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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문학」2019, 여름호 계간평
시조는 가락에 의미(意味)를 담아야
䨒溪 이도현
(국제펜한국본부 자문위원)
시조는 가락에 의미(意味)를 담아야 생동하는 맛과 멋을 살린다.
여기서 가락은 시조 고유의 음성적 형식 곧 운율(韻律)을 말함이요, 의미는 내용을 말하되 현대감각까지를 수용함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시조는 시조 고유의 형식에 현대감각을 반죽할 때에 시조가 살아남을 뜻한다. 가락이 결여되면 시조의 정형에서 벗어나게 되고 의미가 결여되면 음풍농월(吟風弄月)의 지나가는 일회성 노래가 된다.
따라서 현대시조의 지향(志向)은 내용이 새로워야 하고 충격적이어야 독자를 긴장시킬 수 있다. 때문에 작품을 창작할 때엔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쓸까를 상당히 고민한 다음 펜을 잡아야 한다. 이러한 고민이 작품으로서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저 서정(抒情)이나 풍경을 안이(安易)하게 노래해서는 독자를 안으로 끌어 들일 수 없다. 안이한 것과 쉬운 것은 차원이 다르다.
먼저 소시집에 실린 박헌오 시인의 작품 두 편을 살펴보자.
돗자리 한 잎 들고 꽃그늘로 갈거나
지천으로 피었다가 혼비백산 나는 꽃잎
찻잔에 아우성 띄워 또 한 세상 마셔보네.
-박헌오의 <벚꽃>전문
벚꽃은 우리나라 봄을 대표하는 꽃으로 4월이면 어디서나 만개한다. 어느 날 갑자기 활짝 피었다가 순식간에 지는 벚꽃! 그러기에 때를 놓지지 않고 그 장관을 보려고 인산인해(人山人海), 사람들이 모여들고 아우성이다.
초장에서 돗자리 한 잎 들고 꽃그늘로 나간 흥이 어느새 중장에서 혼비백산(魂飛魄散) 지는 꽃잎,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으로 금시 무너진다. 종장에서 그러니 우리도 저물어가는 인생! 찻잔에 아우성 띄워 또 한세상 마셔보자 고 한다. 동중정(動中靜)이요 정중동(靜中動)의 세계다. 허무의 쾌감이요, 아름다운 반란이다.
여기서 혼비백산 하늘을 나는 꽃잎과 찻잔에 띄운 아우성 곧 시각과 청각이 무르익은 공감각의 가경(佳景)을 본다.
유치환은 펄럭이는 깃발을 아우성이라 하였는데 박헌오는 찻잔에 아우성을 띄운다 하였으니 그 또한 기발하여 우리를 긴장하게 하는 대목이 아닌가.
언제부터 여기 앉아 바람에 몸 닦느냐
암탉처럼 품은 고독 깨어날 줄 모르는데
목젖을 흔들던 꽃은 시들어서 또 진다.
침묵(沈默)을 즐겨 사니 대구 없이 바라볼 뿐
새 한 마리 앉았다가 똥만 싸고 빠져 간다
세월은 홀로 바쁘다고 앉지 않고 그도 간다.
무한이 어디인지 풀지 앟는 묵정(黙靜)의 길
별들은 떼를 지어 하늘 깊이 자맥질 하는데
안으로 자라가는 삶 멈춤 없는 부동(不動)이다.
-박헌오의 <바위>전문
세 수로 된 <바위> 전문이다.
현대는 속도와 경쟁 그리고 자기 홍보의 시대다. 이 시대, 시대의 흐름에 휩싸이지 않고 자기 속도, 자기의 무게를 지키고자 하는 화자의 삶의 자세를 바위의 속성에 비유한 작품이다.
이 작품 첫 수에서는 수신(修身)을, 둘째 수에서는 침묵(沈默)을, 마지막 수에서는 부동(不動)의 자세를 말하고 있으니 곧 군자의 덕행(德行)을 말함이 아닌가.
깨어날 줄 모르는 고독, 똥만 싸고 빠져나가는 이기주의, 하늘 깊이 자맥질 하는 경쟁과 불안한 사회 속으로 빠지지 않고, 의연하게 자기 길을 말없이 지키고 있는 바위의 높은 덕을 노래하는 시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자세가 참으로 정중하다.
연시조(連時調)는 작품 <바위>와 같이 각 수(首)가 각각 독립하면서 전체를 하나의 큰 주제로 묶어야 한다. 연시조 작법의 정석을 보인 작품이다.
이밖에도 단시조(單時調) <모시>에서는 길쌈하는 아낙의 정성과 사랑을 <진달래>에서는 향토적인 서정을 그리고 <여치 잠> <새우 잠> <호랑이 장가가는 날> <여우 불> <도깨비 씨름>등에서는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작품을 해학과 위트로 새롭게 구성하여 독자들을 긴장시키면서 안으로 끌어 들임에 성공한다.
합죽선 쫙 펼쳐든 초록 잎새 나뭇가지
놀란 산꿩 마냥 일어난 산바람이
바위틈 이끼 적시며 물소리를 풀어낸다.
-박영식의 <초여름>전문
박영식의 <초여름>전문이다.
시인의 시작 노트를 보자. “꽃보다 예쁘다는 신록의 계절이다.-중략-초록은 신의 색이라고 말들 한다. 때론 어머니 같고, 고향 같기도 한 이 초록 가경(佳景)! 어쩌면 설움의 빛이기도 하다.” 라고 한 것처럼 초여름의 정경을 이와 같이 시원스럽게 경(境)을 열고 있을까?
초장에서 ‘합죽선 쫙 펼쳐든 초록 잎새’, 중장에서 ‘놀란 산꿩 마냥 일어난 산바람’으로 긴장시키더니 종장에서 ‘바위틈 이끼 적시며 물소리를 풀어낸다’고 조용조용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이렇듯 긴장과 이완(弛緩)의 접목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현대시조의 전범이 아닐까. 초록빛이 너무 투명하여 어머니처럼, 고향처럼, 물소리처럼 우리들의 눈시울을 그렁하게 적시는 가작이다.
이제 곧 퇴임하면 어디서 살 거냐고?
천 년 묵은 느티나무 맨 꼭대기 위에 올라
까치가 살다가 떠난 빈 둥지에 살까 하네
그 조그만 둥지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그런 걱정 하지 말게, ‘얍’ 하고 요술 부려
내 몸을 둥지에 맞춰 확 줄여서 살 꺼니까
그 높은 둥지에서 무얼 하며 살 거냐고?
흰 구름 이불 덮고 자락 깨락 뒹굴다가
동주(東柱)가 못다 헨 별들 다시 헤며 살까하네.
-이종문의 <이제 곧 퇴임하면>전문
이종문 시인은 시작노트에서 올 해를 끝으로 정든 대학 교수직에서 정년을 맞이한단다. “얼마나 놀라운가/번개를 보고도 인생이 짧다는 걸 모르다니” 일본 하이쿠 시인 바쇼의 작품을 예로 들면서 번개가 ‘번쩍’ 하는 것보다 더 짧게 남은 자신의 시간들을 어떻게 살까 하고 자문자답(自問自答)하는 작품이다.
세 수로 된 연시조에서 ‘어디서-까치가 살다가 떠난 빈 둥지에서. 어떻게-내 몸을 둥지에 맞춰 확 줄여서, 무엇을-윤동주 시인이 못다 헤아린 별을 헤며’ 살까 한다는 내용이다.
시인의 퇴임 후의 삶을 까치의 삶으로 환치(換置)한 미래를 설계하는 멋진 그림이다. 까치처럼 걱정 없이 조그만 둥지에서 비우고 노래하며 살겠다는 낭만이요, 즐거움이다. 이렇게 자문자답하는 시의 구성이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읽혀지고 있음은 무슨 연유일까? 그것은 아마도 오랜 시작(詩作) 경륜에서 오는 비법일 게다. 이렇듯 시조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기법을 우리 시조단에 제시하고 있다. 멋진 시경 한 폭을 보고 간다.
바늘에 실을 꿰니 앞뒤 서며 한길 가고
웃음조각 눈물조각 애면글면 꿰매노니
수틀 위 조각보에는 병두련(竝頭蓮)이 활짝 펴.
-정진상의 부부(夫婦)전문
정진상 시인의 단시조 <부부>전문이다.
우리 속담에 ‘바늘 가는데 실 아니 가랴’ 는 속담이 있다. 예부터 여필종부(女必從夫)라 하여 금실(琴瑟) 좋은 부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바늘에 실을 꿰니 앞을 서면 뒤 따라 한길을 함께 가고, 웃음 조각 눈물 조각을 애면글면-온갖 힘을 다하는 모양- 꿰매노니, 수틀 위 조각보에는 병두련-한 줄기에 두 송이의 꽃이 나란히 핀 연꽃-이 활짝 폈다는 내용이다.
한 쌍의 부부가 서로 마음과 힘을 합하여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이루는 전개 과정을 바늘과 실에 비유한 작품이다.
여기서 웃음조각, 눈물조각, 애면글면, 조각보, 병두련의 시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금실 좋은 부부의 정(夫婦情)을 한껏 고조시킨 솜씨가 참으로 놀랍다. 아름답게 인생 말년을 장식하는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시조의 진면목(眞面目)을 이 단시조 한편에서 지금 우리는 보고 있다.
바다를 모셔왔네 갯바람 앞세우고
느림과 긴 기다림 허공으로 날리면서
푸른 물
쉬어가라고
백금방석 깔고 있다.
작렬하는 태양아래 헉헉대는 습한 바람
짭조름한 갯내음이 두고 간 밀어들은
밤들면
별들이 내려
소복소복 앉았다.
-진길자의 <염전에서>전문
염전(鹽田)은 바닷물을 끌어들여 논처럼 막아놓고 햇빛과 바람을 이용,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이러한 소금을 천일염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서해안 강화 지역의 소래포 소금 그리고 전남 신안 앞바다 소금을 꼽는다.
진길자 시인은 지금 바닷가 염전에서 간간한 갯바람을 목에 감으면서 소금이 구워지는 진경에 취해 있다. 아니 사진 한 컷을 멋지게 카메라에 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첫 수에서는 하얗게 구워진 소금밭을 ‘푸른 물/쉬어가라고/백금 방석 깔고 있다.’ 하고, 둘째 수에선 ‘밤들면/별들이 내려/소복소복 앉았다’고 묘사한 대목이 재미있다. 낮과 밤의 바닷가 염전을 대조시킨 이색적인 그림 한 장, 아니 더위를 식혀 주는 사진 한 컷을 가까이서 본다. 염전의 풍경을 백금방석으로, 별들이 내린 반짝이는 바닷가로 대유(代喩)한 솜씨가 소금처럼 반짝인다.
다음엔 여름시조단의 작품을 보자.
발 뻗고 지낼만한 시방(詩房) 한 칸 마땅찮은
시방, 느닷없는 장마 천만 평쯤 삼키는 중
마음 밭 대청마루에 졸고 있는 붓자루
-고동우의 <날씨 흐림>전문
고동우 시인의 <날씨 흐림>이다.
무언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불쾌지수가 높은 그런 날씨다. 시인, 묵객이 시상을 떠올리고 대청마루에서 먹을 갈고 있는 한가로운 분위기가 아니요 금시 느닷없는 장마가 천만 평쯤 삼킬 듯 험악한 분위기다.
누가 이렇게 선비들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들고 있는가? 이 작품 외에 <늦가을>과 <12월>도 밝지 못하고 우울한 내용이다. 작품 <늦가을>에선 ‘아프다 내내 텅 비어 또 저무는 달의 골목’이라 했고, <12월>에선 ‘모든 색 산화한 듯이 이미 눈뜬 섣달그믐’이라 했다.
고동우 시인의 날씨가 어서 쾌청하기를 기원한다.
초장에서의 ‘시방(詩房)’과 중장에서의 ‘시방’, 언어 구사가 제자리에서 잘 활용되고 있다. ‘시방(詩房)’은 주어격이요, ‘시방’은 부사어로서 다음에 오는 구절 전체를 긴박한 분위기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시방! 한 단어가 갖는 위력을 한 번 다시 보자. 그 위력이 지금 천만 평쯤 삼키는 중이라면 과장일까?
거미줄에 잡힌 나비 몸부림이 애처롭고
허기에 지친 거미 오랏줄을 죄는 고비
목숨을 저울질하며 눈을 감는 비굴한 나.
-김사균의 <도피>전문
김 시인은 지금 거미가 오랏줄을 죄는 찰나의 시간, 그것을 현장에서 바라보면서 눈을 감는다.
세상은 강자와 약자의 대결장이요, 싸움터다. 또한 그 현장을 목격하고 있는 제삼자의 도피 장소이다. 어쩌면 우리네 삶의 현장을 거미줄에 아주 적절하게 비유했을까?
지금 거미란 놈이 약자, 나비의 목을 오랏줄로 조이고 있는 초를 다투는 긴박한 순간이다. 지금 화자는 이 현장을 바라보면서 비굴한 채 눈을 감고 있다. 비굴한 것이 어디 화자뿐이랴? 우리 모두 함께 앓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애처로운 현장, 아니 분노의 현장이다.
강자와 약자, 갑과 을의 힘겨루기 전쟁터에서 약자는 패하고 하는 수 없이 이를 갈며 물러서고 만다. 먼 후일 역사는 이를 바르게 증거 하리라.
거미줄을 우리네 목을 죄는 오랏줄로 환치(換置)하여 독자를 숨 가쁘게 긴장의 도가니로 끌어들이는 작품을 여기서 만난다.
새하얀 초승달이 호수에 내려 앉아
줄 없는 긴 낚싯대 드리운 채 세월 낚듯
초연한 태공망여상 반추하며 노니네
-박선희의 <희망사항>전문
박선희 시인은 강태공(姜太公)의 전설 속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강태공은 주(周)나라 초기의 정치가로 문왕을 도와서 은(殷)나라를 멸망시키고 제(齊)나라 시조가 된 사람이다.
본명은 강상(姜尙)이요, 이 밖에 여상(呂尙) 또는 태공망(太公望)이라 불렀지만 강태공(姜太公)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태공은 원래 은나라 사람인데 은나라 주왕(紂王)이 폭정을 하자, 이를 피하여 위수(渭水)에서 40년을 숨어 살면서 낚시질로 소일했다. 때마침 주나라 서백-후일 주나라 문왕이 됨-이 인재를 찾던 중 노인의 범상치 않은 얼굴을 보고 문답 끝에 그를 주나라 재상으로 등용한다. 머리가 총명하고 덕망이 높은 태공은 문왕의 스승이 되고 제나라의 시조가 된다. 전술에 능한 병법가(兵法家)로, 재주가 뛰어난 정치가로 역사에 전하는 인물이다.
이 작품에선 폭정과 세속(世俗)을 벗어난 강태공이 새하얀 초승달이 되어 호수에 내려 앉아 낚시 줄도 없는 긴 낚싯대를 드리운 채 세월을 낚으면서 한가롭게 놀고 있는 신선(神仙)으로 묘사된다. 전설적인 이야기를 현실화 하여 거뜬히 단시조 한편을 완성했다.
다만 ‘희망사항’ 이란 제목이 막연하고 애매하다. 내용을 구체화 한 것, 아니면 유추(類推)한 것으로 제목을 설정하면 어떨까? 함께 실린 작품 ‘갈대의 춤사위’, ‘4차 산업’은 무리가 없는 좋은 제목이다.
폭정(暴政)에서 벗어나 은둔하면서 세속(世俗)을 초월하여 낚시질에만 몰두했던 강태공! 그는 물고기를 잡는 데는 신경을 쓰지 않고 명상하면서 수도하고 자신을 연마했던 것일까? 후일 국가에 큰 공을 세운다.
박시인은 시작노트에서 “이 시대의 민심을 위로하는 인재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주를 달고 있다. 이 시대 강태공 같은 능력 있는 사람, 덕을 갖춘 유능한 인재가 나타나 민심을 위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기나긴 정묵 끝에 홀연히 걸어 나와
불꽃에 몸을 맡긴 연옥의 순간이여
깨어난 망각의 시간 천년 빛이 선연하다.
점토서 발원했던 찬란한 상감청자
분청과 백자로 이어온 흙의 역사
수세기 변주곡들을 뜯었던 아픈 내력
-박일랑의 <백자(白瓷) 찬미>일부
박일랑 시인의 <백자(白瓷> 찬미> 네 수중 첫째와 둘째 수이다.
백자(白瓷)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자기로서, 단순함과 소박함을 상징하며 조선 사대부(士大夫)의 청렴과 선비상을 담은 자랑스러운 예술품이다.
박 시인은 이러한 백자가 예술품이 되어 나오기까지의 아픈 공정과 유장한 천 년의 혼을 담아 오늘에 이어지는 조상의 슬기와 넋을 찬미하고 있다.
첫수와 둘째 수에선 불가마 곧 연옥(煉獄)에서 구워진 자기(瓷器)가 망각에서 깨어 천 년 빛이 선연하다 했고, 이러한 자기가 오늘에 있기 까지 점토에서 발원하여 상감청자, 분청과 백자로 이어지면서 수세기 동안 변주곡을 거친 흙의 역사, 그 아픈 내력을 말하고 있다.
마지막 수에서 ‘생사의 경계를 넘어 부활로 환생한 몸/놀라운 역리(易理)의 법칙 유장한 천 년의 혼’이라 극찬한다.
여기서 불가마를 ‘불꽃에 몸을 맡긴 연옥’, 완성된 자기를 ‘부활로 환생한 몸’이라 은유한 대목이 돋보인다.
징징 둥 둥 둥 개갱 개갱 궁따다 궁따
땅에서 솟아났나 하늘에서 떨어졌나
온 세상 흔들어 깨워 놀이마당 펼쳐보세
깨개갱 덩쿵타 궁따 징징 두두둥 둥둥
하늘엔 별도 많고 땅에는 사람도 많은데
온 세상 하나가 되어 이화세상 이뤄보세.
-박정섭의 <사물놀이>첫수와 마지막 수
박정섭의 <사물놀이> 6수로 된 연시조 중 첫수와 마지막 수이다.
사물(四物)놀이는 네 사람이 꽹과리, 징, 장구, 북 등 네 가지 타악기로 농악 등에서 합주하는 민속(民俗)음악이다.
박 시인은 6수의 연시조를 조화롭게 구성하고 있다. 첫 수는 서시(序詩)격이요, 둘째에서 다섯째 수는 징소리, 북소리, 꽹과리소리, 장고소리 순으로 배치하고 마지막 수에서 정리하고 끝을 맺는다. 논설문에서 서론, 본론, 결론의 3단계 작법에 맞춘 잘 조화된 짜임새다.
내용에 있어서도 첫수와 마지막 수의 구성이 열고, 닫음으로 깔끔하게 처리되어 문장작법을 많이 연구한 솜씨를 보여 준다.
‘온 세상 흔들어 깨워 놀이마당 펼쳐보세’로 첫수에서 장(章)을 열고, ‘온 세상 하나가 되어 이화세상 이뤄보세’ 로 마지막 수에서 장을 닫았다. 시작과 끝이 적절한 내용이요, 기발한 구성이다.
여기서 이화세상(理化世上)은 단군성조의 개국이념으로 ‘홍익인간 재세이화(弘益人間 在世理化)-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고, 세상을 이치대로 다스린다. 의 뜻으로 이런 경우엔 독자의 이해를 돕는 한자를 병기하는 것이 좋겠다.
폭포는 떨어져도 모음은 올라가고
분수는 올라가도 모음은 내려오네
폭포랑 분수랑 둘이 모음 서로 널뛰네.
-이광호의 <폭포랑 분수랑 둘이>전문
이광호 시인은 모음조화 현상을 놓고 시조를 재미있게 구성한다.
모음조화(母音調和) 현상은 우리말 두 음절 이상의 단어에서, 양성모음(ㅏ,ㅗ)은 양성모음 끼리, 음성모음(ㅓ,ㅜ,ㅕ,ㅠ,ㅔ,ㅝ,ㅟ,ㅖ 따위)은 음성모음끼리 서로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현상을 말한다.
‘폭포’는 아래로 떨어져도 양성모음 끼리 어울려 위로 올라가고, ‘분수’는 위로 올라가도 음성모음 끼리 어울려 아래로 내려온다고 하고, 종장에서는 ‘폭포’와 ‘분수’ 둘이 서로 널뛴다고 말한다. 역설적 표현이 서로 널뛰면서 진실을 말하고 있는 어법(語法)이다. 재미있는 언어구사 현상을 시조로 형상화(形象化)하고 있다.
시인은 한글 모양에 관한 연구 활동을 오래도록 한 분으로 이러한 우리 국어 언어현상도 시조로 창작할 수 있는 소재가 됨을 시사하고 있다.
시간의 깊이만큼 남루한 옷을 입은
기왓장 틈을 밀어 뿌리 가만 내립니다
대자비 어진 눈빛에 연한 싹이 자랍니다.
달빛도 휘청이는 매운바람 견딥니다
가뭄이 일상이 된 척박한 땅 갈증에도
큰 스님 독경을 들으며 용기 내어 꽃핍니다.
-이남식의 <와송(瓦松)>전문
이남식 시인의 <와송(瓦松)>전문이다.
와송은 오래된 사찰 기와지붕에 핀 바위옷을 말한다. 이 바위옷은 첫수에서는 ‘남루한 옷’이 되고, 둘째 수에서는 ‘매운바람을 이겨내는 불성(佛性)’으로 작용하면서 작품의 키워드가 된다.
첫수에서는 바위옷이 오랜 세월, 기왓장 틈에 뿌리를 내려 대자비(大慈悲) 곧 보살의 큰 자비로 연한 싹으로 자란다. 여기서 ‘남루한 옷’은 중생(衆生)을 뜻함이요, 중생이 보살의 자비로 미혹한 세계에서 제도(濟度)됨을 말하고 있다.
둘째 수에선 바위옷이 매운바람 곧 매서운 세파(世波)를 큰스님 독경(讀經)을 들으며 이겨내면서 인고(忍苦)의 수행(修行)을 거쳐 꽃을 피운다.
내용도 좋고 앞뒷 수가 대구 또는 대조를 이루면서 불심(佛心)을 끌어 올리는데 성공하고 있다. 큰 사찰 기와지붕에 피어 솟은 연꽃 한 송이다.
요즈음 이상해요. 계절을 잊었나 봐
봄인가 싶더니만 함박눈이 나리네요
눈비도 마구 내려요. 제멋대로 이네요.
요즈음 이상해요. 저쪽이 하는 일이
별들을 삼킬 듯이 하늘을 휘잡더니
별 하나 떨어졌네요. 온 산야가 타네요.
-이정자의 <제멋대로>전문
이정자 시인의 <제멋대로>전문이다.
작품 끝에 “정치도 날씨도 제멋대로,,,”라고 주를 달았다. 얼마나 정치도 날씨도 제멋대로이면 제목도 ‘제멋대로’라고 직설로 달았을까? 그래야만 직성이 시원스레 풀릴 것만 같아서였을 것이다.
봄인가 싶더니 금시 함박눈이 내리고, 눈비가 쏟아지는 제멋대로 날씨다. 하늘이 그러니 세상이 온전할 리가 없다. 별들을 삼킬 듯이 하늘을 휘잡더니 드디어 별이 떨어지고 온 산야가 타는 정황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는 불기(不器)”니, 모름지기 그릇에 국한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세상을 넓고 두루 살피는 명철(明哲)한 대군(大君)이 나와 산야의 불을 꺼야 할 것이다.
벗기고 또 벗겨도 부끄럼 없는 양파
속살을 감추려고 숨어산 어둠속에
미로의
터널 벗어나
자화상을 그린다.
불감증 잃는 세상 온 종일 걸어 봐도
끝없이 구겨진 잔상 덧칠한 모습 속에
백주의
대로에 서서
불태우는 나의 허물.
-이형식의 <양파>전문
이형식 시인의 <양파>전문이다.
양파는 벗기고 또 벗겨도 그 모습 그대로이다. 겹겹이 두른 속살이 겉과 속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무리 벗겨도 부끄러움이 없다. 미로의 터널을 벗어도 떳떳한 자화상뿐이다.
그러나 우리네 인간 세상을 보아라. 온종일 걸어 봐도 끝없이 구겨진 잔상, 덧칠한 모습뿐이다. 이를 부끄러워하면서 화자는 지금 스스로의 허물을 불태우려 하고 있다. 어디 화자뿐인가. 우리 모두 공감하는 우리네 부끄러운 현실, 반성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작품 첫수와 둘째 수에서,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꾸밈없이,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는 양파의 속성과 인간 세상의 덧칠한 삶, 겉을 포장한 삶을 대조시키면서 우리들에게 깨우침을 주고 있는 교훈적인 작품이다.
양파처럼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벗기고 또 벗겨도 숨긴 것 없이 원형이정(元亨利貞)으로 살아가는 양파의 속성을 배울 일이다.
열정이 솟구쳐서 안으로 되 뇌이다
알알이 쌓인 마음 견딜 수가 없어서
빨갛게 타버린 가슴 열어놓은 사랑의 낙인.
-최정숙의 <석류>전문
최정숙 시인의 <석류>전문이다.
석류는 모양이 예쁘고 향이 특이하여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는다. 화자는 지금 초장에서 ‘열정이 솟구쳐서 안으로 되 뇌이다.’라고 독자를 긴장하게 만들고, 중장에서 ‘알알이 쌓인 마음 견딜 수가 없어서’ 라고 긴장을 더욱 고조시킨 다음, 종장에서 ‘빨갛게 타버린 가슴 열어놓은 사랑의 낙인’이라고 불도장을 찍는다.
빨갛게 익은 석류를 쪼개 보면 더 빨간 씨가 알알이 박혀있음을 본다. 이를 ‘빨갛게 타버린 가슴 열어 놓은 사랑의 낙인’이라 했다. 이 표현이야 말로 놀라운 은유다. 타버린 가슴이기에 사랑의 낙인이 된다.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불도장을 찍어 버린 것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 작품은 마치 조운 시인의 ‘석류’를 방불케 한다.
‘투박한 나의 얼굴/두툼한 나의 입술//알알이 붉은 뜻을/내가 어이 이르리까//보소라 임아 보소라/빠개 젖힌/이 가슴.’ 조운의 혼이 담긴 충격적인 절정의 작품이다.
‘늦은 자 먼저 된다’ 그 말씀 기억하며
믿음을 재어 보자 어디쯤 있는지를
당당히 앞서 가는가 쫓아가고 있는가.
-허대영의 <어디쯤에서 걷는가>전문
허대영 시인은 신실한 신앙인이다. 마태복음 20장 16절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는 말씀을 인용하여 시조 한수를 구성했다.
화자는 자기믿음이 어디쯤에 있는지를 재보자고 자문(自問)한다. 종장에서 ‘당당히 앞서 가는가 쫓아가고 있는가’를.
기왕이면 앞서가는 믿음이 좋겠다.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만 있어도 산을 움직인다.” 하였으니 허 시인의 신앙의 깊이는 벌써 산을 움직일 만큼 와 있는 것이다.
진즉에 알아봤지 십중팔구 헛꽃인 걸
오월 미풍에 소리 없는 이별이듯
감귤 꽃 진한 향기만 거미줄에 걸렸네.
-김미향의 <낙화기>전문
김미향 시인의 <낙화기>전문이다.
헛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이다. 낭화(浪花)라고도 한다. 일찌감치 알아 봤다. 십중팔구는 헛꽃인 것을, 아닌 게 아니라 오월 미풍에 소리 없이 뚝 떨어지고, 감귤 꽃 진한 향기만 거미줄에 걸렸다고 씁쓰레 한다.
실한 감귤이 열려야 하는 데 진한 향기만 거미줄에 걸렸으니 퍽 안타깝다. 어디 헛꽃이 감귤 꽃에만 있던가. 사람에게도 있다. 세상에 한 번 태어나서 빛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기서는 진한 향기라도 걸려 있으니 그만도 다행이다. ‘낙화(落花)인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오’ 옛시조 한 수가 떠오른다. ‘오월 미풍에 소리 없는 이별이듯/ 감귤 꽃 진한 향기만 거미줄에 걸렸네,’ 참으로 허전한 분위기를 이 자연스런 가락, 오월 미풍에 걸고 있다.
비무장 생태공원 두루미 수달처럼
하늘 땅 자유로이 오가는 낙원동산
손잡은 백두대간에 사람 꽃이 피었네
-김신덕의 <공존의 향기>전문
김신덕 시인의 <공존의 향기>전문
김시인은 지금 비무장지대 생태공원을 훨훨 자유롭게 오가는 두루미, 수달을 상상하며 손잡은 백두대간에 사람 꽃이 피었다고 노래한다.
그렇다 남과 북이 만나 서로 손잡고 대화의 물꼬를 튼 지도 벌써 일 년-2018,6,15-을 넘어 섰다. 또 만나자. 만나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운한 것이 있다면 그 응어리를 풀자. 단군왕검의 자손 한겨레 한 핏줄이 아니더냐?
하늘 땅 자유로이 오가는 두루미 수달처럼 낙원동산에 남북 평화의 탑을 세우고 사람 꽃을 피우자. 그래서 김 시인의 ‘공존의 향기’가 삼천리강산에 떨치도록 우리 모두 기원하자.
세월에 눈 귀 머니 핑계 많아 좋아라
보아도 아니 본 척 들어도 아니 들은 척
내 안에 어린 것 깨워 모르는 척 잊은 척
-김영주의 <애년(艾年>전문
김영주 시인의 <애년(艾年)>전문이다.
애년(艾年)은 머리털이 약쑥처럼 희어진다는 뜻에서 나이 쉰 살을 말한다. 김 시인이 아마 애년의 연치(年齒)에 오르나 보다.
공자(孔子)는 나이 오십이면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라 해서 지천명(知天命)이라 했다. 그러니 도(道)를 따라서 행실을 지켜야 함에 화자는 작품 중장에서 ‘보아도 아니 본 척, 들어도 아니 들은 척’ 종장에서 내 안에 어린 것 깨워 모르는 척 잊은 척‘ 하며 살겠다는 생각이다.
천명(天命)을 안즉 혹(惑)되지 않고, 번뇌하지 않으며 자기 길을 의연하게 때로는 ‘척’ 하며 갈 것임을 화자는 말한다. 머리털이 약쑥처럼 그냥 희어지는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 것이다.
이 작품에선 ‘척’이라는 의존명사를 반복하여 주제를 한층 선명하게 떠올리고 있음을 본다.
복사꽃, 봄 품으니 여기가 무릉도원
찰나에 생명의 촉 발그레 꺼내드네
무색계, 색계가 모두 장엄하게 들었다.
-남진원의 <방터골의 봄>전문
남진원 시인의 <방터골의 봄>이다.
방터골은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에 있는 골짜기로 나와 있다. 방터골의 복사꽃 봄 풍경을 무릉도원(武陵桃源)으로 찬양한다.
얼마나 아름답기에 여기가 무릉도원이라 했을까? 무릉도원은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 )에 나오는 선경(仙境)을 일컬음이다.
때문에 방터골의 봄은 불가에서 말하는 무색계(無色界), 색계(色界)가 모두 장엄하게 물이 들었다고 극찬한다. 무색계는 물질을 초월한 정신세계요, 색계는 욕계(欲界)에서 벗어난 깨끗한 물질의 세계이니 그 청정함이 가히 무릉도원에 비유할 만하겠다. 복사꽃 곱게 물든 방터골의 봄을 도연명이 노닐던 무릉도원으로 격상한다.
남진원 시인은 현재 남진원문학관장이며 강원시조시인협회를 이끌고 있다.
이상 봄호에 실린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대체로 중량감 있는 작품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었다. 난해한 작품들이 사라지고 쉽게 읽히면서 생각을 담으려고 노력한 공정(工程)이 엿보였다.
다만 안이(安易)하게 시상을 전개한 작품이나, 너무 깊숙이 들어간 선시(禪詩), 신앙시(信仰詩), 그리고 지나친 시평(時評)으로 오해를 야기할만한 작품들은 평설의 한계가 있어 제외했음을 밝힌다.
다음호에선 더욱 새롭고 감칠맛 나는 생각이 담긴 작품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