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격
엊그제는 결혼기념일이었다. 양력과 음력이 일치하여 삼십팔 년 전 그날처럼 열나흘 보름달이 휘여청 밝았다. 모처럼 식탁보를 깔고 정성껏 음식을 차린 후, 레드와인을 따랐다. '짠'하자 그가 "우리 싸우지 맙시다" 한다. 내가 웃는다.
우리에게 '거리(距離)'가 필요함을 확실히 안 것은, 밀림이 되어가는 과수원을 보면서였다. 밀감나무가 어릴 때는 방풍수(防風樹)도 바람막이로 큰 역할을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햇빛을 차단하는 피해수가 되었다. 그 방풍림 정리만 해도 귤나무는 좋아했다. 또 얼마 지나니 과수원은 원시림을 방불케 했다. 품종이 좋지 않은 것부터 솎아내기 시작했다. 몇 해 안 가 그 자리가 또 메워지면서 옆 나무끼리 얽키고 설켰다. 맞닿은 부분은 서로 열매 맺기에 경쟁을 벌렸지만 수확할 때 보니 병과(病果)가 되어 파지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가지까지 고사(枯死)하기도 했다.
간벌을 해서 뚝뚝 떨어뜨려 놓는 방법 밖에 없었다. 햇볕과 통풍을 위해 나무를 솎아내거나 수관을 축소했다. 수확량의 가미소를 우려했지만 맛도 나아지고 비非상품과도 줄고 가격도 잘 받았다. 결국 나무도 존재의 거리를 유지해야 스트레스가 없어진다는 것을 본 셈이다.
사실 그가 직장에 나갈 때는 싸울 일이 없었다. 은퇴 후 한참 지나서야 우리도 나무처럼 별도의 존재 공간이 필요함을 알았다. 완충지대가 필요했다. 우선 방(房)만이라도 따로 쓰기로 했다. 아, 이렇게 편할 수가! 그가 자기 방에서 늦도록 티브이를 보아도 간섭하는 사람 없고, 나는 내 방에서 나대로 혼자 굿을 해도 얼굴 붉힐 일이 없어졌다. 노트북을 켜고 이것저것 뒤져보기도 하고, 체조하며 훌라후프를 돌리고, 친구와 전화도 마음 놓고 건다. 책이나 신문을 읽고 스크랩 정리를 하기도 한다. 밤의 내 라이프스타일이 변했다.
내친김에 과수원도 반으로 갈라 따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라디오를 들으며 일을 하고, 나는 내 취향대로 산새소리를 들으며 김을 맨다. 써니가 바쁘게 우리 사이를 오가며 말을 시킨다.
사물 간에도 거리가 없어진다면 우주 전체가 충돌로 모든 것이 소멸하지 않을까. 천체 간의 간격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억겁 동안 자기 길을 감이 우주의 질서일 것이다. 어느 시인은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에야 비로소 울울창창 숲도 간격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산불이 때론 존재 공간의 부족으로 자연 발화하듯이 부부지간도 거리를 갖지 않으면 외려 위험한 것을 아니까. 서로의 마음을 조금 모르고 살아도 좋은 일이지 싶다.
달이 친구하자고 나를 불러낸다. 그러나 달은 나를 기다리지 않고 저만치 앞서간다. 처음으로 지구가 이렇게 빨리 자전하고 있음을 생각해 본다. 내가 구르지 않음이 새삼스럽다. 그래 그렇구나. 지구와 달의 간격 그리고 나와 달의 거리가 황금비로 이루어졌구나. 셋의 인력引力의 합일이다. 우리가 싸울 땐 그와 나의 인력에 이상이 생김이리라. 부부란, 동반자라는 이름의 한 축에 원심력과 구심력 사이의 완충지대를 공유함으로서 소통이 이루어지지 싶다.
아무렴 우리의 싸움은 산과 알카리의 화학반응이 중화하여 새 물질을 만들 수 있는 그 거리를 유지하면서 오월동주(吳越同舟)로 항해를 하고 있으리라. 적당한 거리는 소외가 아니라 조화이며 평화이고 소통이다. 극과 극이 오히려 자장(磁場)이 강한 이치이리라. 만일 그가 잠시 집을 비우는 날엔 나는 허전해 아무 일도 못 할지 모른다.
그가 있음에 내가 있고, 이 우주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 본다.
- 안정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