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다. 거기에 비 소식이 있다. 그럼에도 세탁기를 돌리는 심사는 뭘까. 밖에 햇볕이 보여서? 예보보다는 내 판단을 더 믿어서? 그건 아니다. 비 소식은 지금 당장이 아니니까, 그사이 빨래는 충분히 마를태니까, 그래서 세탁기를 돌릴 생각을 한것이지, 절대로 무모하진 않는다. 인생도 그럴까. 인생에도 예보가 분명히 있다. 더구나 요즈음 세상엔 자동차마다 불렉박스란게 있고, CCTV가 곳곳에 있다. 우주에세는 위성이 거이 실시간으로 우리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안전한 것도 아니다. 부질없는 모험을 감행하는 인간들도 꼭 있게 마련이다. 그 돌출자들은 때론 천재일수도 있고, 모험가 탐험가 일수도 있지만, 대게는 범죄자들이다. 안그런가. ㅎㅎㅎ. 게으른 사람들은 범죄자가 되기도 쉽지는 않다. 사실 게으른 사람들이 할수있는 일은 없는듯 싶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또 하루가 시작되었음에 감사한다. 내 인생에서 하루가 줄어들었음에도 감사한다. 그런데, 정말로 이 하루를 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생계비에 연연하지 않아서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것은 확실하다. 종일 빈둥대는 일상이 싫은것도 아니다. 이게 내가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준비한 것이라면 즐길 여유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게 아니지 않는가. 내게 생활비를 주기위해서 아들딸이 쌩힘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래서 조급하게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다. 백세시대라고 한다. 건강하게 내 힘으로 가는 길이라면 얼마가 되던 신경쓸일은 아니지 않는가. 되어지는대로 살면 그만이다. 그런데 지금 내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폐가 되고 있다는 것은 참 그렇다. 그래도 지금은 두발로 걷고, 숨을 쉬고 있으니 다행이다. 내가 나를 컨트롤 할수없게되는 날이 될까봐 두렵다. 걸리적거리며 살게되더라도 어쩌겠는가. 전적으로 그분만을 의뢰할뿐아닌가. 행복했던 기억은 없다. 나름 금수저였다는 연화리에서 조차, 늘 우울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살았다. 결혼기간은 그냥 나락이었고 희망한조각마저 없었다. 남편이 간지도 20년이 훌쩍 넘어서 24년을 지났다. 그럼 그동안은 좋았나. 10년 넘께는 여전히 생존하기 바빴고, 손주가 태어나면서 내 일상이 전환 되었다. 나는 생계비 타령은 더이상 안해도 되었고, 아들 딸에게 떠 넘기고 손주 돌봄에 집중했다. 행복 시작인가. 그랬다. 이세상에 나만 손주를 본듯, 감사했고,즐거워 했다. 아들손주 둘을 유모차에 싣고 다니면서 어깨가 으쓱 으쓱하지 않았을까. 큰손주를 사림초등학교에 보내면서는 내 허영심도 어느정도 충족시켰는지 모르겠다. 또다른 불만은 어디서 부터 생겨났을까. 며늘이 자기일을 하면서 부턴가. 며늘의 시간이 많아지는게 눈에 보이면서 였을게다. 며늘은 시간을 아이들에게나 가사에 쏟지 않았다. 아이들을 방치하고 가사에 신경 안쓰는게 역역하게 되면서 내 분노치수가 높아지고 있었다. 며늘이 좀더 잘했으면 내가 발붙일 곳이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건 아니지 했다. 그렇게 진이 빠지게 된것이다. 손주들, 당연히 예쁘다. 말을 안듣고, 스마트폰에 빠저있고, 할머니 안중에 없어해도, 예쁘다. 그럼 된것 아닌가. 뭘 더 바래? 여기까지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