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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권 차원에서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국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하려는 이유가 여러 가지였겠지만, 임시정부를 ‘대한민국의 정통성’의 축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도 그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당시 그들은 1948년 남쪽만의 단독정부를 ‘건국의 시작’으로 삼고, 독재자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우상시하려는 의도를 강하게 내비쳤던 것이다. 그러한 시도를 이른바 ‘역사 바로 세우기’라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명분에도 맞지 않고 역사적 사실에도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성공할 수 없었던 시도였다.
이 책은 3.1혁명과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에 출간되었다. 당시 한겨레에서는 3.1혁명 100주년을 맞아 당시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기사 형식으로 신문에 싣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3.1혁명과 임시정부라는 용어는 너무도 익숙하지만, 그 자세한 진행 과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하여 그동안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3.1혁명과 임시정부의 진행과정과 면모, 그리고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 지금까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사를 집중적으로 탐구했던 저자에게 이 작업이 갖는 의미는 각별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뿌리’라는 부제를 달아서, 3.1혁명과 임시정부가 우리 역사에서 뚜렷하게 정통성을 지녔다는 것을 천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저자는 그동안 ‘3.1운동’이라고 불렸던 것을 ‘3.1혁명’으로 명명하여, 우리의 역사에 걸맞은 위상을 정립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해방 이후 성립된 제헌의회의 초안에는 ‘3.1혁명’이라고 명기되어 있었지만, 독재자 이승만과 친일인사가 주축이 되었던 한민당 등에서 그 명칭을 ‘3.1운동’이라고 바꾸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왜 ‘3.1운동’이 아닌 ‘3.1혁명’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논거를 들어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저자의 제안을 기꺼이 수용해야 만 할 것이다. 1910년 일제에 의한 ‘국치 이래 희망을 잃고 노예처럼 살던 한민족은 3.1혁명을 계기로 근대적 민족의식에 눈뜨게 되고, 수많은 지사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국내에서 또는 망명지에서 독립운동 전선에 서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크게 ‘3.1혁명’의 진행 과정과 ‘임시정부’의 활약상에 대해서, 다양한 자료들을 제시하면서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조선 말기 무능한 정치인들에 의해 ‘나라가 망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그것은 결국 ‘무능한 왕, 친일 매국노와 일제의 합작품’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국권을 빼앗긴 이후 1914년에 발생했던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항복으로 끝나고, ‘러시아혁명’(1917)이 일어나면서 국제 정세는 크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아 국내에서도 손병희를 주축으로 한 천도교 중심의 독립운동에 대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33인에 의해 ‘독립선언문’이 발표되고, 이를 계기로 독립을 염원하는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진행되었다. 나아가 국외에서도 만세운동은 거세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3.1혁명은 민족해방을 목표로 계층, 신분, 성별, 지역, 종교를 초월하여 그야말로 범민족적으로 전개된 장엄한 반식민지 반봉건의 민족혁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제는 처음에 33인의 대표들에게 내란죄를 적용하여 가혹한 고문을 가했지만, 성난 민심을 두려워하여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내려애만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양한문과 박준승 등이 안타깝게도 옥사하거나 고문의 후유증으로 순국을 하였다. 또한 그들 중 일부는 후에 친일행위를 자행하면서 친일파로 변절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 제대로 친일에 대한 청산을 하지 못하고 친일파들이 득세하면서, 지금까지 일제 강점기 친일청산에 대한 과제가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있다고 하겠다.
저자는 3.1혁명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거론하면서, 그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여성들의 활동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그래서 조선시대까지의 우리 역사는 ‘돌이켜 보면 반만년의 가부장제의 남성중심 사회에서 사회 참여와 국권 회복 투쟁에 여성이 등장한 것은 3.1혁명이 계기가 되었다’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인도의 초대 수상이 되었던 네루는 조선에서 일어난 독립 투쟁 소식을 듣고, 자신의 딸에게 ‘바로 조선 소녀들을 본받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저자는 남성 위주로 기록되었던 그동안의 독립운동사에서 여성들은 생략되거나 보조 역할 정도로 그쳤던 사실에 주목하고, 이 책에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명단을 나열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3.1혁명의 가장 큰 성과로 바로 임시정부를 들고 있다. 권력자들이 망명하여 수립한 ‘망명정부’와는 달리, ‘임시정부’는 집권자들과는 상관없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해외에 세운 정부를 일컫는다. 따라서 임시정부 구성원들은 기존의 왕조가 아닌 민주공화제의 새나라를 건국할 것을 천명했던 것이다. 임시정부의 진행 과정을 읽으면서, 나는 미국에서 활동했던 이승만의 독단과 권력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그의 권력욕이 후에 대통령에서 하야하는 비극을 초래하였던 단초를 제공했던 것이라 하겠다. 임시정부의 활동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발생하면서 침체에 빠졌던 시기가 있었지만, 독립을 원하는 민족 구성원들의 염원을 바탕으로 ‘한인 애국단’과 ‘광복군’을 중심으로 대일 투쟁을 지속적으로 벌였다.
그러나 해방이 되면서 임시정부 요원들은 개인 자격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고, 이승만을 적극 후원했던 미군정에 의해 지속적으로 견제를 당해야 했다. 그리고 1948년 남쪽에 단독정부가 들어서고, 그 다음 해인 1949년 김구 주석이 친일.분단 세력에 의해 암살되면서 임시정부는 사실상 역할을 다했던 것이다. 저자는 3.1혁명과 임시정부의 진행 과정과 활약상을 서술하면서, 책의 말미에 일제에 의해 자행되었던 만행과 잔학상의 면모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내용들을 통해 ‘오늘의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승계함으로써 임시정부와 3.1혁명이 우리나라의 모태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3.1혁명 백주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서 당시의 상황을 분명히 알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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