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집시’라고 하면 그저 자유 분망하고 드넓은 유럽의 대자연과 더불어 방랑생활을 즐기는 지극히 평화롭고 낭만적인 여유를 가진 집단으로 떠올리기 쉽다. 늘 바쁘게 살아야 하는 일상 속에서 그들이 가진 여유로운 삶의 정경은 도시인들에게 있어 정신적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럽에서 이들 집시들이 받는 대접은 실제 거지들의 그것에 다름 아니다.
집시는 코카서스 인종에 속하는 소수의 유랑 민족으로, 인도에서 발상해 헝가리를 중심으로 유럽 여러 지역, 서아시아, 아프리카, 미국에 분포하는 흑발 흑안(黑眼) 황갈색 피부가 특징이다. 일정한 거주지가 없이 항상 이동하면서 생활하며 미신적이고 쾌활하고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가져, 점쟁이, 가수, 말 장수나 거리공연 따위의 일로 생계를 꾸리며 살아간다.
이들은 유럽 여러 나라를 떠돌며 소매치기나 약물 등 각종 범죄로 종종 사회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문자 교육보다는 관광객들의 돈지갑을 터는 법부터 가르치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히틀러는 이들 집시족을 유태인보다도 더 증오한 나머지 비생산적인 인간쓰레기로 규정, 나치의 인간 청소작업으로 약 60여 만 명의 집시들이 죽어갔지만 정치세력의 구심점이 없는 탓에 유태인 학살사건에 비해 실체규명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수 세기를 이어온 전통적 유랑생활로 뿌리와 근본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도 일자리를 주지 않는 집단. 그것이 바로 오늘날 집시들이 지닌 서글픈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가수들은 그러한 집시를 주제로 한 노래를 즐겨 부르기도 하는데, 그룹 Queen의 “보헤미언 렙소디(집시 광시곡)”나 고전음악가 사라사데의 멋진 바이올린곡인 “찌고이네르와이젠(집시의 달)”도 있지만 그중에서 남미의 작은 섬 푸에르토리코에서 스페인계로 태어나 7형제와 함께 뉴욕으로 이주한 맹인가수 José Feliciano의 Gypsy는 가파른 기교와 12현의 기타음색이 현란한 곡선을 그리며 만들어 내는, 집시를 주제로 한 노래들 중에서도 대단히 매력적인 곡이려니와 또한 그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또 맹인만이 가지는 삶의 애환마저 토해내듯 슬프게 들리는 노래다.
호세 몬세라테 펠리시아노 가르시아(José Montserrate Feliciano García, 1945)가 본명인 그는 태어난지 얼마 후 찾아온 소아 녹내장으로 인해 맹인이 되었고, 그런 자식을 측은하게 생각했던 부모는 펠리시아노가 심심하지 않도록 그에게 기타를 사주었다. 시각장애로 인해 친구들과도 자유롭게 뛰어놀 수 없었던 그는 기타의 매력에 심취해 기타를 유일한 친구로 벗 삼아 자라면서 12현 기타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등 포크 및 소울 리듬에 대한 독자적 재능을 익히게 되었다.
그런 그의 재능을 알아본 주변의 권유로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스페니쉬 할렘의 푸에르토리코 극장 무대에서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설 수 있었고, 스무 살도 되지 않은 60년대 초반 들어서는 그리니치 빌리지의 포크음악계에서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애수 어린 창법으로 마음을 흔드는 천재 뮤지션 호세 펠리시아노가 69년에 발표한 인기곡들 가운데 하나인 Rain.
이 곡을 발표하기 전해인 68년 그에게 안겨진 그래미 최우수 남자 가수상과 최우수 남자 신인 가수상은 그로 하여금
더 분발하는 70년대의 활약을 기약하면서 Fire Works, Once There Was A Love와 같은 참신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1963년 뉴욕의 포크 클럽인 포크 시티에 출연해 노래를 부르던 중 그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온 RCA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었으며, 1964년에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음악활동을 보였다. 그러던 그는 2년 후 자신의 데뷔 앨범 ‘The Voice And Guitar of Jose Feliciano’를 발표하고, 다음해인 1966년이 되자 두 번째 앨범 ‘A Bag Full of Soul’을 발표하면서 펠리시아노만의 탁월한 어쿠스틱 기타 실력을 과시했다.
스무 살이 된 65년에 앨범을 내고 가수로 데뷔한 이후 특유의 호소력을 가미한 소울풍의 노래 Light My Fire, Fire Works로 대중적 인기를 확산시켜 나갔으며,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F.M 방송을 타는 그의 히트곡 Rain이나 Once There Was A Love, Ché Sara 등은 펠리시아노만이 가진 남미적 백인 소울의 대명사로까지 평가되고 있는 작품이다. 그는 미국정부가 주최한 한 대형 행사장에서 미국 국가를 소울 풍으로 불러 대규모 입장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을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과거 짐 모리슨이 이끌던 그룹 도어스(Doors)가 히트시켰던 ‘Light My Fire’를 직접 편곡한 리메이크 곡을 1968년도 발매앨범 ‘Feliciano!’에 실어 발표하자 캐시 박스 3위에 오르면서 독자적 편곡 실력을 입증해 보였고, 그해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최우수 남성 가수상, 최우수 신인 남성 가수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32개의 골드앨범과 두 번의 그래미 상을 수상한 바 있는 호세 펠리치아노는 RCA 레코드사에서 모타운 레코드사로 이적하면서 이적 기념앨범 ‘Jose Feliciano’를 내놓고, 싱글 ‘Everybody Loves Me’를 히트시켜 자신만의 확고한 위치를 입증했으며, 수 차례의 내한공연을 가져 한국팬들에게도 매우 친근한 아티스트로 사랑받고 있는 인물이다.
외국에는 신체적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아티스트들이 많이 있는데 I Can't Stop Loving You의 원조인 전설적 맹인가수 레이 찰스나 스티비 원더, 오페라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 같은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오래전 일본에서 개최된 동경국제가요제에서는 희한한 일이 하나 벌어졌다. 이 가요제에는 Release Me나 Ten Guitar 등으로 여전히 우리나라 중년층들의 사랑을 얻고 있는 인도출신의 인기가수 잉글버트 험퍼딩크와 스티비 원더 등도 이 가요제에 초청가수로 참가했는데, 갑자기 검은 안경의 스티비 원더가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세계적 슈퍼스타인 자신이 험퍼딩크와 같이 한물 간 가수와 함께 무대에 서있다는 사실은 자신에 대한 모욕이므로 빨리 무대 아래로 내려가라는 소리였다.
주위의 동료들이 말려 사태는 가까스로 진정되었으나 이는 장애인들을 근본적으로 멸시하는,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하나의 사건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맹인인 주제에...” 같은 말은 그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적어도 정상인에 비해 신체장애인을 편파적으로 보는 개념이란 서구인들에게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일전에 우리나라에도 맹인가수 이용복이라는 사람이 외국가요 번안곡이나 포크음악으로 인기를 끌던 시대가 있었는데 T.V에 자주 소개 되다보니 그만 어느 고명하신 정치가 나으리의 밥맛(?)을 잃으시게 했다. 다음날부터 그는 방송무대에서 볼 수 없게 되었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쓸쓸하게 잊어져 가다가 민주화의 봄바람이 불면서 활동을 재개하게 되었다.
자기 고장에 재활원이 들어선다면 자식들 교육에 문제가 있고 집값 떨어진다고 집단으로 반대시위를 하는 나라. 장애인이 택시를 세우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사회 속에서도 한 시각 장애인이 혼자 건널목을 건너는데 그 걸음이 오죽 느릴까마는, 신호등이 이미 청색으로 바뀌었어도 그가 무사히 건널 때까지 출발하는 자동차가 한 대도 없더라는 감동적인 이야기에서 우리 사회가 점차 성숙하는 모습도 본다.
아무렴 그래야지. 그게 사람이 서로 돌보고 배려하고 기대며 사는 거지.
(최기만/팝컬럼니스트)
+++++++
한때 사랑이 있었지. 바다보다 깊은 사랑이.
한때 사랑을 했었지. 헌신으로 가득 채워진 그런 사랑을.
그것은 바로 당신과 나의 사랑. 목숨바쳐 소중히 간직하던 것.
그러나 어느 쓸쓸한 날 당신은 떠나 버렸지.
한때 사랑을 했었지. 당신이 떠난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정녕 외롭고 허전한 마음. 이 사랑이 어디서 잘못 되었는지 모르겠어.
한때 사랑을 했었지. 그 사랑은 이제 다시 오지 못 하겠지.
그래서 처음부터 사랑이 없었던 것으로 여기면서 살지.
한때 사랑을 했었지, 아주 오래 전에.. (Once there was a love 中)
Jose Feliciano - Gipsy
나는 돈을 받는 집시. 돈을 받고 연주하고, 돈을 받고 작곡하는 집시
나는 집시유랑단의 일원, 대지 위를 떠도네.
동료들을 위해 작곡하고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연주하고 작곡하지
어떤 곡은 당신을 웃게하고, 어떤 곡은 당신을 울리지만,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어
하지만 나의 여행은 계속될 거야. 내 기타가 낡고 수명도 다 되어가지만 그녀는 귀기울여 듣고 있지.
내가 알던 어느 여자보다도 그녀가 내 음악을 듣는 것이 나는 좋아.
나의 여행은 계속될 거야. 내 기타가 낡고 수명이 다 되어가지만 그녀는 귀기울여 듣고 있네 내가 알던 어느 여자보다도 그녀가 내 음악을 듣는 것이 내게는 의미 있어
첫댓글간밤 폭우에 별고 없으셨는지요 호세의 레인을 처음 듣고 가슴뛰며 비오는 날이면 듣곤 했었죠 앞을 못보는데도 물방울처럼 기타줄에서 자유롭게 튀는 그의 손가락, 집시의 전주곡에도 전율합니다 스티비원더의 불미스런 행동이 유감스러운데 정상적 뮤지션보다 자기에게 점수를 더 많이 준 관객들의 찬사를 생각해봄직 한데 아닌가봐요 한때 사랑이 있었지요 노래 감사합니다 음악자료 굿! 굿! 한때의 칼럼이 아닌 계속 이어지는 자료를 희망해봅니다
오랜만에 밤의 창밖으로 보이는 세찬 폭우와 천둥 번개는 오히려 안락한 느낌을 주어서 좋더군요. 이쯤 되면 살짝 맛이 간 사람 맞지요?ㅎ 내리는 폭우 때문에 호세 펠리시아노의 노래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도 20대 때 이 사람의 노래를 참 좋아했습니다. 가사 내용도 잘 모르고 따라 부르곤 했죠. 스티비 원더는 '아이노 코리다'로 유명한 퀸시 존스의 메니지먼트 파워로 성장한 사람인데 노래는 괜찮아도 끝간데 없는 시건방 스타일이 썩 마음에 드는 인간은 아닙니다.ㅎ 열심히 달리다 무루팍이 퍼져 길바닥에 누우면 몰라도 그 전까지는 열심히 이어 볼랍니다. 음악평론을 쓰는데 있어 명분과 힘을 주시는 말씀 늘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집시도 레인도 정말 반갑고 좋네요. 이 분과 이 분 음악들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되니 오래전 이 분과 처음 대면하던 때의 기억들이 떠오르네요. 저도 한때 popular한 외국 음악들에 빠져서, 음악듣는 일 과 빽판들 사모으는 일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사 모으던 pop 음반들 속으로, 우연히, 1971년도 산레 모 가요제 수상곡들이 몇곡 딸려들어 왔었지요. 그해 대상곡은, 그 다음해(1972년)에 "무지개의 나날"로 대상 을 받은 니꼴라 디바리와 나다가 함께부른, "마음은 집시"였지만, 저는 2위에 입상한 이분의 곡 "케세라"를 훨 씬 좋아했었었는데, 그 때의 기억들이 문득 떠 오르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다뉴브님 덕에 빽판의 추억을 떠올려 봅니다. 가난했지만 젊음이 있었기에 참 좋은 시절이었죠. 그때 빽판업자들이 옴니버스 앨범을 만들어 돈을 좀 벌어보려고 했던 일이 결과적으로 제3세계 음악을 보급하는데 크게 기여한 셈이 되었습니다.ㅎ 전기기타는 만지지도 않겠다던 밥 딜런은 약속을 어겼지만 호세는 지금도 어쿠스틱만 다룹니다. 산레모는 유러비전에 비해 정말 독특한 가요제였고, 히트곡도 엄청나게 쏟아냈죠. 다뉴브님 말씀을 들으며 추억의 음악 속에 깃든 가수들의 정겨운 이름을 떠올려 보게 되는군요. 리멘시타, 바가본도, 논호레타, 왓어스카이 등등 추억의 음악을 떠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햐 ! 정말 좋은데 무어라고 말할 수가 없네요 신기에 가까운 기타 연주 솜씨와 노래들 / 하여튼 팝컬럼니스트 성대장님과 한 일년쯤 친한척 쫓아다녀보면 저의 교양지수가 백에 백이 아닌 백이십으로 올라있을 듯 합니다 대가집에 가서도 유식한 척 음악에 관한 장광설을 한바탕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ㅎㅎ 역시 우연 대감집 대문 앞이 비 피하기는 딱이라니깐요 우연님 ! 파전 하나 추가요 !
제가 황시인님과의 동행을 최대한 피하고 싶은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1년쯤 함께 다니다 어느날 저보다 더 유명한 음악평론가가 되어 저를 듣보잡 취급하실까 해서요. 네? 직업을 바꿔 인사동 사거리에 돗자리 깔라굽셔? @@;ㅎ 암튼 막걸리는 사신다니 양심상 파전값은 제가 내겠습니다. 이모~! 여기 막걸리 또 한 박스 추가요~! ㅎ
제가 떡방 출신이니 업종 변경을 원하시면 인사동 목 좋은 자리에 우연님을 위해 알박기해 놓겠습니다 비록 제가 드린 말씀 아니긴해도 여린 쥐의 눈엔 고양이만 보인다는데 탓할 수 없겠기에 까짓거 막걸리정도야 산지기가 호방하게 질러드릴테니 넉넉히 드시기를 ㅎㅎ 막걸리 남아 파전 시키고 파전 남았기에 다시 막걸리 추가시키면서 한사흘 술독에 빠져 사나이의 모든 것을 논해보시자구요 !
첫댓글 간밤 폭우에 별고 없으셨는지요 호세의 레인을
처음 듣고 가슴뛰며 비오는 날이면 듣곤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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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밤의 창밖으로 보이는 세찬 폭우와 천둥 번개는 오히려 안락한 느낌을 주어서 좋더군요.
이쯤 되면 살짝 맛이 간 사람 맞지요?ㅎ 내리는 폭우 때문에 호세 펠리시아노의 노래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도 20대 때 이 사람의 노래를 참 좋아했습니다. 가사 내용도 잘 모르고 따라 부르곤 했죠.
스티비 원더는 '아이노 코리다'로 유명한 퀸시 존스의 메니지먼트 파워로 성장한 사람인데
노래는 괜찮아도 끝간데 없는 시건방 스타일이 썩 마음에 드는 인간은 아닙니다.ㅎ
열심히 달리다 무루팍이 퍼져 길바닥에 누우면 몰라도 그 전까지는 열심히 이어 볼랍니다.
음악평론을 쓰는데 있어 명분과 힘을 주시는 말씀 늘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집시도 레인도 정말 반갑고 좋네요. 이 분과 이 분 음악들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되니 오래전
이 분과 처음 대면하던 때의 기억들이 떠오르네요. 저도 한때 popular한 외국 음악들에 빠져서, 음악듣는 일
과 빽판들 사모으는 일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사 모으던 pop 음반들 속으로, 우연히, 1971년도 산레
모 가요제 수상곡들이 몇곡 딸려들어 왔었지요. 그해 대상곡은, 그 다음해(1972년)에 "무지개의 나날"로 대상
을 받은 니꼴라 디바리와 나다가 함께부른, "마음은 집시"였지만, 저는 2위에 입상한 이분의 곡 "케세라"를 훨
씬 좋아했었었는데, 그 때의 기억들이 문득 떠 오르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다뉴브님 덕에 빽판의 추억을 떠올려 봅니다. 가난했지만 젊음이 있었기에 참 좋은 시절이었죠.
그때 빽판업자들이 옴니버스 앨범을 만들어 돈을 좀 벌어보려고 했던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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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레모는 유러비전에 비해 정말 독특한 가요제였고, 히트곡도 엄청나게 쏟아냈죠.
다뉴브님 말씀을 들으며 추억의 음악 속에 깃든 가수들의 정겨운 이름을 떠올려 보게 되는군요.
리멘시타, 바가본도, 논호레타, 왓어스카이 등등 추억의 음악을 떠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햐 ! 정말 좋은데 무어라고 말할 수가 없네요 신기에 가까운 기타 연주 솜씨와 노래들 / 하여튼 팝컬럼니스트 성대장님과 한 일년쯤 친한척 쫓아다녀보면 저의 교양지수가 백에 백이 아닌 백이십으로 올라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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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우연 대감집 대문 앞이 비 피하기는 딱이라니깐요 우연님 !
파전 하나 추가요 !
비오는 날 파전이 왜 생각나는지 비오는날
번개라도 쳐서 제가 파전 살께요 담주 스케줄보고요 인터넷 방송에 나가느라 ㅎ 장마철 건강 잘챙기셔요 산지기님 화이팅!!
제가 황시인님과의 동행을 최대한 피하고 싶은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1년쯤 함께 다니다 어느날 저보다 더 유명한 음악평론가가 되어 저를 듣보잡 취급하실까 해서요.
네? 직업을 바꿔 인사동 사거리에 돗자리 깔라굽셔? @@;ㅎ
암튼 막걸리는 사신다니 양심상 파전값은 제가 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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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감사합니다 역시 대장님은 산지기의 든든하신 빽! 복 많이 받으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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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히 드시기를 ㅎㅎ 막걸리 남아 파전 시키고 파전 남았기에 다시 막걸리 추가시키면서 한사흘 술독에 빠져 사나이의 모든 것을 논해보시자구요 !
아이구 한사흘 술독에 빠지자구요 앞전엔 노름판을 만들더니 이젠 술판을 만들작정이시군요
서하운영자님 어디계세요 빨리 들어와 막으셔요 카페지기 혼자선 무리여요 ㅠㅠ
태풍이 불어와도 움찔하지도 않으실 카페 대장님께서 어인 심약하신 말씀을 ㅎㅎ
바야흐로 여성천하지대본인 광명세상
작금은 사내일언풍선껌인 허탈한 시절
진실은 겨우 잔술이나 비우는 엄처시하의
다소곳한 남정네들임을 익히 아시오니
중광스님의 달마도에 기대어
삼세번의 자비를 허락하옵시길
ㅎㅎ 남자들이란 죽을때 까지 철이 안 든데요
남자들이란 죽을때 까지 철이 안 든데요.. <-- 이거 본인의 어록인가요?
성경과 불경과 코란의 말씀에 버금가는 진리 그 자체로군요.
이 한 마디로 10연속 노벨문학상 가능하십니다.
얼케... 수상 축하파티에 필요한 막걸리 차떼기로 미리 준비할까 합니다만..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