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0년에 완성된 일본의 고대 역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서기 110년 기록에 마늘 관련 기사가 등장하는데, 마늘이 귀신을 몰아내고 요사스런 기운을 쫓아냈다고 한다. 이 기록의 연대는 신뢰할 수는 없지만, 마늘이 삼국시대에 한반도를 거쳐 일본 열도에도 전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삼국사기] 〈제사지(祭祀志)>에는 신라에서는 매년 입추(立秋) 후 해일(亥日)에 산원(蒜園)에서 후농제(後農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 산원은 야생 달래보다는 마늘을 재배하는 밭일 가능성이 크다.
마늘이 내는 강한 향기는 악귀나 액을 쫓는 힘을 갖고 있다고 여겨져, 복숭아, 고춧가루와 함께 제사 음식에는 쓰지 않는다. 또한 마늘은 수련을 방해하는 음식인 오신채(五辛菜- 마늘, 파, 부추, 달래, 생강)의 대표적인 식품으로 여겨져 불가(佛家)에서 금하는 식품이다. 하지만 달래보다 강한 맛을 내는 마늘은 비린내를 없애고 음식의 맛을 좋게 하며 식욕 증진 효과가 높기 때문에, 삼국시대 이후 우리나라 음식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향신료로 자리 잡았다.
오래 전부터 먹었던 향신료

1236년에 편찬된 의학서인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의 부록인 <방중향약목초부(方中鄕藥目草部)>에는180여종의 약재가 적혀 있다. 이 가운데에는 마늘(大蒜), 부추(菲), 염부추(薤), 파(葱), 겨자(芥子), 생강(生薑), 천초(川椒) 등의 향신료도 약재로 포함되어 있다. 향신료를 뜻하는 영어 스파이스(spice)는 라틴어로 ‘약품’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향신료는 약재로도 여겨졌던 것이다.
생강은 혈액순환 촉진, 소화불량 등에 효과 있는 약용 식물로 기록되어 있는데, 본래 인도가 원산지로 약 2,500년 전에 중국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사(高麗史)] 〈병지(兵志)>에는 1018년 현종(顯宗, 재위: 1010~1031) 9년 이후부터 북쪽 변방에서 싸우다 죽은 군사들의 부모와 처자(妻子)에게 차와 생강, 옷감(布物)을 차등 있게 나눠주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나라에서 생강을 나눠 준 것은, 생강이 활발히 소비된 물건으로 교환가치가 큰 것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또한 국가에서도 대량으로 생강을 보관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생강의 전래 시점도 1018년보다 훨씬 앞선 통일신라나 삼국시대로 올려 볼 수가 있겠다. 우리 조상들은 생강을 음식에 넣기도 했지만, 생강차, 생강주 등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겨자는 중앙아시아가 원산지로 삼국 또는 그 이전부터 겨자가루, 겨자유 등으로 사용하여왔다. 부추, 염부추, 파 등은 중국과 서역이 원산지로 기원전 시기부터 소비되었던 향신료인 만큼, 일찍부터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계수나무의 껍질인 계피는 청량감과 단맛이 있어 수정과, 떡 등 다양한 요리에 사용되었으며 매우 오래 전부터 소비된 향신료다.
설탕은 인도가 원산지로, 중국에서는 7세기에 인도로부터 설탕 제조법을 배워 상품으로 거래를 했었다. 일본의 경우 754년에 당나라 승려가 처음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따라서 일본에 전해지기 전 통일신라 사람들도 당나라에서 설탕을 수입해 맛보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려는 송(宋), 원(元)에서 설탕을 수입해 사용했고, 고려 말기에는 백설기에 설탕을 넣어야 제 맛이라고 여길 정도로 소비되곤 했으나, 여전히 무척 귀한 식품이었다. 설탕을 우리나라 서민들이 맛보게 된 것은, 20세기 초 일제 강점기에 타이완에서 재배된 설탕을 배급받은 것이 시작이다. 설탕은 1950년대까지도 귀한 식품이었다.
수입된 향신료- 정향과 육두구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향신료는 후추, 시나몬(Cinnamon- 육계나무의 껍질), 정향(丁香, Clove), 육두구(肉荳蔲, Nutmeg)등을 들 수 있다. 자메이카 원산으로 육두구, 정향, 시나몬(계피) 3가지 맛을 겸비한 올스파이스(Allspice)는 비교적 새로운 향료로 최근에야 우리나라에 알려졌고, 이란이 주생산지로 유럽에 널리 알려진 사프란(Safran)도 우리 나라에 소개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또 지중해가 원산지인 월계수 잎은 최근에야 파스타 등의 소비가 늘면서 수입이 늘어나고 있는 향신료다. 하지만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인 정향과 육두구는 조선시대 초에 이미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정향은 고기의 누린내를 없애주고 방부효과가 탁월한 향신료이며, 육두구는 강장제 등의 약제로도 사용하는 한편 생선요리 등에 소스로 사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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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추의 이용 이유 중 하나에 소금 사용량 감소 목적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방송편명이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떤 방송에서 아마... 김치 관련 특집이었던 것 같은데 일본의 한 실험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는데 캡사이신(고추의 매운 맛 성분)이 들어있는 소금물의 경우 소금 농도가 낮아도 짜다고 느끼는 것이 그 내용이었습니다. 즉, 캡사이신이 들어가면 더 적은 소금량만으로도 소비자의 짠맛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이므로 음식에 고추를 넣으면 소금을 더 적게 넣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요컨대 고추가 소금의 대체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조선 후기 소금값의 폭등 가능성입니다. 조선 시대의 소금 생산방식이라는 것이 자연 건조방식에 솥에 끓이는 것을 가미한 자염이 많았기 때문에 대체로 값이 비싼 편이었고 이 자체만으로도 고추를 소금의 대체재로 사용할 이유는 되긴 하겠지만....조선 후기가 되면 <소빙하기> 가 닥칩니다. 소빙하기에 일조량이 감소하고 날이 상대적으로 추워졌으니 소금 생산에 나쁜 기후조건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이 무렵이 대체로 김치에 고추를 널리 쓰기 시작한 무렵과도 겹치니 고추가 들어있는 김치의 발전에 소빙하기가 한 몫 담당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을까요?
오! 정말 탁월한 지적입니다. 경청하고, 더 연구하겠습니다
흠~그렇게도 볼 수 있겠습니다. 호오~~저도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