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꽃들이 피고 지는 것을 유심히 본게 아니었다. 그냥 스처지나가듯 무심코 보아온게 맞았다. 우리 화분에 채송화 한송이가 달랑 한송이가 피었기에 눈이 갔던 것이다. 그런데, 딱 하루만 피고 갔다. 처음엔 오무라 들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다시 피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다시 피는게 아니었다. 그동안도 그랬을탠데, 피고지고를 무수히 반복했기에 단 하루만 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가보다. 그럼 다른 꽃들도 마찬가지일가. 그렇지는 않는것 같은데, 모르겠다. 아니, 내가 확인했음에도 내 눈이 신뢰가 가지 않고있다. 단 하루를 피기위해 그 긴날을 견디며 지냈단 것을 믿으라고? 사람은 보통 70-80을 산다. 장수하는 사람들은 100살을 넘기고 있다. 골치가 아파온다. 누가, 어느쪽이 더 아름다운가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말은 입에 담고 싶지도 않다. 채송화는 뒷끝도 없었다. 목련은 참으로 요란스럽게 지고, 장미도 나무에 붙들려 땅에 떨어지지도 못하고 말라 비틀려 있다. 철쭉도 만만치가 않았다. 채송화는 워낙 작은 꽃이어서 하나님은 또다른 선물을 주신 것인가. 오늘도 또 다른 채송화 한송이가 피려고 눈을 뜨고 있었다. 정말 단 하루를 위해서 핀단 말이지? 그 하루를 위해 나는 오늘 뭘 할까. 교회 가는 날이다. 본질은 예배다. 그런데 본질인 예배보다 본질이 아닌일에 더 집중하고 있는 나 다. 오늘은 오랜만에 소망교실이 열린다. 예쁜 손글씨. 켈리 그레프, 나름 연습을 하고 있음에도 발전이 없다. 집착하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여러모로 참 애로사황이 많은 것인가.
어제는 00아제로부터 전화가 왔다. 00아제는 권목사님 교회 장로님이라는 인연도 있다. 권목사님이 벌써 정년 은퇴를 앞두셨단다. 교회 행사도 있고해서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기쁘고 반가웠지만 어디 내가 그런데 참석할 깜량이 되야 말이지. 사양했으면서도 아쉬움이 남았다. 권목사님으로 말하자면 옛날 교구목사님이셨고, 이런저런 폐를 끼치기도 했었다. 아니, 그런저런 일이 아니어도 그리운 얼굴임에는 틀림이 없다. 와우! 지금에 이르러서도 사람노릇 못하고 사는것은 여전하고 변함이 없네. 줄구장창 변함이 없다는 것은 진절머리 나는 일이다. 나는 좀 확 변할수 없는 것일까. 하나님은 내게 어떤 소명을 주셨을까. 내게도 소명이란게 있기는 했을까. 어쩌면 나는 끼어들어 숫자에도 없는 존재는 아닐까. 갑자기, 내 배를 갈라보면 뭐가 나올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질투, 미움, 그리고 허영으로 가득차 있을까. 탐욕은? 극악은? 나 자신도 나를 한심하게 여기는데 남들은 오직하랴 싶은 생각에 또 움추려진다. 하나님 아버지, 불쌍히 여겨주시고 끝까지 은혜를 배풀어 주시길 바랍니다. 저, 정말 한발은 이미 거기에 가 있읍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