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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에 고인 눈물 진주나 될 양이면
청실 홍실 길게 꿰어 님께 한 끝 보내련만
거두지 미처 못하여 사라짐을 어이리.(작자 미상의 시조)
이 책을 읽고난 후에 문득 떠오른 시조 작품이다. 자신을 떠난 ‘님’을 그리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화자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사랑하는 이가 다시 화자의 곁으로 돌아오면, 기다리는 동안 상대를 그리워하며 흘렸던 자신의 눈물이 얼마나 많은지를 확인시켜 주고자 하는 절실한 마음이 느껴진다. 그동안 흘린 눈물들을 진주처럼 모아서 실에 꿸 수만 있다면, 어딘지 모를 먼 곳에 있는 사랑하는 이에게 가 닿을 수 있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눈물은 흘리는 순간 사라지기에, 이 작품에서는 기다리는 동안의 감정을 상대에게 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인용한 시조 작품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을 모을 수 있다는 설정이 제시되어 있다. 먼저 “보통의 사람들이 결코 예측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눈물을” 쏟아내어, 어려서부터 눈물을 많이 흘려 ‘눈물단지’라고 불렸던 아이가 등장한다. 눈물이 많은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는 걱정할 수밖에 없었고, 더욱이 친구들은 아이를 ‘눈물단지’나 ‘울보’라는 별명으로 놀렸다. 사소한 일에도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만큼 감정이 풍부한 사람임을 드러내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남들과 달리 눈물이 많다는 이유로 아이는 그저 친구들에게 놀림감으로 여겨졌고, “다른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조용히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어느 날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모자를 눌러쓴 아저씨”가 등장하여, “특별한 눈물을 가진 아이”인 ‘눈물단지’ 앞에 나타난다. ‘눈물을 모으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한 아저씨는 눈물을 판 대가로 받은 '파란 새벽의 새'라는 이름을 가진 푸른 휘파람새와 힘께 아이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갖가지 모양의 크고 작은 눈물들이 수많은 보석들처럼 진열"된 '큼작한 검은 상자'를 아이에게 보여준다. 아저씨는 아이에게 자신이 모은 눈물들을 하나씩 소개하고, 아직 가지지 못한 '순수한 눈물'을 구하기 위해 '눈물단지'를 찾아왔다는 말을 건넨다. 그리고 아이의 눈물을 확인하기 위해 울어줄 것을 부탁하지만, 그 말을 듣자 그렇게 자주 흘렸던 눈물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 전개된다.
오래 기다렸지만 끝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아이에게 작별을 고하고, 아저씨는 눈물을 사겠다는 사람에게 가야한다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같이 가자’는 ‘파란 새벽의 새’의 말에 따라, 아이는 아저씨와 함께 길을 떠난다. 함께하는 동안 아이는 아저씨에게 ‘눈물을 팔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침내 ‘눈물을 주문한 사람의 집’에 도착해서, 집주인인 할아버지가 “평생 눈물을 흘려보지 못했”던 사연을 듣게 된다. 그리고 ‘눈물 상자’에 담겨있던 “눈물들을 모두 삼킨 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평생 울어보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다.” 눈물을 흘려야하는 상황에서 미처 흘리지 못했던 눈물을 쏟아내며, 할아버지는 마침내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음껏 눈물을 흘린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목각피리의 연주를 들려주었고, 귀를 기울여 피리 연주를 듣던 아이의 "눈가에 맺힌 눈물 한 방울을 아저씨가 유리잔에 담아가는 것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가 자는 동안 아저씨는 그 눈물을 결정으로 만들어, 잠에서 깬 아이에게 보여준 다음 선물로 건넨다. 아저씨와 헤어진 아이는 “엄마가 연둣빛 눈물을 흘리고 있을 집”으로 향하는 내용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저자는 대학로에서 공연했던 ‘눈물을 보여드릴까요?’라는 제목의 어린이극을 보고, 이 작품을 쓸 생각을 했다고 한다. “덴마크 출신의 중년 남자가 만들고 공연한 일인극”이었으며, “검은 상자를 들고 무대에 나타난 그가 커다랗고 투명한 눈물방울들을 꺼내 보여주었던” 기억이 창작의 계기로 작용했던 것이다. 눈물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 표출의 표식이라는 것,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 “예기치 않은 순간에 우리를 구하러 오는 눈물에 감사”를 전하는 작가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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