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화 그루에서 자그만치 열송이가 넘은 봉숭화가 피고지고를 마쳤다. 이젠 자르거나 뽑아내야 할까. 말라 비틀어질때 까지 기다려줘야 할까. 뭐가 더 나은지 모르겠다. 내가 여전히 살고 있다면 내년에도 화분은 지속해서 있겠고, 빈약하게나마 또 꽃을 피우기도 하겠지만 그건 모를일이다. 지난핸가, 어느 찬양 사역자가 세상을 떠났다. 50을 좀 넘겼나 싶은 젊은 나이였다. 오랜 질병이 있었다니까 언제든 죽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겠지만, 참 안됐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 시청앞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9명이 한꺼번에 죽는 것을 보면서 뭐가 더 나은지를 생각해 보았다. 언제든 죽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꼭 절망적인 것일까.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엄을 준비하며 산다는 것도 나쁜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하긴 젊으나 젊은 사람은 아닐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내일이 있음을 꿈에도 의심 안하고, 내일이 영원할것 같았던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닦친 죽엄은 어떨까. 돌진하는 차를 보기는 했을까. 한눈을 팔았다면 차를 보지도 못했을 수도 있고, 굉음도 깨닫지 못했을수도 있다. 어쩌면 그냥 벼란간 덥친 죽엄이었을수도 있는데,,, 억울할까, 아님 어쩌고 저쩌고 할 경황도 없이 저쪽 세상에 와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을까. 고통없이 갔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사실 지금 나는 죽엄을 기다리며 살고있다. 오늘밤에 죽엄이 찾아온다고 해서 나쁠것도 없다. 유애기간이 너무 길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손을 들라고 누군가가 요구한다면, 저요저요 할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나는 지금의 일상이 아주 좋다! 빈둥대고, 소설책을 읽고, 성경도 읽고, 유튜브도 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계비 걱정을 안하고 사는게 좋다. 육아 돌봄이 내 일이었지만 애들이 자라서 손갈일이 없어지면서 내 시간이 널널하다. 애들한테 끊임없이 잔소리를 할수있는 것도 좋다. 말을 안듣고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지만 흐멀거리며 웃는것도 예쁘다. 지들 인생은 지들거고, 내가 염려한다고 해서 좋아지거나 나빠지거나 할것도 없다. 옛날엔 야단치는게 당연했고, 매를 드는일도 흔한 일이었지만 요즈음엔 걸핏하면 아동학대란다. 학교에서도 체벌은 범죄가 된단다. 솔직히 말해서 자기 감정에 못이겨서 매를 드는 순간도 있었다. 때리다보면 격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야단치지 않고 방임한다는 것도 있어서는 안될 것 같은데, 다들 소신인지 고집인지 편견인지 잘 모르겠다. 새로운 교육관, 세계관이라고 넘어가는게 좋겠다. 잘난 사람들이 많은데 설마하니 멸망이야 하겠어. 괴물들을 양육해서 결국엔 지들이 당하겠지. 그때쯤엔 우린 다 떠나고 없을태니 지들 몫이겠지, 어쩌겠어. 사는게 힘들고 어렵다는 것만은 모두 같나보다. 아들 심장병이 좀 좋아졌다고 한다. 약도 줄었단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나는, 코로나 예방접종 부작용이라고 탓했지만, 아들 나이도 어느듯 여기저기 병이 생길만 하게 된것도 사실이다. 형편없는 부모를 만난탓에 무거운 짐을 지고 홀로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협력자 일줄 알았던 배우자도 사실은 협력자가 아니었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삶의 무개가 이리 무거운데, 하고싶은일, 좋아하는일에 팔려있다. 꼭 해야할일, 반듯이 필요한 일을 먼저해야 한다는 기본도 외면하면서 까지 하려는 일이 뭔지 모르겠다. 내 입장에서는 참 야속하다. 아들이 너무 힘들고 안타깝다. 한대 쥐어박고 싶다. 그럴 능력이 안되어서 그렇지 아마 능력이 됐다면 벌써 그렇게 했을게다. 큰아이 여름 수련회는 더이상 설득이 불가한 것 같다. 지가 싫다면 그만이지, 돈 굳었다. 75천원이란다. 거금이다. 2박 3일이니까 그정도는 돠야 하는지는 모르겟지만 교회 아닌가. 내게만 거금이지 다른 사람 입장은 모르겠지만,,, 그렇다. 돈이 없는 사람은 얘기 하라는 공고문도 있기는 했다. 그렇다고 그걸 말할 친구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작은 아이도 참가비가 3만원이라고 했다. 이런 경비를 교회가 부담할수는 없는 것일까. 그 많은 헌금은 그런데 지출하면 안돼는 것일까. 웃는 얼굴로 아이들 돈까지, 아니다. 노인들 냄새나는 돈까지 긁어내는 듯 해서 씁쓸하다. 손주들 수련회에 참가할수 있게 보내달라는 광고를 왜 하나 했다. 죄송, 죄송하다. 불평 불만은 그만 하기로 했으면서. 감사만해도 모자란다고 했으면서, 입이 근질거린가. 내일은 작은 손주 생일이다. 용돈을 건축헌금으로 드리자고 꼬이는 못된 할미역활 해야할까 말아야할까. 하려면 나나 할것이지, 그런데 나는 안해도 그만이지만 아이들은 반듯이 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마치 내일이라도 금방 떠날듯이, 그리고 아이들은 앞으로 염광가족으로 살기를 바라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