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름한 농가 주택과 소 우사가 있었던 곳에 세워진 교회, 요양원, 요양병원
내가 교회를 개척한지 5년쯤 되던 1995년 초,
나는 예언의 신을 읽다가 의료 선교가 복음의 오른 팔이라는
선지자의 글이 내 마음에 크게 와 닿았다.
어짜피 내가 이 땅에서 헐벗고 병들고 소외되고 버려진 이웃들과
함께 살아야 할 운명이라면,
요양원을 세워 체계적인 의료 선교를 해 보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어났다.
의료 선교는 내가 소망하는 늦은비 운동을 위한 세천사 기별의
영원한 복음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깨닫고
그때부터 교인들에게 요양원 설립의 필요성을 강하게 설교하기 시작했다.
몇몇 교우들이 은혜를 받아,
한 장로님이 요양원 건축을 위해 자신의 땅 일부를 임시로 내어 놓았고
교인들은 '힘을 다하여' 헌금을 했고
또 몇몇 청년들은 일력으로 헌신하기로 작정을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교회 장로님의 집이 있는 미양면 고지리
산 위의 넓은 터 중 가장 꼭대기에 천막으로 식당을 만들고
하우스 모양으로 강의실과 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더운 여름에 몇 안되는 교우들은 정말 피 땀을 흘리면서
손수 땅을 파서 물을 아래에서부터 끌어 올리고 하우스 대를 세워
거기에 보온 덮개와 천막을 씌우고 댄조를 하여 천정을 만들고 옆에는
블록으로 담을 세우고 밖에는 스레트를 대고
벽은 도배를 하고 바닥은 보일러를 깔고...
(열흘 후에 이 건물들이 애석하게 헐릴 것도 모른채)
참으로 힘에 부칠 정도로 죽을 고생을 하여
1995년 8월 1일 드디어 무료 건강 세미나를 개최하게 되었다.
일단은 요양원 이름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아
기도 중에 하나님께 받은 [브니엘]이라 하였다.
누구든지 병들고 가난하고 죗된 사람들은 와서 기별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얼굴]을 보므로 죄사함 받고 구원 받고
병고침 받는 곳이길 원하는 마음으로 브니엘이라 한 것이다.
정말 수만장의 지라시를 안성 인근 지역 곳곳에 뿌리고 신문 삽지를
하면서 선전하였지만, 세미나 첫 날 단 [한사람]의 병자가 오는 바람에
우리 모두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무모한 도전이었다.
당시 우리 나라에는 한 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던 이상구 박사님의
건강 세미나가 사방팔방에 개최되고 있었고
그분이 아니더라도 능력있는 건강 세미나 강사들이 이곳 저곳에서
뉴스타트 세미나를 열고 요양원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때에
안성 시골의 무명의 사람인 내가 강사가 되고
정식 건물도 아닌 천막 하우스 비슷한 모양의 건물에
열흘 동안 건강 세미나를 한다고 하니 아무리 공짜라도
올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단 한 사람.....!
당시 우리에게서 머지 않은 곳에 한 교회가 산골 경치 좋은
수련원을 빌려 건강세미나를 개최한다고 하여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광고하고 준비하였는데 환자가 6명만이 신청을 하여
그 세미나를 취소했었다.
그러나 나와 우리는 그럴 수 없었다.
‘한 사람’의 영혼의 가치는 예수님이 그 한사람만 위해서도
이 땅에 오셔서 죽으셨을 것이라는 시대의 소망의 말씀이 나를 격동시켰다.
우리 교인들과 함께 그 한사람의 영혼을 위해 우리는 열흘을 메달렸다.
하루에 4회씩, 새벽과 오전 오후 저녁으로 나는 설교와 건강 강의를 하였다.
생전 처음 해 보는 건강 강의인지라 금식하면서 밤 낮 연구하여
최선을 다해 깨닫고 아는 만큼 목소리 높여 전했다.
오직 한 사람으로 세미나에 참석한 김해성씨(당시 67세).
그는 경찰관 출신으로 10년 넘은 협심증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하루에 수십알씩 약으로 연명하던 분이셨다.
다른 것도 아니고 '공짜로' 병 고쳐 준다는 전단지 문구에
현혹(?)되어 오셨다고 스스로 말씀하셨다.
세미나 3일째,
유일한 환자로 오신 김해성씨가 돌연 집에 가야겠다고 했다.
비상이 걸렸다.
오직 한 사람이 집에 가 버리면 우리가 벌여 놓은 잔치는
누굴 위한 것이 되며 여러달 준비하고 헌신하고 애써온
우리 교인들의 수고는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아니 김선생님 왜 그러십니까? 집에 가신다니요..."
"아이구~ 배 고파서 못 살겄어. 병 고쳐 준다더니만 3일 있어 보니
뭔 밥도 시꺼멓고 이상한 밥 몇 수저 주고 그것도 두끼 밖에
안 주고...맨날 예배만 보니 원... 이래서 병 낫겠어? "
당시 하루 2식에 현미밥을 제공했던 건강 세미나의 식단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고, 모든 먹던 약들(하루에도 세번씩
수십알씩 먹었던)은 입산하는 날 모조리 버리게 하였기에 그 대신
그 어떤 효험있는 약을 기대했던 것에 대한 실망이었던 것이다.
나와 우리 교회 여 집사님들은 온갖 애교와 사랑을 퍼 부으면서
그를 설득하고 이해시켰다.
어쨌든 왔으니 약속한 열흘만 있어 보고 가라고, 어짜피 공짜 아니냐고.
그런데 그 후 김해성씨에게서 놀라운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음식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의 심령에 성령의
역사를 통한 변화였다.
한 일주일이 지나자 그는 산에 올라가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예수를 영접하고 눈물로 과거를 회개하면서
열흘만에 거짓말처럼 병이 씻은듯이 낫는 기적을 경험했고
8월 11일에 그의 아내가 참석한 가운데 침례를 받았다.
그 후 그의 아내도 침례를 받았으며 그의 손녀 딸까지
침례를 받아 현재 교회에 출석하고 요양원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훗날 우리 교회 집사가 되었으며 올해 80세이신 지금도
아주 정정한 건강을 유지하며 밤에는 집에서 약 20킬로가 넘는
송탄에 있는 상가 경비(월 80만원)를 보고
낮에는 양계장을 돌보면서(월 70만원) 거기에 상가에서 나오는
박스등을 매일 자신의 차에 실어 팔아 매일 3~5만원씩 수입을
올리는 노익장을 과시하면서 건강하게 사시고 계시다.
그 뿐인가? 자신의 집에는 여러 짐승들도 손 수 키우고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일하신다.
차도 두대나 가지고 계시면서 손수 아내를 태워 교회에 출석하고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시면서 십일조 생활도 하시고
아직도 왠만한 젊은이 못지 않은 건강을 과시하신다.
하나님은 치유하시되 재발이 없는 온전한 치유를 선물로 주신 것이다.
만약에 그 첫 건강 세미나에 50여명의 환자들이 와서 한명이 나았다면
그 치료의 확률은 50분지 1이었지만,
단 한명이 와서 그 한명이 치유되었으니 요양원을 하면 그 성공
확률이 100퍼센트라는 사실을 주님이 나에게 확인시켜 준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용기를 갖게 되었다.
성공 확률 100퍼센트 사업이라면 해 볼 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도 하나님이 명하시고 선지자가 보증을 선 것이라면 말이다.
그것이 오늘날 브니엘 요양원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첫댓글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긴 인내의 시간이 오늘의 요양원과 병원이라는 꽃을 피우게 되었겠죠. 하나님의 크신 축복 늘 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