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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모시는 사람을 위해 활동하면서, 조언을 통해 때로는 의사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을 흔히 참모(參謀)라고 한다. 때문에 자신이 모시는 분과 참모와의 역학 관계가 대단히 중요하기에, 적어도 참모로 활동하는 동안에는 본인보다 모시는 분이 더욱 돋보이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참모를 일컬어 그림자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서 자신의 조언과 역할을 통해 자신이 모시는 분의 업적이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해야만 한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활동했던 인물들의 일생을 군신 관계의 측면, 곧 참모로서의 능력과 업적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새 왕조를 설계하다’라는 제목의 1부에서는 조선 왕조를 건국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인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태조 이성계와 함께 새로운 왕조를 설계하고 그 기틀을 다졌던 인물인 정도전을 ‘신권의 신봉자’라는 측면에서 논하고 있다. 그러나 정도전은 그로 인해 왕권을 위협한다는 구실로 끝내 이방원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밖에도 태종의 참모로 활약했던 하륜과 세종 대의 장영실의 역할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특히 비운의 왕인 단종과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했던 세조의 참모로 대비되는 성삼문과 신숙주의 삶을 역사적 평가를 통해 논하고 있기도 하다.
2부에서는 ‘국가의 기틀을 다지다’라는 제목으로 주로 성종 때에 활동했던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조선 전기 문장으로 이름이 알려진 서거정과 강희맹, 그리고 성현의 삶을 왕의 참모라는 관점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고 있다. 이밖에도 세조의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때로는 ‘간신’이라는 평을 듣기도 하는 한명회, 그리고 훈구파에 맞서 활동하다 끝내 ‘무오사화’에 희생되었던 김종직과 그의 제자 김일손의 삶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림파라는 새로운 정치 세력을 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지만, 4차례에 걸쳐 발생한 사화는 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치열한 정치투쟁의 모습으로 각인되고 있다.
흔히 폭군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연산군의 등장과 이에 반발해 정권을 빼앗은 ‘중종반정’은 조선시대 최초의 인위적인 왕권 교체라 할 수 있다. ‘폭군의 실정에 흔들리다’라는 제목의 3부에서는, 특이하게 기생 출신으로 연산군의 측근으로 여겨졌던 장녹수를 첫 머리에서 다루고 있다. 이와 함께 연산군의 참모로 활동하다 끝내 부관참시를 당했던 임사홍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이밖에도 중종의 참모로 활동했지만 기묘사화를 일으킨 남곤, 그에 의해 희생되었던 조광조의 삶과 활동도 뚜렷하게 대비된다고 하겠다. 또한 인종과 명종 대의 인물인 김인후와 조식의 역할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
조선 왕조는 7년이 넘게 전국토를 휩쓸었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당시 민중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이와 정철은 당시 서인 계열의 인물들로서, 때로는 당파 간의 의견을 조정하고 때로는 상대 당파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이들과 당파적 입장이 달랐던 류성룡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전란의 참상과 교훈 등을 다룬 <징비록>을 남겼다. 전란이 벌어지자 의병을 일으켜 활동했던 조헌과 같은 인물들이 있는가 하면, 조선에 귀화한 일본의 장수 사야가는 김충선이라는 이름으로 활약하다 조선에서 생을 마치기도 했다.
5부와 6부에서는 광해군과 인조 대에 활동했던 인물들을, 각각 ‘광해군의 그림자 속 참모들’과 ‘명분과 실리 사이, 인조반정’이라는 제목으로 다루고 있다. 소설 <홍길동전>의 작자로 잘 알려진 허균은 광해군의 총애를 받다가 역모에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비운을 맞이했다. 당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나섰다가 광해군의 참모로 활동을 했던 정인홍, 그리고 당파적 색이 옅어 여러 왕조에 벼슬을 했던 이덕형과 이원익의 삶도 흥미롭게 다루어지고 있다. 최근 박근혜 정권 당시 국정농단의 주모자였던 최순실에 비유되기도 했던 김개시는, 특이하게도 상궁의 신분으로 광해군 대에 막강한 권력을 누리며 국정을 농단했던 인물로 기억된다. 인조 대를 다루고 있는 6부에서는 당시의 권신이었던 이귀와 최명길을 제외하면, 장만과 김신국 그리고 조경 등 그동안 역사에서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가장 뒷부분에 수록된 7부 ‘왕권이냐, 신권이냐? 당쟁과 갈등’에서는 시대적으로 조선 후기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주로 숙종 대의 인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허목과 김석주, 그리고 송시열과 최석정 등이 숙종 대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서 서로 길항하는 관계에 놓여있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정조 대의 정약용과 고종 대의 이건창은 오히려 참모의 역할보다는 학자로서 그들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조의 참모로 활동했지만, 정조 사후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를 가서 18년 동안 방대한 저술을 남긴 정약용은 지금까지도 학자로서의 이미지가 더 두드러지게 남아있다. 조선시대 당쟁을 정리한 <당의통략>을 저술한 이건창 역시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에서 조선시대 당쟁의 역사를 기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활동했던 인물들에 대해, 주로 자신이 섬겼던 왕을 위한 참모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 다루고 있다. 주지하듯이 조선시대는 건국 초기부터 왕권과 신권의 대립과 조화를 추구했지만, 권력자에 따라 왕권이 강조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반대의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때문에 신권을 강조했던 정도전과 김종직 등은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던 상황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기도 했던 것이다. 숙종 때까지는 비교적 시대적 흐름에 맞추어 다양한 인물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영조 이후의 인물들은 정약용과 이건창 등 두 명에 그치고 있다. 아마도 조선시대의 국왕 중 영조와 정조는 특히 왕권의 강화를 위해 신권의 성장을 억제했으며, 19세기에는 세도정권이 들어서면서 왕권이 상대적으로 미약하여 신하는 많지만 참모로서는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판단을 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으면서 부적절한 문장과 오타가 너무도 많이 발견되었는데, 추후 이 책을 다시 찍게 되면 그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교열을 정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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