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없고, 쓸개 빠지고, 담소(膽小)한 사람(이충우)
이충우(국어교육학박사, 전 관동대학교 사범대학장)
우리는 웅담(熊膽, 곰의 쓸개)이나 저담(豬膽, 돼지의 쓸개) 등 다양한 동물의 쓸개를 약용으로 사용해 왔다. 우리는 이런 쓸개에서 연상된 의미를 나타내는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이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열’은 ‘쓸개’의 다른 말로 사전에서는 ‘쓸개의 사투리나 옛말’로 풀이하고 있다. ‘열없다’는 ‘담이 작고 겁이 많다.’는 뜻과 ‘좀 겸연쩍고 부끄럽다. 성질이 다부지지 못하고 묽다. 어설프고 짜임새가 없다.’의 뜻으로 쓰인다.
‘쓸개’는 ‘열·담(膽)’의 다른 말이며 ‘하는 짓이 사리에 맞지 아니하고 줏대가 없는 사람’이나 ‘정신을 바로 차리지 못하는 사람’을 ‘쓸개 빠진 사람’이라 표현한다.
‘담(膽)’은 ‘쓸개’의 한자어로 우리는 ‘담이 크면 겁이 없고 용감하다.’라거나 ‘담이 작으면 겁이 많고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겁이 많고 배짱이 없는 사람을 ‘담대(膽小)한 사람’이나 ‘소담(小膽)한 사람’이라 말하는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대담(大膽, 담력이 크고 용감함’과 ‘담대(膽大, 겁이 없고 배짱이 두둑함)’로 풀이하고 있는데 둘 다 ‘쓸개가 크다.’에서 유래한 말이다.
‘열없는 행동’은 ‘쓸개 빠진(없는) 행동’과 같고 ‘담소(膽小)한 행동, 소담(小膽)한 행동’과 같다. 그런데 ‘열 있는(큰) 행동’이나 ‘쓸개 큰(있는) 행동’을 사용하는 예를 찾기는 어렵지만 ‘담대(膽大)한 행동, 대담(大膽)한 행동’은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여기서 긍정적으로 여겨지는 말에는 주로 한자어가 쓰였고,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말에는 고유어 ‘열, 쓸개’가 주로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사라져가는 고유어 ‘열’과 ‘쓸개’, 한자어 ‘담(膽)’을 비교하는 것은 국어에서 순수한 고유어가 어떻게 사라지고 살아남는가와 기본적인 의미가 비유적인 의미로 변해가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