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내용이나 획심은 기억에 없다. 듣는 속도 만끔이나 빠르게 귓속을 스치듯 지나서 빠저나가고 마니까, 그게 하루이틀 된 얘기도 아니니까 중요하지도 않고, 그 얘기를 하려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나는 나만 그러고 산줄로 알았는데, 다른사람, 특히 담임목사님도? 라니, 그러고보면 많이들 그런가 싶은 생각도 하게 되었다. 바울 사도 얘기 중이렀는데, 목사님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어여서부터 뚜렸한 꿈이 있었던게 아니라, 어쩌다가 보니 떠밀려서 여기까지 왔노라고. 목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결코 없었단다. 대학에 떨어저서, 군대가기 싫어서 신학교에 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정학을 당하는 바람에 입대하게 되었는데 운전병에서 느닷없이 군종병이 되어 새벽예배부터 설교를 하게되었고, 기왕하는것 잘하기위해 설교문집이며 해석집을 탐독했고, 기타등등,,, 선택한게 아니라 늘 떠 밀려서 였노라고. 그러나 결말은 성령님이 늘 등뒤에 계셨다나. 목사님이신데, 나랑 결말이 같을수는 없겠지만, 또 결말은 훈훈해서 좋았지만, 내 얘기는 훈훈하지가 않아서 문재다. 나는 늘 떠밀려 가고 또 왔다. 이제는 어떤 선택을 하기에도 늦어버렸다. 내 등뒤에도 성령님이 계실까. 나를 인도하고 계신것일까. 지금 내가 쓰고있는 켈리 글귀는 " 나를 사랑하신 나의 하나님 가장 완전한 길로 오늘도 나를 인도 하신다" 이다. (연습을 많이 하고 있는대도 솜씨가 0이다.) 이만하면 많이 긍정적인가. 삶에 대해서도 신앙생활에서도 한발 빼놓고 살았다. 적극적으로 대면해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고서도 할말이 있을가. 남편 탓을 할것도 없다. 양심이 있다면 그렇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더라도, 나는 남편 등에 빨대를 꽂고 살려고 노리고 있었을게다. 그런데 그가 빨대를 꽂을만한 사람이 못되어서 실망했던 것은 아닐까. 도리어 빨대를 꽂히게 되어서 분노했던 것일수도 있고. 생각해보면 내가, 물욕만 있는게 아니라 허영심도 많은 인간이었던 것 같다. 교만은 또 어떻고. 다 가춘 그럴만한 사람이면 얼마간 교만할수도 있고, 어느정도 물욕이나 허영심 쯤은 애교로 봐줄수도 있지않을까. 아무것도 아닌사람이 그러면 더 못봐주게 되어있다. 본인이 잘랐거나 부모가 대단하다거나 남편이 한목소리 한다거나 하면 우쭐댈만 하지않겟는가. 잘했다거나 옳다는 얘기가 아니라 봐줄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대 도저히 깜량이 안되는 사람의 교만이나 허영심은 용서가 안되는게 현실이다. 주제넘어서다. 내가 그렇다면 그런것이다. 내가 그러고 있어서 알고있다. 그런대, 인생은 인생이다. 네 인생이 인생이듯, 내 인생도 인생이다. 떠 밀려왔던 스스로 선택해서 왔던 온 힘을 다해서 살아온것은 피차 마찬가지 아닌가. 한쪽만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은 억울하다. 떠밀려온것 만으로도 많이 억울한 심정인데 무시받거나 홀대받는다면 그도 억울한 일아닌가. 와우! 소심하고 멍청한 인생을 사느라 얼마나 고단했는데, 위로받아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 막무가내로 어리섞은 저를 살펴주시고 계신거지요? 완전하고 좋은 길로 인도해주고 계신거지요? 저도 아버지를 경외하고 사랑합니다. 영순위는 아닙니다. 영순위는 바라지 마셔요. 저도 영순위는 아니니까요. 저보다 앞순위인것은 틀림없으니 안심하시구요. 오늘밤도 뒤척이지 않고 잠들게 하여주십시요. 이땅의 뒤척이고 잠들지 못하는 인생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아버지의 평강이 함께하게 하여주십시요. 다들 허기지고 지처서 잠들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