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축제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슬픈 운명을 지닌다고 한다. 꿈결처럼 피었다가 거짓말같이 스러지는 꽃의 순간성을, 축복처럼 펼쳐지는 과정과는 다른 허망하고 잔혹한 결말을 예측하면서도 꽃에 다가설 수밖에 없는 우리의 숙명적 감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영랑은 찬란한 슬픔 속에서 모란을 노래했고, 어느 화가는 고갱의 원혼이 담긴 타이티의 흰꽃, 하이비스커스에 한을 담아 화폭에 옮겼다.
비극에 심취하는 인간의 속성은 슬픈 설화를 꽃에 실었다. 꽃은 세월을 타고 사람 사이를 떠돌며 처연한 아름다움을 더해갔다.
그리스의 미소년 나르시스가 물에 비친 자기 모습에 도취하여 몸을 던진 샘가에 피어난 수선화, 꽃이 핀 후에야 잎이 피어 서로 만날 수 없기에 애절한 사랑뿐인 상사화, 떠나간 사랑에 밤새워 울다가 죽은 두견새의 피를 토한 자국마다 꽃이 피었다는 진달래, 벌거벗은 산야을 실성한 듯 맨발로 피워내는 봄날의 슬픈 꽃들….
나는 이러한 꽃의 순간성과 비극성을 사랑한다. 천지를 휘황하게 물들이는 꽃의 축제에는 시간의 한계성이 있다. 쓸쓸한 낙화의 예감이 있다. 속절없는 순간성의 애달픔도 있다. 그러나 꽃의 순간성에는 생명력이 함유된 영원성이 깃들어 있다.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씨앗이 영글고, 그 씨앗은 다시 꽃잎을 틔우고, 꽃잎은 씨앗으로, 씨앗은 꽃잎으로….
스러지고 피어나는 소멸과 환생의 꽃의 연속성. 사람이 만든 종이꽃은 생명이 없으므로 그 자리에 영원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죽을 수 없으므로 영원히 살 수 없다. 바람과 흙이 만든 지상의 꽃들은 생명이 있으므로 그 자리에 영원히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죽을 수 있으므로 영원히 살 수 있다.
꽃에 비극성을 불어넣은 것은 꽃이 아니라 사람이다. 비극에 대한 인간의 모호한 탐닉은 꽃에 비극적 이미지를 가미시켰다. 인간이 만든 이야기와 함께 나와의 연계성을 찾아 위로 받고 싶은 우리의 애절한 바람 때문인지도 모른다. 슬픈 내력은 외면한 채 꽃에 다가선다면, 내가 어떻게 꽃의 음영까지 바라볼 수 있을까.
사랑은 꽃의 생리를 닮았다. 지상에 물결치는 꽃의 무리처럼, 사람이 사는 곳이면 한결같이 사랑이 움트고 자라지만, 사랑은 모두 다른 빛깔과 향기를 지닌다.
그만의 엑스터시와 맹목성에 도취되어 저마다의 축제에 몰임하는 사랑. 그것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수천 조각의 빛깔들이 우연히 모여서 무지개는 완성된다. 그러나 그 무지개를 우연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빗방울과 바람과 햇빛의 찰나적 필연성에 의해서 무지개는 피어난다고 믿는다. 무지개가 필연적 존재라면 수천 조각의 빛깔 또한 필연일 수밖에 없다.
바람에 실린 구름을 따라 수많은 빗방울이 우연히 어느 냇물에 떨어져 강으로 흘러든다. 들판을 가로지르고 도시를 비껴 흐르는 강은 필연적으로 그곳에 있다. 그런데 속살대며 흘러들어 강이라는 존재의 근원을 이루는 빗방울들이 어떻게 우연일 수 있을까.
우연이라고 믿는 수천 갈래의 길을 돌아 우주의 한켠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어느 순간 사랑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필연이다. 무지개라는 오묘한 조화를 이룬 빛깔들과 강이라는 흐름을 이루는 빗방울이 필연이듯, 사랑을 향해 걸어온 도정 또한 필연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필연을 인간은 운명이라고 이름하였다. 운명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기에 사랑의 고된 감정을 신의 권한으로 전가 시키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저항이 불가능한 운명이라는 역정에서 그리스인은 완전한 비극성을 알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새 술을 개봉하는 3월이면 디오니소스 원형극장에서 며칠 동안 비극을 공연한다. 운명과 싸우는 인간의 무력과 비참을 그린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비극의 완성작이다. 그곳에 모인 1만 7천여 관중은 주인공과 함께 비극에 동참하여 울고 웃는다. 연극이 끝나면 그들의 축제는 시작된다. 비극적 운명 속에서 진지한 삶을 맛보고, 그 긴장감을 카니발을 통해 카타르시스로 전이시키는 아크로폴리스 산정의 죽제-그들에게 비극은 아름다운 삶의 자양분이었다.
사랑에 우연은 없다. 모든 사랑은 필연이고, 필연은 운명이며, 운명은 비극을 동반한다. 그것이 인간의 삶을 진지하고 진실하게 만든다. 인간이 진실할 때만이 슬픔을 느낄 수 있다. 고통은 진실이 피워내는 마음의 꽃이다.
사랑의 축제에 초대받은 사람들의 가슴에는 슬픔의 강이 흐른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거부하거나 말하지 않는다. 비극적 설화 속에서 꽃의 축제를 완성하듯, 사랑의 슬픔 속에서 그들만의 축제를 완성하고 싶은 순수하고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 이옥자 -
첫댓글 꽃이 피고 지는 것에 인간의 사랑까지 연결한 글
비극적 설화속에서 꽃의 축제를 완성한다는 결론에서
쬐금 그나마 맘의 위로가 됩니다~^^
후배님 오랫만에 반가워요.
요즘 이인영 선배님도 건강 하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