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글쓰기 격려글) 2024 가을/전남대 글로벌 교육원 문집 3/
새벽달을 기리며
이민숙
글을 생각합니다. 글은 가르치거나 배우기 이전에, 무조건 쓰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처음부터 그것은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아주 어렸을 때, 가나다라를 배우고, 그것들의 조합이 어떤 개념을 형성하고 그 개념은 삶의 경험치를 반영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이란 또 다른 형식을 포함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최소한의 ‘배움’이 필요해 지기도 했습니다. 대중과 함께 ‘문학창작’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첫 마디, ‘좋은 글은 무조건 쓰는 순간에 시작된다.’ ‘글은 머리도 아닌 가슴도 아닌 손끝으로부터 완성된다’라는 말을 해왔습니다. 그 말에는 ‘글인 예술’에 대한 인식의 중요한 단서가 숨어있습니다. 바로 ‘형식’의 엄중함입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배운다는 것은 ‘형식’을 만드는 과정에 관하여 함께 고민하고 좀 더 나아가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시간의 경험을 쌓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 너무도 짧은 시간 속에서 지금처럼 글 쓰는 새벽의 한 날개 같은 경험을 했다면 여러분은 예술을 맛보았다고 할 것입니다. 새벽은 가장 맑은 글 쓰는 정신을 선물 받는 시간입니다. 글과 새벽! 진창의 일상을 물리치고, 복잡한 감정선의 하루를 가지런히 사유할 수 있는 새벽, 글이란 가장 독단적인 고독을 향유할 수 있는 만큼의 이런 새벽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시 글 속으로 걸어가기 시작하면 그 안에는 지나온 어제의 만화방창이 등장하고 쓰라린 이별의 순간도 불러와야 하며 나의 경험과는 별개인 것처럼 살아온 저 역사 속의 참화도 빼놓을 수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새벽’의 텅 빈 맑음과 고요가 더욱 글의 정체(복합적이며 총체적인)를 환히 밝혀준다는 역설입니다.
대학생인 여러분에게 문학의 과정을 짧고도 명료하게 안내하는 일을 해 오면서 반짝이는 영감이 어떻게 구체화 되는지, 왜 ‘나’는 글의 중심인지, ‘나’를 둘러싼 배경들이 어떻게 더 확장되는지 최소한의 인문학적 지식이 왜 필요하다는 건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은 반복적인 적용훈련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청춘의 글쓰기’는 이제 새벽인 것입니다. 새벽은 단순한 시간의 단위가 아니라 우리 인생의 개안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소유한 경험치를 존재의 그것으로 바꾸는 사건으로 여러분에게 한 편의 글이 작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벽달이 품어 안은 우주가 보름달로부터 초승달까지, 변화의 시점으로 가는 절정과 소박이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이라는 우주를 짧고 강력하게 끌어안은 글쓰기가 삶의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으로 걸어갈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우리가 함께 보낸 가을, 그리고 겨울, 그러나 또한 청춘의 향기를 내뿜으며 그 존재를 들이밀 봄은 여러분의 계절일 것인 바, 시 한편 선물하면서 이 글을 맺을까 합니다. 봄꽃들을 상상하며 이 겨울 더욱 정진할 수 있기를... ...
장미가 아름답다면, 오늘
그대 가슴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흠뻑
장미가 서럽다면, 지금
그대 가슴 한 쪽도 설움으로 복받치고 있다는 것이다
장미가 아팠다, 어제
그대 가슴은 쿡 쿡 뜨거운 상처로 일렁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영원 속 클로리스
아픔에 짓이겨져도 아름다운 그대여!
그냥 황홀해버려라, 저 황금빛 노을처럼
노란 병아리 앞가슴 색 장미 피어오르는 시간
아무도 몰래 심어놓은 발그레 향 깊은 골짜기에서
절대의 꽃잎 하나 피우며 숨죽인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의 그대여!
*클로리스: 꽃과 봄의 여신
--<클로리스> 전문 / 이민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