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원의 『우서』 는 문답체 77개조 항목에 걸쳐 부국안민을 향한 사회개혁론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유수원이 40세 전후의 불우한 처지에서 저작한 것으로 전한다. 책 제목의 ‘우’ 자는 ‘멀다, 오활하다’는 말인데, 흔히 ‘세상 물정을 모른다’, ‘비현실적이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일종의 겸사인 셈이다. 그러나 서론격인 제1권 「이 책을 저술하는 근본 취지[記論譔本旨]」를 보면, 붕당 싸움으로 얼룩진 조선 후기의 정치 상황에 대한 유수원의 현실 인식이 이 ‘우’ 자에 담긴 것이 아닌가 싶다. 이 경구는 책 맨 끝 부분에 결론처럼 수록되어 있다. 글은 이렇다. 【문】 그대에게 오늘날의 폐단을 구제하게 한다면, 그대가 논의한 법도대로 당장에 거행 조치하겠는가.……【답】 말단만을 다스리고 근본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옛날 그대로 침고(沈痼)해질 뿐이다. 이것은 이른바 치표(治標)일 뿐이다. [或曰。設使吾子救今日之弊。則必以所論法度。擧而措之於目前否……答曰。治標而不治本。則依舊沈痼而已。此所謂治標而已。] |
유수원이 『우서』 에서 펼쳐 보인 꿈은 사민일치(四民一致)의 세상이다. 즉 사농공상의 사민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자신의 생업에 편안히 종사하는 세상! 양반제로 고질화된 신분제의 타파가 그 핵심이다. 국허민빈(國虛民貧)의 현실을 성찰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부국안민의 기본 방향을 모색한 책이 바로 『우서』 였다. 그러나 이 시기 조선의 정치는 이미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었다. 소수 기득권 세력에 둘러싸인 채, 정치가 ‘통합의 원리’로 작용하기 보다는 ‘배제의 장치’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탕평책도 고육책, 미봉책에 지나지 않았다. 때문에 『우서』 를 통독한 영조는 “나는 일을 행할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행해지지 못할까 두려워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는데, 이 사람은 말이 아닌 글로써 이를 기술하였다. 이는 실로 나보다 훌륭하고도 뛰어난 것이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책은 『동서(東書)』 로도 불리며 당시 지식인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그러나 그의 나이 62세 때, 영조가 정치적 의도를 갖고 파헤친 사건에 연루되어 ‘대역부도죄’로 처형되자 『우서』 를 입길에 올리는 것은 금기가 되었다. 『우서』 의 개혁안도 세상에서 잊혀졌다. 치표와 치본! 말단만을 다스릴 것인가, 근본을 다스릴 것인가. 유수원의 『우서』 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
첫댓글 근본부터 다스려야지요.
위에서 잘해야 말단도 다스려지는 법.
위정자들부터 정신을 차려야될텐데요.
과거나 현재나 비슷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근본을 잘 바루어야 하겠네요.
근본이 없는 것을 짐승이라 부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