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가정과 교회에서 아내와 여성의 의무가 복종이라면, 남편과 남자의 의무는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3가지 사랑이 있습니다. 남녀간의 에로스 사랑이 있고, 친구나 형제간의 우정인 필레오 사랑이 있고, 하나님의 조건없는 아가페 사랑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남자에게 말씀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라며 아가페 사랑을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현재명령형으로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어떤 환경에 처해있든지 상관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내의 언행이나 반응이 어떠하건 상관없이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처럼 더러운 곳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무릎을 꿇고 깨끗이 닦아줄 수 있는 사랑을 하고, 6번째 남자와 살고있던 사마리아 여인을 몸소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여주신 것처럼 영적으로 부족한 아내라면 친절하고 온유한 말로 이해가 될 때까지 잘 가르쳐주고, 그의 택한 자녀들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처럼 아내의 허물과 잘못을 위해 대신 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로 죽으신 희생의 사랑입니다. 하늘에서 이땅에까지 몸소 내려오셔서 희생의 실천적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골 1:21-22).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오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들을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하여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요 17:9). 이와 마찬가지로 남자가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맡김을 받은 자들을 구원하여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셔서 흠과 티가 없는 교회로 세우기 위한 것과 같이, 결혼을 시작으로 아내를 흠과 티가 없는 거룩하고 사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가야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아내를 깨끗하고 흠과 티가 없는 거룩한 하나님의 딸로 만들기 위해 희생하며 애쓰는 그 지시에 아내는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의무를 보면, 세상과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세상에서는 여자가 해야할 일이 더 많습니다. 한국에는 예전에 '7거지악'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여자가 해서는 안 되는 7가지 악을 말합니다. 이것은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거나, 아들을 낳지 못하거나, 음란한 행동을 하거나, 질투하거나, 병에 걸리거나, 말을 많이 하거나, 도둑질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이 중에 하나라도 걸리면 이혼당하여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세상과 대조적으로 아내에게는 '복종하라' 밖에 없는데, 남편에게는 요구하는 내용이 매우 많습니다. 예를 들어 골로새서 3장에도 아내에게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한마디만 했는데, 남편에게는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 3:19)라며 사랑하는 것 외에 "괴롭게 하지 말라"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남편들의 사랑은 이성간의 사랑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과 같은 사랑을 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요한복음 3장16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그 사랑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아내에게 할 때 아내는 남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게 되고 느끼게 되므로 남편에게 쉽게 복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남자들이 아내에게 먼저 복종을 요구합니다. 먼저 복종하면 사랑해주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내를 괴롭히는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머리는 몸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몸에게만 움직이라고 한다면 그 몸이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요? 눈앞에 농약이 있는데 머리가 손이나 입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며 아무 지시도 내리지 않아서 손이 농약을 입에 넣어서 입이 그것을 삼킨다면 어떻게 될까요? 몸만 죽습니까? 머리는 몸에 붙어있기 때문에 몸과 함께 머리도 죽게 됩니다. 그래서 머리가 먼저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은 조건적인 사랑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지간일 때에 죽으러 오셨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선하게 살기 때문에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교회가 탄생된 것이며, 예수님께서 먼저 용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할 수 있고 또한 우리의 죄가 사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3장에서도 아내에게는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하며 남편에게는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3: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본문 28-29절에 기록된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결혼하는 순간 남자와 여자는 하나가 되는 것 뿐만이 아니라 한 몸이 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와 한 몸은 다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많은 성도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몸이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부부가 한 몸이라고 성경이 말씀하듯이 교회도 한 몸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비밀이라는 말입니다.
만약 자기 몸을 때리고 욕하고 학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미친 사람' 또는 '정신병자'라고 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기의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부부가 한 몸이기 때문에 만약 아내에게 욕을 하거나 무시하거나 폭력을 가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런 사람이 자기 몸을 때리고 욕하고 학대하는 '정신 병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정신이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미친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않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하기 위하여 아내를 존귀한 사람으로 여기며 보호하고 보양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내를 존귀하게 여기며 어디라도 다칠까봐 노심초사하며 보호해주려는 남자들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 어떻겠습니까? 세상에서는 그것을 '팔불출'이라고 놀립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나님과 반대로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이라면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행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 몸만 챙기고, 자기 몸이 힘들기 때문에 매사에 아내에게 자기를 챙겨달라고 하는 남자는 이미 하나님 앞에서 남자이기를 포기한 사람입니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아내들이 어떻게 기도하겠습니까? "우리 남편이 잘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겠습니까? "우리 남편이 제발 어떻게든 변해서 저와 저희 가족을 사랑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겠습니까? 그래서 남편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받기 위해서 아내를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남편이 간구하는 기도의 응답은 한 몸인 아내가 함께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몸의 반쪽은 이렇게, 반쪽은 저렇게 기도한다면 그 기도가 응답이 되겠습니까? 오른 손이 왼쪽 몸을 때리고 꼬집고 할키면서 자기 몸이 건강하게 해달라고 백날 기도한들 그 기도가 응답이 되겠습니까?
다음은 말라기 2:13-16까지 말씀입니다(새번역)
"너희가 잘못한 일이 또 하나 있다. 주님께서 너희 제물을 외면하시며 그것을 기꺼이 받지 않으신다고, 너희가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주님의 제단을 적셨다. 그러면서 너희는 오히려, '무슨 까닭으로 이러십니까?' 하고 묻는다. 그 까닭은, 네가 젊은 날에 만나서 결혼한 너의 아내를 배신하였기 때문이며, 주님께서 이 일에 증인이시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너의 동반자이며, 네가 성실하게 살겠다고 언약을 맺고 맞아들인 아내인데도, 네가 아내를 배신하였다. 한 분이신 하나님이 네 아내를 만들지 않으셨느냐? 육체와 영이 둘 다 하나님의 것이다. 한 분이신 하나님이 경건한 자손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겠느냐? 너희는 명심하여, 젊어서 결혼한 너희 아내를 배신하지 말아라. 나는 이혼하는 것을 미워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아내를 학대하는 것도 나는 미워한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명심하여, 아내를 배신하지 말아라."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남편들이 아내를 위해 다음과 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1) 아내를 사랑하되 티와 주름과 흠이 없이 거룩하고 아름답게 만들도록 노력하라
희생이 없는 것은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이라는 희생을 통해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모든 것이 다릅니다. 또한 좋아하는 취향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부장적이며 유교적인 환경에서 자란 남자들은 모든 것을 아내가 자기에게 맞추어주길 바랍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한다면 아내의 취향과 스타일을 존중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외설적이거나 윤리적이지 못한 옷을 입는다거나 취미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단호히 잘라버리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아내가 좋아하는 것이 내 취향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무시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핀잔을 준다면 남자라는 이름에 걸맞지 못한 행동입니다. 남편의 역할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즉 자신의 자아를 죽이면서 아내를 존중해주며 아내가 거룩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잘 성장하도록 이끌어주며 보호해주어야 합니다. 에스겔 16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선택하여 아름답고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셨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너를 돌아 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긍휼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꺼린바 되어 네가 들에 버리웠었느니라.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 내가 너로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오히려 벌거벗은 적신이더라.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물로 너를 씻겨서 네 피를 없이 하며 네게 기름을 바르고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띠우고 명주로 덧입히고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사슬을 목에 드리우고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면류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명주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 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노력하신 그 노력만큼 남자들은 아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그러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2) 아내와 하나가 되기 위하여 부모를 떠나라
결혼 전까지는 부모의 밑에 있었지만, 이제 아내와 한 몸을 이루기 위하여서 부모의 정신적, 경제적, 영적인 모든 면으로부터 떠나서 독립해야만 합니다. 결혼해서도 부모의 지시에 따라 아내를 괴롭히는 남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결코 아내와 하나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창 2:24)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몸이 될찌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더라"(막 10:7-9)
(3) 아내를 위해 기도하라
생활 속에서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윗 사람이 양보해야 합니다. 아랫 사람은 어른이므로 할 수 없이 복종한다고 하더라도 양보는 마음이 더 넓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든지 머리의 위치에 있는 리더들이 더 마음이 넓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랫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볼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이해하고 돌봐야하는데, 자녀보다 부모가 마음이 더 좁아서 매사에 자녀가 부모를 이해해 주어야 한다면, 그런 부모를 둔 자녀들은 죽을 맛일 것입니다. 이것은 머리에 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편이 머리이므로 아내가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깨지기 쉬운 아내의 마음을 잘 살펴서 양보해주어야 합니다.
아내의 잘못을 볼 때마다 지적하는 남자를 '밴댕이 소갈딱지'라고 말합니다. '소갈딱지'라는 말은 '마음 속'을 말하는 속어입니다. 왜 그런 말이 생겼을까요? 밴댕이는 사람에게 잡히자마자 죽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속이 좁기 때문에 성질이 너무 급해서 잡힌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밴댕이보다 작은 멸치도 있는데 굳이 밴댕이를 말하는 이유는, 밴댕이는 크기에 비해 내장이 매우 작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밴댕이는 보통 18cm정도나 되는 물고기인데, 그물에 잡혀 올라오자마자 몸을 비틀며 '파르르' 떨다가 죽어버린다고 합니다. 즉 남편은 아내보다 덩치로보나 뭐로 보나 훨씬 큽니다. 그런 남자가 자기보다 작고 약하여 쉽게 상처받기 쉬운 여자의 어떠한 것을 참지 못해서 바르르 떨며 분노를 발산하는 모습, 어떤 작은 실수도 꼭 지적해야만 속이 풀리는 그러한 모습이 멸치나 뱅어처럼 작은 물고기보다 훨씬 큰 밴댕이를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겉은 큰데 속 내장이 너무 작은 밴댕이의 속을 비꼬며 하는 말이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이 어떠한 일을 보며 분노가 치밀어오를 때, 성경은 화를 내며 싸우는 대신에 그 분노를 하나님께 내려놓고 기도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딤전 2:8).
남자가 거룩해야 여자도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머리가 거룩해야 몸도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머리가 아무렇게나 닥치는대로 살라고 지시를 하면 몸은 금방 망가지지만, 머리가 거룩과 반대로 가는 일을 자제하도록 지시를 내리면 몸은 거룩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남자들에게 하나님은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거룩과는 거리가 먼 피투성이의 발짓하는 저를 아무도 돌보지 않을 때에 하나님께서 저를 살려주시고 돌보아주심으로 오늘의 제가 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저희에게 거룩하라고 명령하시니 그 명령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남편)그 동안 저는 한국 문화에 젖어서 무조건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해야 한다고만 생각하며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잘못하면 그것을 지적해야만 제 직정이 풀렸습니다.
잘못을 그냥 넘어가면 아내가 그것을 모를 거라고 생각했고, 고치지 못할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도 제가 잘못할 때 누가 지적하지 않아도 제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제가 지금까지 아내나 자녀에게 지적하며 화를 낼 때마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깨지기 쉬운 그릇이라고 하셨는데, 얼마나 많이 그들의 마음이 깨지며 상처 투성이가 되었겠습니까?
또한 사람들 앞에서는 더욱 아내가 저에게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만용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어떤 때에는 사람들 앞에서 저의 그런 모습을 감추기 위해 아내에게 무척 잘해주는 것처럼 꾸며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거룩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언행을 하며 살아온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거룩한 자녀로 삼기위하여 얼마나 희생의 사랑을 베푸셨는지에 대해 알면서도, 저는 그러한 희생의 사랑을 하고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주인공이 되어서 주위의 사람들이 저를 위해 희생해주기를 바랬고, 저를 사랑해주기를 원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저를 중심으로 제가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분이 언짢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 분노를 아내와 가족들에게 뿜어내면서 주위를 어둡게 할 때가 많았습니다.
주님은 제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시기 위해 몸소 낮고 천한 이곳에 오셔서 모든 것을 보여주고 가르쳐 주셨는데, 저는 이론적으로만 알고 행위로는 실천하지 않은 믿음이 너무나 연약한 자였음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몸소 보여주시며 가르쳐주신 그 희생의 사랑, 조건 없이 제 자아를 죽이며 상대방을 존중해주는 사랑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저의 부족함을 너무나도 잘 아시는 주님께서 저를 긍휼히 여기사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께서 사랑하라고 주신 아내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제 몸이라는 것을 항상 잊지 말게 하옵소서.
제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 매일처럼 운동도 하고, 나쁜 음식은 먹지 않고 좋은 음식만 먹으려고 애를 쓰며, 저에게 누가 나쁜 말을 하면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하고,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려고 했으면서 아내를 위해서는 그렇게 섬겨주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한 몸인 아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님의 사랑을 실천 할 수 있도록 저에게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저의 희생의 사랑을 통해 저희 자녀들도 저를 본받아 살아갈 수 있는 멋진 아버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존경받는 아버지, 사랑하는 남편으로서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이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실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이제 저의 모든 과거의 잘못된 습관으로부터 벗어나서 온전히 주님안에서 한 몸된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기를 원합니다. 저를 만져주옵소서. 주님의 터치하심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동행하심과 인도하심 속에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거룩하신 뜻이 저를 통해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