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 붓다
간이 붓다(간이 부으면 지나치게 대담해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질병보다 유독 간 질환을 많이 앓고 있다. 특히 B형 간염 환자가 많은 편이다. 만성 간 질환이나 간암에 의한 사망률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 간 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총 사망 원인의 1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하니 '간'을 너무 혹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은 한자'간'이다. '간'은 아주 이른 시기의 문헌에서도 '간'으로 나오지만 그 고유어는 확인되지 않는다. '간'이라는 한자어가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아무 변화 없이 통용되고 있는 셈이다.
'간'이라는 한자는 뜻을 나타내는 '살'과 음을 나타내는 '방패'로 구성된 이른바 형성문자이다. '간' 전체가 살로만 이루어져 있고, 독성 물질을 해소하면서 질병을 막는 방패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살'과 '방패'를 조합한 단어의 형성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 '간'에 대한 한의학과 서양 의학의 해석은 좀 다르다. 서양 의학에서는 '간'을 탄수화물을 저장하고 단백질이나 당의 대사를 조절하며 해독 작용을 하는 기관으로 설명한다. 반면, 한의학에서는 '간'을 몸의 모든 근육이 운동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고 정신 활동의 요체인 혼이 깃들어 있는 곳으로 설명한다. 말하자면 '간'을 온몸의 기관, 조직, 세포는 물론이고 정신 활동까지 관장하는 중요한 장기로 여기는 것이다. '간'을 정신 활동과 관련지어 이해하는 것이 서양 의학과 다른 점이다.
한의학에서 '간'을 어떻게 해석하는가는 '간'을 포함하는 관용 표현의 의미를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간에 기별도 안 가다', '간에 차지 않다' 등은 '간'이 에너지를 만드는 기관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관용 표현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은 위에서 소화가 되지만 그 영양소는 문정맥을 통해 간에 모여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물질로 대사된다. 그리고 남은 영양소는 간세포 안에 저장해 두었다가 에너지가 부족해지면 다시 분해하여 공급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먹은 음식물이 효과를 내는 것이 바로 '간'이기 때문에 음식물의 영양은 간에 이르러서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간의 작용을 토대로 하여 만들어진 관용 표현이 '간에 기별도 안 가다', '간에 차지 않다' 등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먹은 것이 너무 적어 간에서 에너지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한편 '간이 작다', '간이 크다', '간이 붓다' 등은 '간'이 '마음'이나 '정신'을 관장하는 기관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관용 표현이다. '간'에 기가 부족하여 간의 기능이 약해지면 조그만 일에도 겁을 내고 두려워하는 반면, 간에 기가 충만하여 간의 기능이 강해지면 웬만한 일에는 겁을 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대담하지 못하고 겁이 많은 것을 '간이 작다'고 하며, 겁이 없고 매우 대담한 것을 '간이 크다'고 한다.
간의 기운이 너무 성하여 간의 기능이 상승하면 '간이 붓는다'고 한다. 간이 부으면 지나치게 대담해져 통제가 불가능해지고 결국은 사고를 내게 된다. 그래서 '간이 붓다'에 '지나치게 대담해지다'는 의미가 결부된 것이다.
'간'의 속어가 '간덩이'여서 '간이 붓다'는 '간덩이가 붓다'로 쓰이기도 한다. 실제로는 '간덩이'를 '간뎅이'로 변형시킨 현상이고, 그에 따라 지나치게 대담해져 막된 행동이 나오므로 속어를 이용한 표현이 더욱 잘 어울린다.
그 밖에도 '간'이 '마음'이나 '정신'을 관장하는 기관임을 증명할 수 있는 관용 표현이 많이 있다. '간을 졸이다', '간이 콩알만 해지다', '간을 말리다', '간을 태우다' 등에 쓰인 '간'도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