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에 60만 원”.. 뛰어다니는 암표상들
지난 23일 아이유 콘서트에서 진행요원들이 티켓 구매자들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하는 모습이다
“콘서트 보고 싶으면 말해요. 표 있으니깐”
공연이 몰린 연말을 앞두고 불법 암표 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가수 아이유의 서울 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콘서트는 티켓 오픈 1분 만에 약 2만8000석이 초고속 매진될 정도로 큰 인기를 자랑했다. 그러나 매진이라는 말이 무섭게 현장에선 암표상들이 표를 팔고 있었다. 경기장 주변에 “암표를 팔지 말라”는 현수막이 무색할 정도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기자에게도 조용히 다가와 암표를 들이대자 가격을 물었더니 20만 원이라고 속삭였다. 아이유 콘서트의 경우 제일 비싼 R 좌석의 가격은 약 12만 원. 콘서트 시간이 임박했음에도 거의 2배에 가까운 가격에 팔고 있었다. 이후에도 암표상들은 계속 콘서트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암표를 판매하는 모습이었다.
암표 구매를 권유받은 김모씨(25·대학생)는 “미리 표를 구매해서 암표를 사지 않았다. 평소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를 자주 가는 편인데 갈 때마다 암표상들은 항상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경고 문구만 있을 뿐 실질적인 조치는 없는 것 같아 아쉽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콘서트가 시작하는 30분 전에도 암표상들을 단속하는 경찰은 보이지 않았고, 올림픽 공원을 관리하는 경비실조차 불만 켜있을 뿐 관리자는 없었다.
공연 관계자는 “부정 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공연장 입구 현장에서 진행요원들이 신분증과 입장권의 이름을 대조하고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이런 절차는 사람들에게 많은 불편과 비효율성을 초래하지만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부정 거래를 원천 봉쇄할 방법은 이것 밖에 없다”라고 한탄했다.
콘서트 주변 암표를 판매·구매하지 말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콘서트 시작 30분 전인데도 불구하고 주변을 관리하는 경비실에 사람이 없다.
△온라인 부정거래는 법 자체가 없어
암표상들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불법 행위 및 티켓 값을 뻥튀기해 판매하고 있다
불법 암표 거래는 현장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심하게 이뤄지고 있다. 중고거래 인터넷 사이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트위터 등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티켓을 수십 배가 넘는 가격으로 버젓이 되팔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온라인 개인 간 거래·기타항목 사기 건은 2014년 5만3천295건에서 지난해 10만1천606건으로 약 2배 이상 부쩍 늘어났다. 지난 9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김수민 국회의원이 온라인 암표 거래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방탄소년단 콘서트 티켓이 정가의 63배로 판매되는 등 유명 가수들의 콘서트 암표가 많게는 수십 배의 웃돈을 붙여 유통된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암표상들은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단순 반복적 작업을 자동으로 프로그램화해 처리하는 소프트웨어의 일종)을 이용해 구하기 어려운 표를 대량으로 사들이고 가격을 뻥튀기했다. 매크로 알고리즘만 짤 수 있다면 미성년자도 언제든지 암표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온라인 암표상이 늘어날수록 티켓 예매 경쟁은 치열해지는데 이는 티켓의 희소성이 높아지고 재판매하는 악순환의 반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들이 활개를 칠 수 있는 이유로 법의 규제가 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범죄 처벌법 제3조 2항 4호에 따르면 경기장·공연장 등 현장에서 암표 판매 적발 시 2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한다. 다만 이 조항은 현장에서 거래한 경우만 처벌 대상으로 삼아 온라인을 통해 거래한 경우는 처벌할 수도 없다. 또한 이익과 비교해 처벌 수위가 약하기 때문에 '한 번 걸려도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하기에 십상이다.
입장권 판매 측은 “소비자들은 공연 티켓을 현장보다 온라인에서 많이들 구매하고 부정행위도 더 많다. 그러나 아직 법 자체가 없는 게 의아하다”며 “올바른 공연 문화를 위해서라도 꼭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올라와 있는 나훈아 콘서트 티켓 가격. 원가에 3~4배가 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지난 9월 바른미래당 김수민 국회의원이 온라인 암표 거래 현황을 분석한 통계 자료
△소속사·가수·팬들이 암표 근절위해 노력하기도
아이유의 소속사 '카카오엠'에서 공지한 콘서트 암표 관련 경고문
지난 10월 가수 김동률의 소속사 뮤직팜은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부정 거래 제보를 통해 부정 티켓 거래에 대해 엄격히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뮤직팜은 가장 많은 부정거래가 발생하는 별도 좌석 티켓을 사전배송하지 않고 공연 당일 예매자 본인 확인 후 입장을 하는 등으로 암표 근절을 위한 조치도 취했다.
나훈아 또한 콘서트 부정 티켓에 대해 '불법 거래 예매표는 즉각 취소해달라'는 초강수를 두었고, 아이유의 경우 팬카페를 통해 직접 ‘콘서트 암표를 잡으러 갑니다!’ 라는 내용의 글을 게시하며 암표 단속에 힘쓰며 부정 티켓을 판매한 팬클럽 회원을 영구제명했다.
건전한 티켓문화 정착을 위해 팬들이 직접 나선 경우도 있었다. 일부 팬들은 SNS를 통해 암표 수법과 신고, 방법 등을 공유했다. 이들은 암표 판매 게시글과 판매자와의 대화 내용을 캡처한 뒤 예매번호·좌석번호·판매자 이름·계좌번호 등을 티켓 판매처나 공연 주최 측에 전달하는 등 암표 근절에 힘썼다.
한 팬(27)은 “부정 암표 거래를 완벽 차단이 어려운 만큼 부정거래 및 피해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암표를 구매하지 않는 공연문화를 확립하는 것”이라며 “암표를 사지 않고 지정된 공식 예매처를 통해 티켓을 올바르게 구매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분별한 암표 거래 뿌리 뽑아야
그렇다면 암표상들에 대해 해외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미국, 영국 등 공연 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더욱 더 강경하게 규제하고 있다.
미국 뉴욕주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티켓을 구매·재판매했을 때 예술문화법에 따라 500달러 이상 1천500달러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판매 수익금을 몰수한다. 불법으로 취득한 티켓을 거래할 경우도 연방거래위원회(FTC: Federal Trade Commission)의 제재 대상이 돼 암표상에게 민사소송을 걸 수 있다. 영국의 경우 협약 맺은 업체가 아닌 다른 리셀 사이트에서 티켓을 재구매는 불법이다.
매년 끊임없이 온라인 암표거래가 기승을 부리자 지난 1월 문화체육관광부는 경찰·티켓 예매처·공연 기획사 등 기관과 ‘온라인 암표매매 대응 합동 회의’를 가졌다. 온라인 암표 근절을 위해 현행 공연법을 개정해 별도 처벌 조항을 마련하자는 원칙을 만들었으나 아직 구체 방안 마련에 별 진전이 없는 상태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울산 북구,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은 문체부에서 ‘암표 거래 현황’ 데이터조차 없다면서 자체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하기보다 수동적 업무 행태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난 21일에는 이찬열 바른미래당 의원(수원 장안, 국회 교육위원장)이 얼마 전 인기 아이돌그룹의 공연 표를 암표상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려 ID 2000여 개를 사들이고 10배 넘는 값에 표를 판매한 내용을 언급하며 온라인 부정거래 적발 시 1천만 원 벌금에 처하는 법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과연 불법 암표거래 행위를 막는 충분한 제도가 갖춰져 올바른 공연 문화와 함께 성숙한 시민의식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글·사진=박현준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