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평소에
내 앞에 온 인연이 해주는 말을 잘 들어놓는 일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젊은이가 잘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오늘 차를 타고 출장을 가야 하는데
아침부터 술을 마신 저 젊은이가 미운것이다.
상대 때문에 일이 틀어졌다면,
나도 모르게 속에 있던 감정이 말로 나올 수 있다.
“저놈은 항상 저렇다.”
상대의 잘못을 바라보면서 내 감정까지 함께 드러나는 것이다.
욕심이 없다면
상대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마음에 걸림이 없다.
평소 상대의 말을 잘 들어두었다가
적절한 때에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 공부다.
상대가 무안하지 않도록 말을 건네면,
상대도 “아, 나는 몰랐습니다.
나에게 그런 모순이 있는지 이제 알았습니다.
한번 고쳐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의 습관을 돌아보고 노력한다면,
다음에 오늘과 같은 일이
다른 조건과 환경에서 일어날 때는
상대에게 내놓는 말부터 달라질 것이다.
누구나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습관과 버릇이 형성된다.
그것이 오래되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모르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누군가 내 모순을 알아도
평소 내 성격 때문에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한마디 잘못했다가
큰 다툼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소에 공부하라는 것은
누군가 나에게 이런 점을 한번 돌아보라고 말을 해준다면,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두라는 뜻이다.
내 이웃이 해주는 말을 듣지 않으면
더 멀리 가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무당을 찾아가고,
절이나 교회에 가서 말을 듣기도 한다.
그래도 자신의 모순을 풀지 못하면
스스로 돈을 들여 병원을 찾아가
의사의 말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왜 이렇게 점점 더 먼 곳을 찾아가야 하는 것일까?
공부는 오늘 내 앞에 온 인연이
해주는 말을 잘 들어주는 일이다.
가까이 있는 인연의 말을 듣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다음 것이 풀리기 때문이다.
내 앞에 온 인연이 나에게 무엇을 돌아보라고 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생활 속의 공부다.
내가 한번 안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그보다 더 강한 고집을 가진 인연이 다가와
내 고집을 꺾게 하는 일도 생긴다.
이것 또한 자연이 나를 공부시키는 과정이다.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고집을 부리면
스스로 육신에 아픔을 겪으며
병원을 찾아가 상담을 받게 되기도 한다.
부드러우면 보이고
강하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환경을
내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사고 또한 내가 만들어놓은 환경 속으로
상대를 끌어들이면서 일어날 수 있다.
평소 주변 인연들과 잘 소통하며 살아간다면
아픔을 겪는 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인연은
오늘 누구와 어떤 말을 주고받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호롱불은 스스로 밝히면서 주변을 이롭게 한다.
사람도 자신을 밝히는 공부를 하면서
주변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법칙이라도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풀어보고
이해해야 비로소 내 공부가 된다.
그러니 오늘 내 앞에 온 인연의 말을 귀담아듣고,
그 속에서 나를 돌아보자.
오늘의 말을 잘 들어야
다음의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평소에 생활속에서 일어나는
환경 공부이기 때문이다.
함께 연구해 보아야 한다.
2026년 10월 11일사회연구원 김수길
저 명동 거리에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도
아무도 관심이 없다
평소 노력한 인연들만 다가와서 말을 건낸다.
말을 주고받는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혼자남을때 꺠우침으로 다가온다.
정법강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