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리 가는 길
어린 피붙이 껴안고 적돌만 파도로 가라앉던 그 찰나 등에 업힌 아이, 귀 잡아당기며
‘엄마, 신발이 안 뵝’
그 외침에 화들짝 놀란 과부댁 재빨리 정신 차리며 ‘그래, 조금 더 살자’ 갯바닥에 엎드려 보리조개 캐오던 저물녘이다 해는 지고 어두운데
엄마, 엄마, 나 이제 창자가 끊어지게 배고파도 밥 달라는 말은 꺼내지 않을 거야 생글생글 웃는 반달 입술 위로 먹머루 눈동자 이슬이 그렁그렁하다 담뱃집 문 두들겨 보리밥 고봉으로 얻어 동생들 주린 배 채워줄 거야 바다로 흐르는 장검천 건너 굴뚝마다 밥 짓는 모락모락 연기 보며 주먹 쥐고 또 몇 년 날짜 지나며
이사 갈 때마다 진둠벙 둔치 아카시아 몇 개 캐왔더니 뿌리 내렸다 장난감 같은 울타리는 경계선이 되지 못했으나 단 한 명의 좀도둑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안팎 분리되는 담장처럼 변모하면서 머위 따고 달래도 캐면서 처음으로 희망이란 단어를 떠올리기도 했다
시간아 흘러라 어른만 되면 공납금 내지 못해 싸대기 맞을 일이 아예 없어진다 부지런히 벌어서 시멘트 담벼락 올리고 서까래 위로 기왓장 올린 집도 지을 참이다 노름은 절대 금지이며 술 담배 는 손도 안 댈 참이다 뽀드득뽀드득 어금니 갈며 물려받은 헌책 위에 엎드린다 우는 동생 재웠으니 두어 시간 남았고
중학교 입시 무조건 치렀지만 입학금이 없다 쇳밭둑 너머 돈 꾸러 간 어미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아서 손바닥 비비는 겨울밤, 사립문 열릴 때마다 고개 내밀던 소년의 두 뺨으로 칼바람 파고들 Ei마다 정신이 바싹바싹 나는 것 같다 저 언덕 너머 반짝이는 불빛 보며 희망의 가슴 열까 말까 망설이는 열세 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