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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고민’은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괴로워하며 속을 태우는 것을 일컫는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으나 고민의 원인은 대체로 자신의 생각이나 의도와 다른 결과로 인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고민의 원인이나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그 순간에는 힘들겠지만, 고민의 결과가 뒤늦게 깨달음을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민은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고민을 지속하면서 다양하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민하는 힘>이라는 이 책은, 저자가 ‘고민이라는 키워드를 실마리로 삼아, … 우리가 지닌 근본적 문제와 결부시켜 내 나름의 생각을 피력한 인생론 같은 에세이’라고 그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재일 한국인’으로 태어나 낯선 일본에서 ‘타자’로 살아온 저자의 경험과 생각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저자는 살아오면서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일본 작가인 나스메 소세키와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글을 읽으며, 자신의 고민에 대해서 나름의 해법을 찾고자 노력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의 곳곳에서 두 작가의 작품과 저술들을 인용하면서, ‘고민의 힘’에 대해서 저자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리하여 결국 ‘고민하는 것이 사는 것이며, 고민하는 힘은 살아가는 힘임을 배웠’다고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근대라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적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면서, ‘지금을 살아간다는 고민’이라는 제목의 서장으로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여기에서 시작된 근대를 살아가는 문제에 대해 모두 9개의 질문을 던지고, 때로는 나스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의 저작을 분석함으로써 논의를 심화시키고 있다. 저자가 던진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서부터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혹은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실질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인식이 일관되는 지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혼자서 고민하기보다 세상과의 소통과 공감 능력을 키우라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재일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문제를 서술한 ‘나는 누구인가?’에서는, 자아와 타자 사이의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타자를 제외한 자아는 존재하지 않’기에, 자아에 대해 밑바닥까지 고민하다 보면 ‘타자와 만날 수 있는 장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청춘은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역시 ‘본래 청춘은 타자와 미칠 듯이 관계성을 추구하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좌절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실패와 좌절을 통해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이 책에서는 종교와 노동, 그리고 사랑과 죽음 또는 노년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저자의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 바탕에는 저자가 읽었던 소세키와 베버의 저작이 고민을 이끌어나가는데 있어 큰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저자는 ‘글을 마치고’라는 항목에서, ‘인간적인 고민을 인간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저자의 냉철한 인식과 비판적인 시각은 신문 칼럼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저자는 그동안 재일 한국인으로서 ‘경계인’의 위치에 놓여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에는 그러한 ‘경계인’의 시각과 경험 등이 진솔한 필치로 녹아들어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고민’이라는 주제를 통해 우리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으며, 저자의 논지를 좇아가다 보면 고민이 없는 삶이란 어쩌면 무미건조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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