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윗줄에 '팁'이라는 게 있더군요.
뭔가싶어 눌러봤더니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곳이던데
거기에 이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ㅎㅎ
"민속 명절에 고도리 쳐도 되나요?"
쳐도 되지요.. ^^
고도리 치는 게 뭐 헌법에 저촉되는 것도 아니고
고도리 친다고 뭐 경찰이 출동하는 것도 아니죠.
다만.. 그 과보가 다를 뿐입니다.
명절에 고도리를 치느냐
명절에 여행을 가느냐
명절에 부부싸움을 하느냐
친족간에 화목하게 지내느냐..
그 과보가 다를 뿐입니다.
그리고 정 고도리를 치고 싶으면
그저 점수 계산하고 돈 따는 것만 밝히지 말고
이왕이면 화투에 있는 메시지도 보면서 마음공부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야말로 금상첨화지요.
그런데 무슨 교훈이 있냐고요?
있지요.. 있습니다.
12월을 상징하는 비광..
화투 비광에서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저 사람은
일본 서예의 창시자라 불리는 오노도후(894-964) 라고 한다.
그가 젊었을 때 일이다. 서예 공부를 아무리 해도
진도가 안 나가고 발전이 없자 공연히 짜증이 났다.
"에라, 모르겠다. 이젠 더 못하겠다. 집어 치워야지. 내가 글을 잘 써서 뭐하나?"
화가 난 오노도후는 서예를 그만 두려고 마음 먹고
일어나서 밖으로 바람이나 쐬러 나갔다.
그때가 장마철이라 밖에는 비가 뿌려댔다.
오노도후는 비참한 심정이었다.
우산을 들고 한참 걸어가는데
빗물이 불어난 개울 속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빗물이 불어나서 흙탕물로 변한 개울에서 떠내려 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버둥거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개울 옆에는 버드나무가 있었는데 개구리는 그 버드나무에 기어 오르려고
안간 힘을 다했지만 비에 젖은 버드나무는 미끄러워서 헛탕만 쳤다.
'저 놈이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 몇 번 바둥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흙탕물에 쓸려 가겠지.'
오노도후는 쪼그리고 앉아서 구경을 했다.
개구리는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고... 계속 미끄러지다가...
결국에는 죽을 힘을 다해 버드나무로 기어 올랐다.
그걸 지켜 본 오노도후는 크게 깨달았다.
'저런 미물도 저렇게 죽을 힘을 다해 나무에 기어 오르는데
내가 여기서 포기를 하면 개구리만도 못하겠구나. 참 부끄럽다!'
그 길로 다시 서당으로 돌아가 필사적으로 서예 연습에 매달려
마침내 일본 제일의 서예가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화투가 끝나는 마지막 장에 오노도후의 재기를 상징하는 그림을 그려넣은 것은
끝은 또 하나의 시작이며, 절망의 순간이야말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만든 화투와 우리나라 화투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비광패의 오노도후는 게다가 아니라 고무신을 신고 있다고.. ㅎㅎ)
첫댓글 _()_
관세음보살
얼굴엔 미소, 마음엔 평화...
고맙습니다 일미거사님
깊은 뜻이 있었군요?그런데 고도리는 까치 새끼를 뜻하던걸로 기억이 납니다?ㅋㅋ아!새 다섯마리 일본어군요~
앗...화투닷...!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절대로 안됩니닷....ㅎㅎㅎ
반갑습니다 일미거사님 ^^
명절이라고 고도리 치는 것은
금연구역에서 흡연하는 것과 일맥상통입니다 ㅎ
옆지기한테 보여줄렵니다.
에궁..
고맙습니다.
싱거운 고도리보다 짖꼬땡이로 해보심이 ~? ^^
어릴적에 아버님께서 들려주신 예기군요. ^^
반갑고,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잘 읽었습니다
저희들도 한번 먹기 내기를 한번 하시지요
한판 돌려나 볼커 나요 () () ()
거사님 다녀갑니다 ㅎㅎ
그런 설화가 있었네요 화토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몰랐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