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솔릭이 오고 있습니다.
바닷가에 가지 마시고.
산에 등산가지 마시고.
조심하세요~~~
행안부 아래 문자 받으셨지요?
[행정안전부]
태풍 내습시 하천, 해안가 등
위험지역 접근금지,
논밭 관리 행위 자제,
낙하물 주의 등 안전에 유의바랍니다.
태풍하면 저희 어머니 항상 이야기하시는
태풍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때부터 자주 이야기하셔서
(태풍때마다 이야기를)
지금은 없는 계몽사 출판 한국사이야기
한국사연표에서 사라호 태풍이
1959년에 할퀴었구나 제가 찾아보고
알 정도였죠.
제가 역사 연도를 좀 꼬장꼬장하게
외우듯이 아는 이유가 어머니께서
옛날 이야기하시면 대충 그 시절로
이야기하시고.
민감한 정치 이야기는
"나는 모른다"해버리셔서
(예 :앞서 이야기한 백두산 호랑이 김종원)
나중에 제가 찾아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서
입니다.
어머니는 연도로 이야기 안하시고
두리뭉실하게 이야기하셔서
이승만때 .
어머니 처녀시절에.
아주 무시무시한 태풍이 지나갔다고.
그 태풍 이름이 제가 듣기에는
아이러니하게 너무 아름다웠던
"사라"였죠.
우선 사라가 뭔지 알려드리고
어머니가 진절머리치는 사라호 일화
이야기는 끝부분에 해드리죠.
■태풍 사라
1904년부터 시작된
한반도의 기상관측사상
최악의 태풍 중 하나로
손꼽히는 태풍.
1959년 제14호 태풍으로,
1959년 9월 15일 발생,
9월 17일 한반도 관통.
아직도 어르신들,
특히 경상도나 제주도 지역
어르신들에게는 역대 최악의
태풍으로 기억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9월17일은 1959년 추석이어서
일기예보같은 것도 없던 시절에
아무 것도 모르고 차례지내다가
휩쓸려버린 집도 많다고 한다.
한국에 큰 피해를 준 태풍중엔
9월에 찾아온 것들이 많다.
차례상이고 뭐고 내버려두고
허겁지겁 도망쳐서] 집이 휩쓸리고
마을이 무너져 버린 후에야
태풍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경상도 지방의 어르신들에게는
큰 트라우마로 남아서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표현으로
"사라 호"라고 하면
어제일 처럼 생생하게
기억들을 하고 계신다.
당시 최대 풍속
초속 85m,
평균 풍속 초속 45m,
최저기압905 hPa(헥토파스칼)
(한국 도달 시 최저기압 951.5hPa)
이라는 무시무시한 위력으로
한반도 남부를 휩쓸고 지나갔다.
특히 저 엄청난 최저기압
기록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태풍 중으로
한정한다면, 현재까지 깨지지 않았다.
그 위력답게 어마어마한
피해를 남기고 갔다.
전국에 사망 849명,
부상 2,533명,
실종 206명으로
총 373,459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또한 선박 11,704척과
피해 주택 1만여 동,
침수 농경지 20만여ha
(헥타르)등의
피해를 입었고,
도로 10,226개소,
제방 1,618개소,
축대 152개소,
교량 2개소가
유실되거나 파손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생긴 재산
피해는 당시 화폐 단위로
약 1,662억원
(4천 5백만 달러)이라고
하며,
2006년 가치로는
2,800억여 원이다.
또한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 중 전반적인 강도로 치면
사라가 역대 최강에 꼽히며
덕분에 옆동네인 일본도
굉장한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 기록에서도
최저기압으로 2위를
기록하였다 하며
당시 99명 사망,
부상자 509명의 피해를 입었다.
특히 오키나와 미야코섬의 피해가
막심하여 일본에서는
미야코 섬 태풍(宮古島台風)
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당시 미야코 섬의
최저해면기압은 908.1hPa였다 .
사라는 1950년대 말 이미
미국의 원조가 줄어들면서
어려움을 겪던 한국 경제에
결정타를 날려 버린
태풍이기도 하다.
직접 태풍을 맞았던 곳중 대구와 마산.
4.19혁명에 앞서서 가담한 점,
4.19 혁명 직후 1960년 장면
국무총리의 시정 수습안에도
태풍으로 인한 경제 침체에
대한 대안이 언급되었음을
생각해보면
한국 현대사에도 영향을
미친 태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동영상대한뉴스 제 236호-활발한 수재민 구호 활동태풍피해를 입은 수재민들을 위한 전국적인 모금운동. -9월 태풍 사라호로 피해를 입은 영남지방 주민들 복구작업. -돌로 제방을 쌓는 작업 모습. -대한 반공 예술인들의 서울시내 개봉극장에서 수재민 구호 의연금 모금운동 전개 (김진규). -전국 씨름대회에서 우승한 김용주 장사는 상으...www.youtube.com
△ 사라호 피해 이후 구재활동을 담은 대한뉴스.
사실 21세기에 일어난 태풍의 피해를 치면
태풍 루사.태풍 매미가 재산피해가 크죠.
그러나 매미때는 한국이 어느 정도 살때이고.
태풍 사라는 우리가 북한보다도 못살고
필리핀보다도 못살때(오히려 이때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살던때이죠.마르코스가 필리핀을
거지국가처럼 만들었지만. .)덮쳤습니다.
일제의 한반도 식민 통치시대때
태풍 2353호
태풍3693호때
사망자가 제일 많았지만.
해방이후 사망.실종자 숫자는 사라호 태풍
기록이 아직까지 제일 큽니다.
(절대 태풍 피해 사망이 없어야겠죠.
이번 태풍도 실종자가 나오고 있는데 ㅠㅠ
이번 태풍은 제발 사망자 없었으면 합니다)
어머니 일화로 이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제가 역대 최악 여름이라 하면
여기 카페에서 자주 1994년(더구나 냉방은
꿈인 군대시절이니)이야기하였다가~~
올해 2018년 여름에 드디어 자리를
내주기로 (그래도 에어컨이 있었으니
그점만은 94년보다 나았죠.
94년에는 저희집에 에어컨이 없었습니다)
주로 1994년 여름이야기하다가
2018년 여름에 최악여름
드디어 내주었지만.
아무튼 저에게 1994년
여름이 뇌리에 박혀있둣이.
어머니에게는 사라호가
뇌리에 박힌 태풍 그자체이죠.
잘살던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1951년경인가 돌아가셔서 외할아버님
모습을 모릅니다. 어머니가 사진도 잘
보관 안해서. .어머니 묘사에 따르면
지금은 고인이 된 탤런트 전운씨 비슷한
풍채라고 하시네요.)
외숙부가 (이 외숙부는 앞서 이야기한
백두산 호랑이 김종원 처제를 부산여고에서
가르쳤던)정치한다고 돈을 정치에 들여 당시
영주동에서 살았죠.
(나중에 4.19 이후 민주당
경상남도 도의원이
되지만 몇개월후
5.16쿠데타로 그 도의원도
날아가죠.박정희가 다 해산시켰으니.)
1980년대와 지금은 나아졌으나 당시
부산 영주동은 판자촌이나 마찬가지이죠.
더구나 당시 대한민국도
찢어지게 가난하던
이승만 자유당 정권시절이니.
그런데 태풍 사라가 덮쳐서
집이 날라간겁니다.
어머니 집인지 . 옆에 언니(지금은
돌아가신 이모님 중 한분)집인지. .
"태풍이 지나가니
집이 날라갔어"(어머니 표현)
오즈의 마법사에 집 날라가둣이
날라갔다는겁니다.
당시 부산.경남지역 초토화에
어머니도 당하신거죠.
그래서 어머니는 오늘도
솔릭을 보고 사라를 이야기하십니다.
태풍에 피해 없도록 조심하세요~~~
첫댓글 저는 태풍 매미가 참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당시 만나고있던 여자친구는 본가가 부산이었는데 마침 추석이니 부산에 가 있었습니다.
저는 인천에 살고 있었구요.
뉴스에서 태풍 매미가 와서 난리다 몇번 해주더니 추석특선영화 스파이더맨을 해주더라구요
저는 신나게 스파이더맨을 보고 있었는데 여자친구가 무섭다고 전화도 하고 문자도 보내고..
저는 아무 걱정도 없이 '집안에 있으면 괜찮아.' '뭘 그리 겁내니.' 대강 문자 보내고 통화 마무리 하고 말았죠
여자친구 많이 화내더라구요.
전 그냥 '아니 뭘 그렇게 까지 화낼일인가' 했는데 나중에 매미 피해상황 보고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습니다 ㅋㅋ
태풍 매미가 악명 높았죠.
이번태풍이 사라같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무섭......
제발 피해없기를 그렇게 바라고 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루사... 가 기억이 좀 남아요. 사실 경험한건 아니고
루사가 덥쳤을때 홍콩에 휴가가 있었거든요.
태풍 오기전에 홍콩으로 떴다가 지나가고 난 이후에 돌아왔거든요.
전 경험하지 못했지만 홍콩서 지인들에게 전화하면 다들 루사 루사 루사 이야기를 해서 머릿속에 많이 남게 됐다는
우리나라도 태풍 루사가 피해액 규모로는 제일 컸죠.
저는 직접 경험한적이 거의 없어 무감각한데...
그저 별일없이 이번 태풍도 지나가길....ㅠㅠ
저는 태풍 셀마요. 중3때 휩쓸었는데
당시 고속터미널도 물에 일부 침수되는등 피해가 컸어요.
저도 셀마 태풍때가 제일 끔찍했던 경험으로 남아있네요.
우리나라 기상청의 흑역사로도 남아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