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7일
스마트 폰 액정에 뜬 오늘의 기온 영하 9도
카스토리에는 ‘과거의 오늘 있었던 일’이 가끔 뜬다.
2020년 2월 17일에는 눈발이 날려 눈 구경을 떠났다 실패한 기록이 있다.
그날도 영하 8도였네.
베란다 이중문을 하나만 연다. 그래도 냉기가 선뜩하다.
눈 아래 보이는 맞배지붕 집 여섯 채,
세 채씩 줄지어 언제나 이마를 맞대고 있다.
5층은 시야만 가리지 않으면 딱 좋은 높이다.
두 줄로 늘어선 단독주택이 있어 고맙게도 공간이 툭 터져있다.
평소에 맞배지붕을 내려다 보면 마음이 평안해져서 자주 내다보곤 한다.
지붕의 물매가 맞닿은 지점은 높이가 있어, 벽에 문이 있지만
창고로 쓰이는지 한 번도 열린 것을 본 적이 없다.
테라스라고 부르기에는 좁은 공간이 있어 쓰지 않는 물건들을
한쪽에 아무렇게나 내놓았다.
바로 그곳에 아침이면 녀석이 나타나곤 했다. 황갈색 털을 지닌 고양이다.
벌써 몇 년째 추운 날이면 햇빛이 드는 시간에만 볼 수 있다.
언젠가는 한쪽에 어린 새끼가 대여섯 마리 누워있고 저는 저쪽 끝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을 때도 있었다. 며칠 보이다가 어느 날 다같이
사라지고 없다.
오늘도 아직 햇살이 들지 않은 아침, 냥이 녀석이 어슬렁거리고 있더니
온전히 햇살이 퍼지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자리를 잡는다.
어디가 얼굴이고 팔다리인지 구별이 안 된다.
푹신한 털 뭉치 같다.
골목길에서 녀석을 만나기도 하는데 소속을 알 수 없다.
길냥이 같은데 꼭 그 장소, 시간을 택하는 것을 보면
그곳의 장점, 낮은 층고에 아침햇살이 퍼지기 시작하는 시간이나 반경,
그리고 햇살이 얼마나 머물다 가는지를 잘 아는 것 같다.
몇 해째 지켜본 나름대로의 결론이다.
보고 있으려니 녀석의 말이 들려오는 것 같다.
'왜 이렇게 춥다냥'
첫댓글 와! 희꽃님,이렇게 짧고 표현 좋은 작품 처음 보는 거 같아요.
그 냥이 아직도 그 햇빛을 찾아 오나요
어딘지 작은 한옥 마을인가 보네요
관찰력이 뛰어난 글 잘 보았어요.
그냥 보이는대로 쓴 글인데요, 뭘.
오늘도 봤는데 날이 덜 추운지 몸은 말지 않았어요.
귀신같이 알아챕니다.
저는 늘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재밌어요.
까치들도 늘상 넘나드는 그 공간.
제가 사는 건물도 아마 그런 맞배지붕집이었을텐데 재건축을 했겠지요.
한옥은 아니지만 네모난 옥상이 보이는 집이 아니라 이제는 만나기 힘든 옛날 집.
바라건대는 만나기 힘든 그 집들이 오래 건재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