을 많이 쓴 탓인지 몸이 나른하여 오늘도 들어오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저녁에 논술교실로 올라가 정해진 수업을 했고 하지만 오늘도 교과서가 각각 달라 집중력이 사라진 시간이었다. 피곤하여 다음에 보충을 약속하고 10시경 집으로 내려오니 거실에서는 내일도 시험이라는 아들이 공부를 한다며 책을 펼쳐 두고 있다.
20일
사랑하는 딸의 생일이다. 동대문운동장 근처에 있었던 뷔페에서 돌잔치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5년이 지났으니 세월이 빠르다. 그 동안 살기 위해 뛰어다녔다 해도 정작 딸에게 해 준 것이 없으니 오늘은 선물도 사 주고 저녁도 함께 먹을 것이다. 이른 아침에 아내가 안방으로 들어오더니 뜻밖에 팔이 아프다는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X레이를 찍어 보라고 한다. 어제 아들과 딸이 다투다 아들이 발로 찼다는 것이고 팔 근육에 문제가 있을 테니 일단 응급실을 가라는 것이다. 우선 집에서 붕대로 팔을 친친 감은 채 생일부터 맞이했는데 다툰 아들은 식탁에 나오지도 않고 놀란 아내도 입을 다물고 있어 나 혼자 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무뚝뚝한 50살이 넘은 내가 15살 딸을 위하여 큰 소리로 독창을 하고 나니 성악가가 된 것처럼 스스로 어리둥절 했다. 오늘이 장애인의 날이니 딸은 생일까지 두 부분의 주인공이 된 것이고 하지만 웃을 수만도 없어 식사를 마치자마자 병원부터 나섰다. 세란병원 응급실로 들어가 X레이까지 찍으며 검사를 하고 특별한 문제가 없다기에 다시 나왔지만 부산한 딸의 생일날 아침이었다. 학교까지 태워다 주고 운동을 하러 곧장 체육관으로 나갔다가 점심쯤 집으로 돌아와 아침에 끓여둔 미역국으로 식사를 했다. 오후에 학원으로 나가 일정을 처리하고 저녁에 거실로 들어서는데 내일 수학시험이라는 아들이 공부하러 간다며 집을 나선다. 저녁을 먹은 7시에는 논술교실에 올라 수업을 하고 10시경 다시 내려왔더니 딸은 친구들한테 생일선물 과자를 많이 받아 왔다. 12시가 지나는 시간에는 아들한테 수학시험을 위하여 학원에서 공부하고 집에는 내일 아침에 들어오겠다는 전화가 왔다. 공부는 평소에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렇게 무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했더니 아내가 아들을 무조건 믿어보라고 소리를 내더니 냉큼 전화를 가져갔다.
21일
자녀를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아내와 잘 될 놈은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내 주장이 상반되지만 쌍방 엉뚱한 발상은 아니다. 평소에 시간을 아껴 꾸준하게 공부를 해야지 하룻밤 날만 새운다고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는 내 판단이다. 어제 이야기대로 아들은 아침까지 집에 오지 않았고 곧바로 등교를 했다는 전화만 시험이 시작되는 시간에 왔다. 통화를 한 아내는 아들의 목소리가 밝다며 좋아하는데 아침은 먹었는지 시험은 잘 볼 것인지 나로서는 걱정이 더 많았다. 식사를 마친 오전에 동네 아주머니들과 산에 간다는 아내가 나가고 10시경 나도 체육관으로 나가 열심히 운동을 했다. 12시경 내일 국어시험인 이대부고 수강생들을 지도하려고 김밥을 먹으며 논술교실로 왔더니 아들만 또 결석을 했다. 어제 밤을 새웠으니 지금쯤 잠이 들었을 것으로 순리에 역행하는 아들의 엉뚱한 생활이 안타깝고 답답하기만 했다. 점수를 잘 받아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할 것인데 국어시험 마지막 점검을 앞두고 결석을 하다니 당혹감과 배신감이 동시에 생겼다. 시험을 마치자마자 학교에서 바로 온 수강생들도 피곤함으로 어쩔 줄 모르고 이래저래 직전 수업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2시가 지나 논술교실에 아내의 수업이 있어 바로 성북동 학원으로 이동했고 오후의 일과를 마친 7시경 어둠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밤에 아들과 딸에게 저녁을 만들어 주었더니 딸은 계란찜이 싱겁다며 불평을 하고 낮에 결석한 아들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어 심기가 불편하기만 했다.
22일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식사를 마친 후에는 오늘 국어시험을 보는 아들을 태우고 이대부고에 다녀왔다. 아파트에 들어서면서 등교하는 딸도 태워 주려다가 친구랑 간다기에 논술교실로 올라가 경복고 수강생들을 지도했다. 시험이 10시부터라 아침에 마지막 정리를 한 것이고 이후 학교까지 태우고 갔다가 바로 체육관으로 향했다. 운동을 마친 시간에 집으로 전화를 했더니 아내가 삼겹살을 요구하여 정육점에서 600그램 한 근을 1만3천 원에 구입하여 들어갔다. 비가 내리는 중에 아내와 점심으로 맛있게 먹었지만 오전에 시험이 끝났을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 생기기도 했다. 아들이 시험준비를 많이 했어도 평소에 열심히 하는 학생들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을 것인데 오늘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오후에 학원으로 나가 수업을 하고 내일과 모레 중간고사 국어를 보는 인창고와 중앙고 교재를 준비하는 중에 비는 그치지 않고 내린다. 창가에 안자 있으려니 2년 전 어머니의 임종을 맞이한 시간이 불현듯 겹쳐와 한동안 정신을 놓고 어머님을 그렸다. 초저녁에 삼각지로 나가 후배와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내일 산행하자는 친구의 전화가 와서 내일 만나는 약속을 남겼다.
23일
토요일 새벽에 교실로 오르면서 수업시간이 일러 걱정을 했지만 수강생들이 모두 출석을 했다. 시원한 공기에 정신이 맑아서 그런지 오늘은 평소보다 많은 분량을 해설했고 10시에 집으로 내려오니 아들이 아침을 먹고 있다. 이대부고도 다음 주까지 시험기간인데 아들도 오늘과 내일 집중적으로 준비하여 높은 점수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오전에 딸이 도서관에 나가고 이어 아내까지 안산을 오른 후 나는 멀리서 오는 친구들을 기다린다고 무악재역에 나갔다. 함께 인왕산에 오르기로 약속한 터라 시간이 되니 모두가 도착했고 청구아파트와 환희사를 경유하여 정상으로 향했다. 기차바위 능선에서 바라본 인왕산의 경관은 개나리와 진달래가 자태를 뽐내며 아직도 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상에 올라 시야에 들어오는 서울을 조망하고 내려가는 중에는 봄 경치와는 반대로 바람이 심하게 불어 손이 시릴 정도였다. 점심을 먹는다고 앉았어도 추워서 힘들었고 다만 막걸리에 어린 꽃의 그림자가 붉은색 술을 만들어 놓은 정도다. 수성동 계곡을 지나 통인시장에 도착하여 따뜻한 감자탕을 먹었고 마을버스를 이용하여 세종문화회관 근처로 이동했다. 파전에 막걸리를 더 하고 해가 기울어 갈 즈음에는 라이브카페로 들어가 초저녁 시간을 보냈는데 망중한 바쁨 속에 즐거운 오늘이었다.
24일
어제는 친구들하고 산행하고 노래까지 부르며 놀았더니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일요일 아침 오늘은 교회에 꼭 나간다 친구와 약속을 했는데 일찍부터 수업이 있어 미안하다는 문자만 보냈다. 오늘이 어머님께서 운명하신 날인데 밤을 새워 임종실을 지키다가 2박3일 장례준비를 한다고 집에 온 사이 떠나셨다. 당시에 맑은 새벽이었는데 오늘도 그날과 다르지 않은 4월의 하순으로 다만 공간만 바뀌어 어머님은 저승에 계신다. 식사를 하고 논술교실에 올라가 8시30분부터 인창고 중앙고 상명여고 수업을 하다가 1시경 집으로 내려가 점심을 먹었다. 이후 3시부터는 동명여고와 대신고까지 중간고사 준비를 했는데 오늘은 수강생 학부모로부터 강의를 잘 한다는 전화까지 받았다. 저녁에 딸을 태우러 정독도서관에 가려다가 혼자 오겠다는 연락이 와서 수업을 하고 내려온 아내와 모처럼 이른시간에 식사를 마쳤다. 밤이 깊으면서는 어머니와 함께 보냈던 시간이 떠올라 잠이 오지 않았는데 밀물처럼 밀려오는 추억의 필름이었다. 아무튼 내가 사는 이 자리에 아직도 어머니의 사랑이 존재하고 있으니 그 사랑의 바탕에 나는 내일도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25일
오늘은 어머니를 입관하면서 마지막 얼굴을 쓰다듬은 아침의 시간으로 차가운 촉감이 아직도 전해오는 듯했다. 식사를 마친 후 체육관으로 나가 운동을 하고 12시경 집으로 왔더니 시험을 마친 아들이 돌아와 안방에 누워 있다. 아내는 오전에 동학이 엄마와 산에 간다고 외국식 쌈밥을 만들어 몇 개를 식탁에 남겼고 나도 그것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오후에 학원을 가려고 안방을 나설 때도 아들은 여전히 꿈적도 안하고 다녀오겠다는 통보를 오히려 내가 하고 나왔다. 학원에 도착하니 산행을 함께한 친구들한테 전화가 오는데 학창시절만 기억하기에는 너무 변한 어제의 모습이었다. 썰렁한 오후를 보내면서 중간고사와 관련된 프린트를 만들고 어둡기 전에 집으로 왔더니 수업을 마친 아내도 뒤따라 들어왔다. 맛있는 닭백숙을 만들어 아들과 딸까지 가족이 식사를 함께 한 모처럼의 자리였는데 누구도 말이 없어 식탁이 심심할 정도였다. 뿐만아니라 국물이 적다며 짜증내는 아들과 닭을 나누기도 전에 밥만 먹고 일어서는 아내 때문에 어수선함과 삭막함이 더 했다.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어 벌컥 마시고 안방으로 들어갔지만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어도 사막에 있다는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26일
비가 내리는 아침이다. 어머니의 관을 들고 고향의 언덕을 가던 시간으로 덧없는 세월 속에 머지않아 나도 그 길을 가야 할 것이다. 아들과 딸이 학교에 가고 어제의 기분으로 혼자 식사를 했는데 적적한 거실은 바람 부는 들판처럼 차가웠다. 오전에 체육관으로 나가 긴 시간 운동을 했더니 잡념이 사라졌고 흐르는 땀과 함께 2시간을 보내다 나왔다. 곧장 집으로 왔다가 아파트에 차를 두고 남영동에 나가 고향 친구와 함께 마파두부와 해물잡탕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지하철로 이동하여 학원으로 갔더니 오늘은 성북동이 낯설고 내가 앉는 자리조차 생소하기만 했다. 오후 몇 시간을 보내다 시내버스를 타고 일찍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와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오순도순 저녁을 먹고 있다. 저녁에 논술교실로 올라가 수강생 보충수업을 했고 10시에 내려와 식사를 하는 중에는 외출했던 아들이 코만 훌쩍거리며 들어왔다.
27일
어제에 이어 흐리더니 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식사를 마친 아침에 아들은 오늘 시험을 마치고 담임과 함께 고려대에 간다며 내가 참가했던 춘천마라톤 보라색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해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탐방 프로그램인데 미리 대학을 방문하여 꿈을 갖게 하려는 목적으로 선생님들이 인솔하여 나가는 것이다. 10시경 체육관에 나가 운동을 했더니 땀이 비 오듯 흘렀고 12시에는 김밥을 사 들고 학원으로 이동했다. 어제도 그랬지만 성북동이 요즘 멀게만 느껴지는데 계약이 끝나는 가을쯤에는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강의하는 공간을 옮겨 볼 것이다. 일이든 사람이든 마음이 가야하지만 이 기회에 전문 국어학원을 만들어 60대 이후의 생활에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점심으로 가져온 김밥을 먹고 일요일에 사용할 프린트를 만들며 오후를 보냈고 하지만 다른 때와 다르게 썰렁함이 더 했다. 4시경 신설동으로 가서 세무서에 신고할 다운계약서를 세입자와 작성하고 저녁은 집에서 닭백숙을 먹었다. 밤에 논술교실로 올라가 내일 시험인 수강생들을 지도하고 왔더니 낮에 대학을 탐방한 아들은 나와는 별개로 정신없이 밥만 먹고 있다. 오늘 정치권에서는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실시했는데 경기도 분당과 강원도에서 야당인 민주당의 당선이 확정적이다.
28일
일찍 일어나 새벽에 보충수업을 가려고 7시도 전에 식사를 했다. 오늘은 의연하고 당당했던 큰형이 세상을 떠난 지 8년 째 되는 날로 앞으로 8년이 또 지나면 내가 60대로 접어든다. 당시에 사업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형이 자신의 자존심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까지 고려하여 선택한 결정이 최선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가족들이 구차하게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희생으로 살릴 것인지 기로에서 고뇌한 순간을 나는 알고 있다. 언젠가는 누구나 세상을 떠나는 것이기에 큰형도 자신의 희생으로 결국 사랑하는 효정이와 윤희 은정이 치오를 살렸다. 가족을 두고 먼저 세상을 등진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으로 말도 안된다고들 하지만 내가 살아보니 이해가 되는 면도 없지 않다. 원양어선을 타고 태평양 대서양을 건너 스페인까지 긴 항해를 하면서 절망의 시간을 많이 넘겼다는 형은 평소에도 죽음을 멀리 생각하지 않았었다. 오늘 국어시험이 있는 중앙고 수강생들을 어제 저녁에 이어 지도하고 삼청동과 감사원을 지나 학교에 다다르니 9시40분이 되었다. 곧장 용미리 형의 납골함으로 가려다가 다음으로 미루고 맑은 햇빛이 내리쬐는 광화문을 지나 체육관으로 직행했다. 운동을 하고 점심에 집으로 들어가니 아무도 없고 아내의 전화마저 불통이라 혼자 김치찌개를 만들어 점심을 먹었다. 학원과 관련된 연락이 올 수 있으니 전화에 신경을 써야 할건데 오늘처럼 장시간 무소식이라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오후에 대학로를 지나 학원으로 가는 중에 대치동에서 투자금 이자가 입금되었고 도착해서는 바로 수업을 시작했다. 밤에 집으로 가면서는 한양아파트로 올라가 산낙지를 구입하여 소주 몇 잔과 집에서 먹었더니 나의 취향에 적격이었다. 술도 마시고 오늘은 잠까지 잘 올 것 같았는데 하지만 아들이 12시가 지나도록 들어오지 않아 술인지 꿈인지 비몽사몽 시간을 보냈다.
29일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고 쉬는 중에 평촌에서 식당을 하는 월 매출이 5천이라는 고등학교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반가움으로 받으니 식당을 수리한 비용 1천만 원이 필요하다며 요청을 하고 아파트나 가게를 담보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월 5천만 원의 수입이라면서 급전을 요구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되고 또한 자신의 아파트를 은행에 담보하면 될 텐데 이런 경우 분명 함정이 있다. 은행에서 그동안 돈을 많이 융자하여 대출이 어렵다거나 식당의 수입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 가게 운영이 어렵게 된 상황이다. 금전거래는 어려울 때 도와주기 때문에 상대방은 좋을지 몰라도 예상치 못한 문제가 많이 발생하여 살아가면서 피해야 할 일이다. 정중하게 내 입장을 전달하고 체육관으로 가서 운동을 한 뒤 12시경 대신고 상명고 내일 시험을 위해 논술교실로 들어왔다. 4명을 수업하면서 점심으로 튀김과 떡복이를 사 주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산만해져 수업에 지장이 많이 생겼다. 4시경 집에 돌아와 오전부터 불통인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직도 전화가 안 되고 결국 1시간이 지나서야 연락이 왔다. 엊그제도 그렇고 정신을 못 차린다 질타를 하고 바로 학원으로 나갔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모든 것이 힘들었다.
30일
긴 4월의 마지막 이제 그 하루를 남겨 두고 있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어머님과 형에 대한 상념 말일인 오늘은 형의 유골함을 들고 용미리 납골함에 들어간 날이다. 공교롭게도 오늘이 음력 3월28일 어머니 기일까지 겹쳤고 새벽부터 내리는 비는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양으로 바뀌었다. 6시30분에 대신고 보충수업을 하러 논술교실에 오르는 중에도 주룩주룩 내리고 날이 밝은 아침까지 주변이 온통 컴컴하다. 8시 지나 차에 태우고 독립문까지 갔다가 다시 아들과 이대부고에 동행하려고 집으로 전화하니 이미 등교를 한 상태다. 아파트에 도착했을때 비는 더욱 거세졌고 마침 학교에 가는 딸을 태우려다 친구와 간다기에 식사부터 하려고 집으로 들어왔다. 오전에 수업이 있어 오늘은 체육관 대신 학원으로 먼저 출발했고 하지만 토요일에 하겠다는 연락이 와서 오전을 그냥 보냈다. 점심으로 설렁탕을 사 먹는다고 청계천 건너편 왕십리까지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다닌 오랜 단골집으로 나섰다. 오늘도 맛있는 소고기국에 넉넉한 주인장의 인심이 더하여 풍성하게 식사를 했고 집으로 가면서 신설동에 들러 건물을 점검했다. 저녁에 김치찌개를 만들어 아들 딸과 식사를 하면서는 오늘이 할머니 기일이라고 일렀는데 모습이나 기억하고 있을까. 계절의 여왕 5월이 기다리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