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생일 빛깔
64바퀴 귀빠진 날 맞이, 서울발 자식들과 모처럼 훈훈한 타이밍이다 고인돌 체질의 아들이 여전사 딸내미 부부보다 두 시간 빨라서 목포 원도심 한 바퀴 돌았다 며느리는 시국 여파로 기약없는 무료 당직 불참이라는 전갈인데
꼼꼼쟁이 강 작가도 한 판 쐈다 30초 망설임이 있었지만, 진도 살이 3개월 만에 통 큰 한 상 주르르 깔았다 괜찮다 그까이꺼 모둠회와 매운탕 해치우고 카드 긁는 찰나 아, 세방낙조 붉은 악마의 무시무시한 침탈이라니
서유럽 끄트머리 포르투갈의 호카곶 저녁놀처럼 카메라 패거리들 각다귀 떼로 몰려들더니 푸른 물결 저만치 ㄱ자(字) 휘어진 허리로 셔터 누른다 이리저리 꺾고 젖히다가 해꼬리 떨어지자마자 우르르 사라졌지만
백화산 넘던 내 유년의 그 붉은 풍경 합체로 이미 진정할 수 없었다 서쪽 하늘 저녁놀로 우르르 쏟아지는 찰나 논두렁 밭두렁 홀라당 먹히는 풍경이다 소년 혼자 ‘너무 빨개서 눈 시렵당께요’ 주억거리다가
무더기로 달려오는 아이, 아이들 틈에 내륙의 어린 소녀 그림자 하나 재빨리 끼워넣었다 종아리 쭉쭉 뻗어 성장한 그 여자 종소리 울리는 잔디밭 무릎베개 내미는 모습 두근두근 떠올리면, 노을빛에 물든 울타리 하나
내 피붙이로 합체되어 그리도 아름다웠던 상상이다 지금은 해안선 점방 마루 밑 후미진 구석까지 칭칭 쑤시는 풍경 떠올리며 아, 소리 내뱉는 중이다 저녁놀에 빠져 세속에 사무쳤다 미안하다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