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사 34- 부엌의 변천(네이버캐스트 2012.5.30일자에 올린 글)

[김용만]

집(住)은 함께 먹고 자는 식구(食口)들의 생활공간으로, 음식을 만드는 공간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크게 구분된다. 음식을 만드는 공간인 부엌은 시대에 따라 크게 변해왔다. 주거 공간의 변화, 그 가운데 특히 부엌의 변화는 인간 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

부엌과 집

인류는 도구와 불을 사용함으로써 다른 동물들과 큰 차이를 갖게 되었다. 특히 불을 이용해 다른 동물들이 할 수 없는 요리(料理)라는 인류만이 가진 특별한 문화 행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구석기 시대 인류는 동굴 안에 불을 피워 추위와 어둠을 이겨내고, 불에 음식을 익혀 먹었다. 동굴이 없는 곳에서는 불을 피운 자리 주변에 막집을 지었다. 불이 음식물을 익히는데 사용되었음을 감안하면, 이때부터 부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불을 피워놓은 곳이 음식을 만들어 먹고 사람들이 잠도 자며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니, 이곳이 곧 집의 시작이 된 셈이다. 즉 인류가 사는 집은 불을 피우는 부엌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움집과 부엌

구석기 말에서 초기철기시대에 이르는 장기간 동안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움집(수혈주거, 竪穴住居)은 땅을 파고 화덕자리와 저장시설 등을 내부에 두고, 그 상부에 지붕을 덮는 구조의 살림집이었다.

신석기시대에 보편화된 초기 움집은 노지(爐址-화덕 자리)가 집 중앙에 위치한 원형 형태였다. 즉 음식을 만들어 먹는 노지(부엌) 곁에 잠을 자는 방이 있는 형태였다. 노지 주변에는 흙바닥 가운데를 움푹 판 구덩이인 저장공(貯藏孔)을 두었다. 저장공은 음식물의 저장 기능을 한 일종의 창고로, 저장공에 넣어둔 곡식 등을 꺼내어 불에 익혀 먹었으니, 노지 주변이 부엌의 형태를 갖춘 셈이었다. 신석기시대 말 청동기시대 초기에 움집의 규모가 커지고 형태가 장방형으로 변해감에 따라 노지는 집의 한쪽 구석으로 이동하기도 하고, 한 개의 움집 안에 다수의 노지가 생겨나기도 했다. 이런 대형 움집은 대가족이 함께 거주하는 집으로 볼 수 있다. 다수의 노지는 취사, 조명, 난방, 작업 등 기능별로 분화되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부엌의 영역은 움집의 일부에 자리 잡게 되었다. 청동기 시대에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면서, 남성들이 농사일에 매달리고 부엌에서 일하는 것은 여성들이 주로 책임지게 되었다. 사냥에서 잡은 고기 등을 분해하고, 조리하는 일에 남성이 일부 개입하기는 했지만, 수렵의 비중이 줄고 농업의 비중이 커지면서 남성들은 부엌에서 차츰 멀어졌다.

서울 암사동의 신석기 유적지 집터자리.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움집은 노지(화로)가 집 중앙에 위치한 형태였다. 노지는 취사를 비롯해 난방, 조명 등의 기능을 수행하였으며, 근처에 음식물 저장 기능을 갖춘 저장공이 있었다.

야외부엌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터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아궁이를 만들고 음식을 조리하는 것이다. 야외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일은 전쟁터, 사냥터뿐만 아니라, 상시 거주지에서도 일상적인 일이었다. 움집 내부에 불을 두는 것은 취사와 난방, 조명, 제습 등에 유리하지만, 연기와 화재 등의 문제가 있다. 연기는 창을 통해 배출하면 되었지만, 나무와 풀 등으로 만든 움집에서 화재는 늘 문제였다.

야외에 설치된 아궁이. 화재의 염려로 인해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요리는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청동기 시대 주거지 가운데는 지역과 시기에 따라 야외에 노지를 두기도 하고, 노지가 없는 주거지도 생겨났다. 울산 무거동 유적지의 경우 전체 주거지 53개 가운데 47개에는 실내 노지가 있지만, 진두 대평리 어은 1지구 유적의 경우 전체 120개 주거지 가운데 실내 노지는 16개, 야외 노지는 38개로, 움집 안에 노지가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동식 화로로 추정되는 유물도 없는 만큼, 노지가 없는 움집은 여름철 주거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여름철에도 음식의 조리를 위해서는 불이 필요한 만큼, 야외노지에서 불을 피워야 한다. 후기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는 집 3채를 단위로 하여 소형 창고를 공유하고, 창고 주변에서 공동 취사를 한 흔적이 보인다. 이처럼 청동기시대 후기에는 야외 노지에서 여러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취사를 하며 살았다. 따라서 부엌은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공동의 작업장이기도 했다.

부뚜막

초기 철기 시대에 들어오면서 화덕이 없는 집이 거의 없어지고, 화덕의 형태도 달라졌다.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서는 부뚜막이 기원전 1세기경에 등장했다. 부뚜막은 아래쪽에 불을 들이는 아궁이가 있고, 위쪽에는 솥을 거는 구멍이 있다. 화덕은 조명과 난방, 취사 기능을 함께 했지만, 부뚜막은 음식을 끓이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 남쪽 삼한(三韓) 지역의 부뚜막은 주로 서북 벽에 접해서 만들어졌다. [삼국지] <한전(韓傳)>의 ‘부뚜막은 모두 문의 서쪽에 위치한다.’는 기록과 일치한다. 부뚜막 위에는 철기 시대에 등장한 솥이 올려졌다. 솥은 밥을 해먹을 수 있는 도구로 삼국시대에 널리 퍼졌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진정법사(眞定法師- 8세기경 살았던 신라의 스님)는 집이 대단히 가난했는데, 집 안에 재산이라고는 단지 다리가 부러진 솥 하나뿐이었다. 진정은 이를 절에 시주하고, 솥 대신 기와동이(瓦盆)에 음식을 익혀 먹었다고 한다. 가난한 집의 최후의 재산이 솥이라고 할 정도로, 솥은 가장 중요한 조리도구로 등장했다. 솥은 부뚜막과 함께 부엌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와 시설이 되었다.

고구려의 부뚜막. 부뚜막은 부엌 가운데 가장 신성한 장소로, 각종 솥을 올려놓고 음식을 하는 구조물이었다.
부뚜막은 불의 신, 부엌의 신인 조왕신을 모시는 공간이기도 했다.

고구려 유물 가운데 철과 질그릇으로 만든 부뚜막이 있는데, 오늘날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뚜막은 실내는 물론 실외에도 설치되었다. [신당서(新唐書- 1060년경 송나라에서 편찬한 당나라의 역사서)]에는 ‘신라에서는 겨울에 집안에 부엌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삼국시대에도 여전히 여름철에는 실외에서 취사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초기 철기시대에 등장한 기와집은 지배층의 살림집이었고, 일반인들은 여전히 움집에서 살다가, 차츰 초가집을 지으면서 변해갔다. 움집에서 지상가옥인 초가집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북쪽 지역에서는 화로(火爐) 대신 구들을 이용한 난방시설이 생겨났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고구려의 부엌

고구려인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고분벽화 가운데 안악3호분, 평양역전고분, 태성리 1호분, 각저총, 약수리고분, 무용총, 통구12호분, 장천1호분 등에 부엌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부엌은 무덤 벽면의 동쪽(오른쪽)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실제 고구려 주택에서 부엌의 위치를 나타낸다. 삼한 지역의 부뚜막 위치와는 반대였다.

안악3호분의 부엌 그림. 삼국시대 이후 귀족들의 집에서 부엌은 별도의 건물에 자리잡은 반빗간이었다. 고구려의 부엌은 동쪽에 있었으며 작업의 능률을 고려해 방앗간, 우물, 고깃간, 외양간(마구간)과 가까이에 배치되어 있었다.

무용총 벽화에 그려진 음식 나르는 장면. 쌍여닫이문이 달린 부엌은 별도의 건물이었기에, 부엌에서 음식을 한 후 소반에 담아 나르는 과정이 필요했다.

고구려 안악3호 벽화고분에는 오른쪽 곁방에 방앗간, 우물, 부엌, 고깃간, 차고, 외양간, 마구간이 차례로 그려져 있다. 부엌은 저택과는 별도로 독립되어 있었으며, 고깃간 등의 부속시설을 갖춘 거대한 공간을 차지했다. 약수리 고분에서는 부엌과 디딜방앗간이 나란히 그려져 있고, 평양역전벽화분에도 부엌과 방앗간이 나란히 그려있다. 태성리1호분, 팔청리벽화분에는 고깃간이 부엌과 분리되어 있다.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곡식을 빻고, 고기를 요리하기 편리하도록 사람들의 움직이는 길(動線)을 고려해 시설을 배치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각저총과 무용총 벽화에 등장하는 부엌은 쌍여닫이문이 달린 별도의 건물로 그려져 있다. 무용총 벽화에는 부엌문을 열고 나온 시녀 두 사람이 음식을 작은 소반에 담아 가져가는 모습이 보인다. 부엌 내부에는 아궁이와 굴뚝이 달린 부뚜막, 그릇을 놓을 수 있는 가구 등이 보이고, 부엌 왼쪽에 부뚜막이 길게 놓여 있다. 또한 불을 지피고, 음식을 하고, 그릇을 정리하고, 곡식을 빻고, 음식을 나르는 등 여러 일을 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고분벽화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부엌의 내부 공간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부엌은 부유한 귀족들의 집 안에 있던 부엌으로, 주거 건물과 분리된 반빗간이다. 반빗간은 고려는 물론, 조선시대 왕실과 사대부 집에서도 지속되어 온 부엌 형태다. 하지만 삼국시대는 물론 고려시대에도 가난한 백성들은 움집에서 주로 살았다. 여전히 야외에서 취사를 하기도 하고, 부엌과 방이 따로 분리되지 않은 공간에서 사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차츰 초가집이 일반화되면서, 부엌은 방과 분리되었다. 부엌은 차츰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여성들의 전용공간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체로 집의 오른쪽에 부엌을 두었는데, 부엌 설비의 일반적인 형태는 안방 쪽 벽에 부뚜막을 설치하고, 여기에 솥을 거는 것이었다. 부뚜막 맞은편에는 연료를 쌓아두거나, 그릇장을 두거나, 물을 담는 항아리를 배치하는 등 수장(收藏)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또 부엌은 앞마당으로 통하는 입구 외에 뒷마당으로 난 문을 두었다. 뒷마당에는 저장공에서 발달한 창고가 독립된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었고, 저장 식품인 장류(醬類)를 보관하는 장독대 등이 위치했다. 앞마당에 비해 서늘한 뒷마당은 음식을 보관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부엌 옆에는 방앗간을 두기도 하고, 마구간이나 외양간을 두기도 하였다. 소와 말의 먹이가 되는 쇠죽(여물)을 만드는 곳이 부엌이기 때문이었다. 부엌은 일부 지역에서는 정지라고도 하는데, 정지는 부엌과 봉당을 합친 말이다. 봉당은 마루를 깔지 않은 흙바닥으로 된 방으로, 실내 작업을 하기 좋은 공간이다. 부엌은 음식 재료를 다듬는 일뿐만 아니라, 여물을 만드는 등 온갖 작업이 이루어지는 만큼, 별도의 작업 공간이 마련되기도 했다.

경복궁의 장독대. 우리나라 음식에는 다양한 장류(醬類)가 이용되는 만큼, 된장, 간장 등을 보관하는 장독대는 부엌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조리 공간과 식사 공간

움집 안에서 부엌은 조리(調理- 음식을 만드는 과정)와 식사가 함께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주거공간에서 분리된 부엌인 반빗간에서 만들어진 음식은 식사 공간인 방으로 운반해야 했다. 남녀의 일이 확연히 구분된 이후에는 남자들은 부엌에 들어가기를 꺼렸다. 여전히 아랫사람들은 부엌에서 밥을 먹기도 했지만, 이는 신분이 높은 이들에게는 꺼려지는 일이었다. 부엌이 아녀자들의 전용 공간이 됨에 따라, 아녀자들은 부엌에서 몸을 씻기도 했다. 조선시대 결혼을 한 여성들은 시집와서 사흘째부터 부엌에 나가 일을 하는 부엌데기가 되어야 했으니, 부엌은 여성들의 근무처이기도 했다.

온돌과 부엌의 변화

삼국시대에 형성된 반빗간 형태의 부엌은 고려시대에도 큰 변화가 없었으나, 17세기 이후 실내의 난방방식이 화로(火爐)에서 온돌로 급격하게 바뀌면서 부엌도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우선 잠을 자는 공간인 방이 온돌방으로 변화되면서, 난방을 위한 아궁이가 설치되었다. 열효율을 높이기 위해 아궁이 곁에 부엌이 자리하면서, 부엌은 주로 여성들이 많이 사용하는 공간인 안방과 연결되어 버렸다. 부엌 아궁이에서 취사와 난방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 때문에 부엌의 구조가 달라졌다.

수원 화성 행궁에 복원 전시중인 조선시대의 부엌. 온돌방으로 주거 양식이 변화하면서 부엌또한 바뀌었다. 아궁이를 통해 취사와 난방을 해야했기에 부엌은 안방과 구조적으로 연결되었고, 다른 방에 비해 낮아져 작업 환경이 불편해졌다. 조선시대의 부엌은 솥을 놓은 부뚜막과, 그릇을 보관하는 그릇장, 음식에 필요한 각종 도구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부엌은 안방 남쪽에 주로 위치했는데, 이는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불길이 잘 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안방 앞쪽에 부엌과 연결된 벽 때문에 창문을 낼 수 없게 되어, 안방은 다른 방에 비해 어둡게 되었다. 또한 아궁이가 설치된 부엌은 밑으로 푹 꺼진 형태가 되었다. 아궁이가 방 아래쪽에 위치한 관계로, 부엌 또한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부엌에서 만든 음식을 방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다시 위로 올라와야 했으므로, 온돌방의 보급은 부엌의 작업 환경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다.

20세기 부엌의 대변화

부엌의 형태는 20세기에 들어와 또 다시 변화했다. 1930년대에 개량부엌이 등장한 것이다. 과거 부엌에서 문제가 된 것은 연료와 설비였다. 땔감으로 취사와 난방을 함께 하면서 발생하는 위험한 환경과 주거공간과 높이가 다른 흙으로 된 바닥이 가장 큰 문제였다. 또한 안방에서 식사와 침실의 기능을 다른 가족과 공유하는 점도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개량부엌은 입식 조리대와 개수대, 부뚜막이 함께 공존하는 형태였다.

창덕궁의 서양식 부엌. 창덕궁 내 왕비의 거처인 대조전 서쪽에 위치한 수라간으로, 내전(內殿)의 음식을 장만하던 곳이 1917년 화재로 불타자, 일본인들이 서양식 부엌으로 개조했다. 실내에는 오븐 등의 부엌살림이 있고, 벽면은 흰색 타일로 되어있다.

현대의 부엌. 별도의 건물이 아닌, 집 안에 위치해 있으며 거실과 가장 가까워졌다. 때문에 가족생활의 중심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출처: gettyimages>

1950년대의 부엌에서 가장 큰 변화는 땔감 대신에 연탄을 연료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부뚜막 형태에 익숙했던 사람들을 위해 부뚜막 형태의 연탄 아궁이가 그대로 이용되었다. 1957년 가스레인지가 도입되었으나 처음에는 사용이 미비했고, 취사 보조용으로 널리 사용된 것은 석유풍로였다. 부엌의 변화를 가져온 또 하나의 요인은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도시의 상수도 보급이었다. 상수도가 보급되면서 수도시설이 마련되어 타일로 마감한 개수대(Sink)와 조리대가 등장했다.

1970년대는 가스와 전기, 수도의 일괄적인 보급과 관리 시스템을 갖춘 아파트가 대중화되었는데, 기존 주택과 가장 크게 다른 곳은 부엌이었다. 스테인리스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등을 갖춘 부엌은 거실과 가까워졌고, 식탁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입식 부엌이었다.

물론 1970년대까지도 도시에서 취사와 난방용으로는 연탄이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부엌의 구조는 연탄 사용에 적합하도록 설계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입식 부엌이 편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의 부엌은 방과 마루보다 낮은 반지하에 위치했고, 마루 아래에는 지하실이 만들어져 연탄을 보관했다. 반지하인 부엌은 연탄을 지하실에서 꺼내 사용하기에 유리했다. 부엌 바닥은 흙이 아닌 타일이 깔려 있고, 석유풍로 등 보조 취사도구가 사용되어 전통 부엌과는 크게 달랐지만, 식사는 여전히 안방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1980년대를 지나면서 차츰 연탄을 대신해 석유와 가스로 연료가 변하고, 냉장고,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등 전자기기의 보급으로 부엌은 급속히 입식 부엌으로 변화되었다.

최초의 부엌으로 되돌아온 부엌

최초의 부엌은 집의 중심이었다. 한때 식탁과 분리되었던 부엌은 이제 다시 음식을 만드는 곳과 음식을 먹는 공간이 결합되었다. 또한 주거 공간과 떨어져 위치하던 부엌이 주택의 중심 공간에 위치하게 되었다. 부엌의 공간 변화는 여성의 생활환경을 변화시켜, 여성들의 삶 자체에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가사 노동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여성들은 사회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토대를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부엌은 여성들의 전용 작업장에서 남성들도 드나드는 공간으로 변했다. 요즘 들어 요리를 취미로 여기는 남성들이 많아진 것은, 부엌 환경의 변화가 가져온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부엌은 이제 여성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본래의 자리인 가족생활의 중심 공간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참고문헌: 김광언, [한국의 부엌], 대원사, 1997;주남철, [한국건축사], 고려대학교출판부, 2006;한국고문서학회, [의식주, 살아있는 조선의 풍경], 역사비평사, 2008;임영진, [움집의 분류와 변천], [한국고고학보] 17ㆍ18집, 1985;윤복자 외, [한국부엌의 변천- 구석기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한국주거학회지] 5권 2호, 1994;김경복, [고분벽화에 나타난 고구려의 부엌과 식사풍습], [한국사학보] 39집, 2010;함한희, [부엌의 현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선택들], [정신문화연구] 25권 1호, 2002;조혜영, 조현신, [페미니즘시각에서 본 1970년대 이전 한국 부엌의 공간변화], [기초조형학연구] 13집, 2012.

글 김용만 /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글쓴이 김용만은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삼국시대 생활사 관련 저술을 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한국고대문명사를 집필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 [세상을 바꾼 수레],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 [광개토태왕의 위대한 길] 등의 책을 썼다.

발행일 2012.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