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서해 최서북단의 섬인 백령도(동경 124°53' 북위 37°52')는 선사시대 부터 사람이 농경과 어로를 하며 살아왔다.
고구려 시대는 鵠島(곡도:따오기 섬)로 불러왔으며, 고구려가 패망후 신라시대는 한주 장구진으로 불리어왔다.
백령이라는 이름은 고려 태조때 해주 소속으로 백령진을 두고, 이후 왜구의 침탈이 심하여, 현종 9년(1018년) 진을 설치하여 진장을 두었다.
연안부두에서 173km 떨어진 멀고 먼 섬(평양-백령146km)백령 투어 길 나선 일행 28명은 인천시의 한 부분인 이 섬 방문이 새로운 느낌으로 흥분되어 있다.
다행히 초속 3m/s 잔잔한 파도 위를 미끄러 질듯 질주하는 공기부양 쾌속 여객선이 서해 다도로 구성된 섬 사이를 시속 68km 이상으로 항해하여 백령도를 향하고있다.
덕적도 해상 지나 망망 대해에 들어서니 심상치 않게 큰 파도가 배의 이물(선수)을 넘어 갑판과 객실 선수 큰 창문까지 포말을 뿌리고 있다.
백령도 서쪽으로 위치한 산둥반도 중국 본토까지 거리는 불과180km에 불과한 공해상을 질주 항해하는 선박에 몸을 태우고 잠시 백령면의 근대 역사를 더듬어 본다.
백령. 영흥. 북도. 덕적. 연평. 자월. 대청 7개면은 경기도로 부터 1995년도 인천시 옹진군으로 편입되었다.
광복당시 황해 3도서인 송화군 풍해면 초도. 옹진군 흥미면 순위도. 장연군 백령면 백령도 중 38°선 이남에 위치한 유일한 백령면 이였기에 미군정 임시 조치로 황해도 옹진군으로 편재되었다.
6.25휴전 후 초도 와 석도 또한 아군 주둔지였으나,
주둔 비용등이 문제되어 이 두 섬을 포기하여 현재는 북한 땅으로 되어있다.
한때 대청도와 소청도는 백령면으로 행정구역 편재되어 있었으나, 대청면(소청도 포함)으로 분면되며, 현재는 진촌1~7리. 가을1~3리. 연화1~3리. 남포1~2리. 북포 1~3리의 행정편재로 면적 46.3km°. 해안선 길이 52.4km. 인천에서 서북쪽 191.4km 떨어진 섬으로 독도 다음 먼 거리의 8번째의 큰 섬으로 인구는 5천명이 상주하고있다.
더 흥미로운 사항은 우리의 고전 설화인 심청전이 백령도와 북한 땅인 장산곶 사이(14km) 해역인 인당수를 배경으로 구성되어 백령 진촌에 심청각이 건립되고, 그 누각에서 멀리 북녘과 인당수를 시원하게 관망 할 수 있다.
관광지는 1997.12.30 명승지 제8호로 지정된 두무진, 천연기념물 391호인 사곳사빈, 천연기념물 392호 남포리 콩돌해안 외로 인천아시안게임 때 마스코트인 천연기념물 331호 점박이 물범, 천연기념물 393호 진촌 현무암. 1898년 건축된 국내 두번째 긴 역사를 지닌 중화동장로교회, 천안함 순국 위로탑. 하늬해변등을 추천 할 수 있으며, 이 섬에서 생산되는 자급자족 되고 있는 농산물은 쌀. 콩. 보리. 고구마등이 있으며, 까라리. 멸치. 미역등 해산물이 풍부한 섬이다.
특히 규조껍질인 규조토로 구성된 사곶사빈은 그 토질이 단단하여 썰물로 물빠진 해변위를 차량은 물론 비행기 이착륙시 바퀴가 모래에 빠지질 않는 특이한 토질로 천연비행장이라 불리고있다.
고구마는 흰색깔을 띠우고 있으며, 그 맛이 달고 쫄깃한 식감으로 수확전 미리 주문하지 않으면 구입하기 어려워, 한번 먹어 보았던 그 맛을 수년이 지난 지금도 못잊고있다.
점박이 물범은 늘 관측되는 것이 아님을 유의 할 필요성이 있다. 11월되면 중국 라오둥만으로 이동하여 새끼를 낳아 기르고, 2~3월 다시 회귀하기 때문에 한 겨울에는 볼수가 없으며, 백령도의 평균 기온은 11.5°C로 육지보다 많이 높은 편이지만, 봄 날씨가 늦게까지 춥고 바람이 강하며, 옆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안개가 덮히는 때가 있다 . 또한 100m 내외의 낮은 지형 탓으로 강수량이 매우 적은편이다.
규조토로 구성된 3km 길이의 사곶사변을 걷고, 두문진 기암석을 돌아본 후 유람선에 승선하여 점박이 물범의 생태 현장을 돌아 보는 사이 해는 뉘엿뉘엿 서쪽 수평선 올려져 오늘의 여행에서 가장 멋진 풍경에 감탄한다.
아름다운 이강산에서 새로운 분위기의 신비로운 자연의 구조에 감동하며, 땅거미져 가는 해안 도로 따라 분단의 아픔을 실감하는 철조망을 스쳐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