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祖神聖大王(12)
癸巳(十六年 933秊)
<後唐 長興四年, 契丹 天顯八年>
○ 春三月에 唐이 遺大僕卿王瓊과 太府少卿楊昭業하여 來冊王하여 爲特進檢校太保使 持節玄菟州都督 上柱國充大義軍使하고 仍封高麗國王하며 賜曆日․銀器․匹段하며 詔封妃柳氏하여 爲河東郡夫人하다 又詔三軍將吏하여 諭以冊王之意하고 遂頒曆하고 始行唐年號하다
○ 봄 3월에 후당에서 태복경(太僕卿) 왕경(王瓊)과 태부소경(太府少卿) 양소업(楊昭業)을 보내와서 왕을 책립하여 특진검교태보 사지절현도주도독 상주국충대의군사(特進檢校太保 使持節玄菟州都督 上柱國充大義軍使)로 삼고, 이어 고려국왕(高麗國王)으로 봉하였으며, 일력(日曆)ㆍ은기(銀器)ㆍ필단(匹段)을 보내었으며, 조(詔)하여 비(妃) 유씨(柳氏)를 봉하여 하동군부인(河東郡夫人)으로 삼았다. 또 삼군(三軍)의 장수와 이졸(吏卒)에게 알려서 왕을 책봉한다는 뜻을 효유하였다. 드디어 역서(曆書)를 반포하고 비로소 후당(後唐)의 연호를 시행하였다.
○ 夏五月에 征南大將軍庾黔弼이 守義城府한데 王遣使謂曰 予는 慮新羅ㅣ 爲百濟所侵하여 嘗遣將鎭之한데 今聞百濟ㅣ 劫掠槥山城과 阿弗鎭等處라하니 如或侵及新羅國都어든 卿宜往救하라
○ 여름 5월에 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 유금필(庾黔弼)이 의성부(義城府)를 지키는데 왕이 사자를 보내어 이르기를, “나는 신라가 후백제에게 침략당할까 염려하여 일찍이 장수를 보내어 지키게 하였는데, 지금 후백제가 혜산성(槥山城)과 아불진(阿弗鎭) 등을 위협하고 약탈한다고 하니, 만약 신라의 국도(國都)까지 침공하거든 경이 마땅히 가서 구원하라." 하였다.
黔弼ㅣ 遂選壯士八十人하여 赴之라 至槎灘하여 謂士卒曰 若於此遇賊이면 吾必不得生還이라 但慮汝等同罹鋒刃이니 其各善自爲計라하니 士卒曰 吾輩盡死則已니 豈可使將軍獨不生還乎잇가하고 因相與誓以戮力擊賊이라
금필이 드디어 장사(壯士) 80명을 뽑아 달려갔다. 사탄(槎灘)에 이르러 군사들에게 말하기를, “만약 이곳에서 적을 만난다면 나는 결코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너희들이 함께 적의 칼날에 죽을까 염려되니 각자가 잘 계책을 세우라." 하니, 사졸들이 말하기를, “우리들이 모두 죽었으면 죽었지 어찌 장군만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게 하겠습니까?" 하고, 서로 힘을 다하여 적을 치기로 맹세하였다.
旣涉灘에 而遇百濟統軍神劍等한데 百濟軍이 見黔弼部伍精銳하고 不戰自潰라 黔弼이 至新羅하니 老幼ㅣ 出城迎拜泣曰 不圖今日得見大匡이라 微大匡이면 吾其爲魚肉乎니이다 黔弼이 留七日而還이라가 遇神劍於子道하여 大克하여 擒其將七人하고 殺獲甚多라
이미 사탄을 건너자 후백제의 통군(統軍) 신검(神劒) 등을 만났는데, 후백제의 군사가 금필의 군사들이 날래고 용맹스러움을 보고 싸우지도 않고 저절로 무너졌다. 금필이 신라에 이르니, 늙은이나 어린이나 할 것 없이 성 밖에 나와서 맞이하여 절하고 울면서 말하기를, “오늘날에 대광을 뵈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대광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모두 죽음을 당했을 것입니다." 하였다. 금필이 그곳에 머무른 지 7일 만에 돌아오다가, 신검을 자도(子道)에서 만나 싸워서 크게 이겨 그 장수 7명을 사로잡고, 죽이거나 사로잡은 것이 심히 많았다.
捷至하니 王이 驚喜曰 非黔弼이면 孰能如是아하다 及入朝에 王이 下殿迎之하며 執其手曰 如卿之功은 古亦罕有라 銘在朕心하니 勿謂忘之라하니 黔弼이 謝曰 臣職當爲어늘 聖上은 何至如斯잇가 王이 益善之하다
첩서(捷書)가 이르니, 왕이 몹시 놀라고 기뻐하면서, “금필이 아니면 누가 능히 이같이 이길 수 있으랴." 하였다. 금필이 들어와서 뵙자 왕이 어전에서 내려와 그를 맞이하여 손을 잡고 이르기를, “경이 세운 공로는 옛날에도 드물었다. 짐의 마음에 새기고 있으니 이를 잊으리라고 하지 말라." 하였다. 금필이 사례하여 아뢰기를, “신하의 직책에 당연히 할 일인데, 성상께서 어찌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하니, 왕이 더욱 그를 훌륭하게 여겼다.
○ 是歲에 置兵禁官하다
○ 이해에 병금관(兵禁官)을 두었다.
* 병금관(兵禁官): 고려 초기, 융사(戎事)를 맡아보던 관아. 태조(太祖) 16년(933)에 설치하여 관원으로 낭중(郞中)·사(史) 1인씩을 두었다가 뒤에 폐하였다.
甲午(十七年 934秊)
<後唐 潞王 淸泰元年, 契丹 天顯九年>
○ 春正月에 幸西京하여 巡北鎭而還하다
○ 夏五月에 幸禮山鎭하여 下令曰 泰封主ㅣ 毒流下民하고 傾覆社稷하여 予承其危緖하여 造此新邦하니 勞役瘡痍之民이 豈予意哉리오 但干戈未定하여 櫛風沐雨하고 巡省州鎭하여 修完城栅한데 由是男盡從戎하고 婦猶在役하니 不忍勞苦하여 或逃匿山林하고 或號訴官府者ㅣ 不知幾許라
○ 봄 정월에 서경(西京)에 행차하여 북진(北鎭)을 순시하고 돌아왔다.
○ 여름 5월에 예산진(禮山鎭)에 행차하여 영을 내리기를, “태봉주(泰封主)가 백성에게 해독을 끼치고 사직을 전복시켰으므로, 내가 그 위태로운 왕통을 이어받아 새 나라를 이룩하였으니 전쟁에 상처받은 백성을 노역(勞役)시킴이 어찌 나의 본뜻이겠는가. 다만 전쟁이 평정되지 않았으므로 비바람을 무릅쓰고 주(州)ㆍ진(鎭)을 순찰하여 성(城)ㆍ책(柵)을 수리하게 하였는데, 이로 말미암아 남자는 모두 전쟁에 종사하게 되고, 부녀자들까지도 공역(工役)에 나가게 되니, 노고를 견디지 못하여 산림(山林)으로 도망쳐 숨거나 관부(官府)에 호소하는 자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 수 없다.
權勢之家ㅣ 又從而陵暴하니 予以一身으로 豈能家至而目覩아 小民이 所以無所控告而呼籲者也니 宜爾公卿將相食祿之人은 諒予愛民如子之意하여 矜爾祿邑編戶之氓이로되 其衙內無知之輩ㅣ 使于祿邑에 務取斂割剝이면 爾亦豈能知之아 雖或知之라도 亦不禁制하고 民有論訴者라도 官吏ㅣ 更相掩護하니 怨讟之興은 職競由此라
그런데 권세 있는 집들이 또 따라서 능멸하고 포학하게 하니 내 한 몸으로 어떻게 집집마다 가서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겠는가! 백성은 아뢰고 호소할 곳이 없으니 마땅히 나라의 녹을 받는 너희 공경장상(公卿將相)들은 내가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는 뜻을 잘 알아서 너희들 녹읍(祿邑)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러나 만약 관아(官衙) 안의 무지한 무리들이 녹읍에서 매우 지독하게 거둬들이기를 일삼는다면 너희들이 또 어떻게 능히 이를 알 수 있겠는가? 비록 혹 이를 안다고 하더라도 또한 금지하지 않고, 호소하는 백성이 있어도 관리들은 번갈아 저희들끼리 서로 숨기고 도와주니, 원망과 비방하는 소리가 일어남은 주로 이에 말미암은 것이다.
子嘗一一誨之하여 欲使知之者는 增勉하고 不知者는 能誡하여 其違令者는 已別行染卷한데 染卷之後엔 猶以匿人之過로 爲賢하여 而無擧論之者니 善惡之實을 曷得聞知며 如此면 寧有守節改過者乎아
내가 일찍이 일일이 이를 타일러 이런 줄을 아는 자에게는 더욱 힘쓰게 하고,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경계하도록 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 영을 어긴 자는 이미 따로 염권(染卷)을 행했는데, 염권을 행한 후에도 오히려 다른 사람의 허물을 숨기는 것을 좋은 일로 여겨, 이를 들어 논하는 자가 없으니 선하고 악한 사실을 어떻게 들어 알 수 있으며, 이와 같이 한다면 어찌 절개를 지키고 허물을 고칠 자가 있겠는가?
* 염권(染卷): 죄를 지은 사람의 이름을 문건에 기록함. 또는 그 문건.
爾等은 遵我訓辭하고 聽我賞罰하여 有罪者는 無論貴賤히 罰及子孫하고 功多罪小면 量行賞罰하며 若不改過면 追其祿俸하여 以至終身不齒라
너희들은 내가 훈계하는 말을 준수하고 나의 상벌을 따라서 죄가 있는 자는 귀천을 논할 것 없이 벌이 자손에게까지 미치게 하고, 공이 많고 죄가 적으면 상벌을 참작하여 행하며, 만약 허물을 고치지 않으면 그 녹봉을 추탈(追奪)하여 종신토록 벼슬의 반열에 끼이지 못하게 할 것이다.
若志切奉公하여 終始無瑕면 生享榮祿하고 後稱名家하여 至於子孫히 優加旌賞이라 此則非但寡人在日이요 傳之萬世하여 以爲今範이라
人有爲民陳訴하여 勾喚(召喚)不赴는 必令再行勾喚하여 先下十杖하여 以示不從令之罪하고 方論所犯이라 官吏ㅣ 不遵此令하고 故爲淹滯하면 計日罰責하며 又有怙威恃力하여 令之不可觸者는 以名聞하라
만약 뜻이 나라를 위하는 데 간절하여 평생토록 잘못이 없으면 살아서는 영화와 녹을 누릴 것이요, 죽은 후에는 명가(名家)라 일컫게 되어 자손까지 우대하여 포상을 내릴 것이다. 이것은 다만 과인이 살아 있을 때 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전하여 규범으로 삼을 것이다.
백성에게 고소를 당하여 소환하였는데 오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재차 소환하여 먼저 곤장 10대를 쳐서 영(令)을 따르지 않은 죄를 다스리고 나서, 그제야 범한 죄를 논할 것이다. 만약 관리가 이 영을 준수하지 않고 고의로 지체하면 날짜를 계산하여 책벌할 것이며, 또 위세와 권력을 믿어 영으로 손을 댈 수 없는 자는 그 이름을 아뢰라." 하였다.
* 정상(旌賞): 공로(功勞)를 드러내어 표창(表彰)함.
○ 秋九月丁巳에 老人星ㅣ 見하다
○ 王이 自將征運州(忠南 洪城)하니 甄萱이 聞之하고 簡甲士五千하여 至曰 兩軍이 相鬪하니 勢不俱全이라 恐無知之卒이 多被殺傷하니 宜結和親하여 各保封境이라
○ 가을 9월 정사일에 노인성(老人星)이 나타났다.
○ 왕이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운주(運州 충남 홍성(洪城))를 정벌하니, 견훤이 이 소식을 듣고 갑사(甲士) 5천 명을 뽑아 이르러 말하기를, “양편의 군사가 서로 싸우니 형세가 양편이 다 보전하지 못하겠소. 무지한 병졸이 살상을 많이 당할까 염려되니 마땅히 화친을 맺어 각기 국경을 보전합시다." 하였다.
王이 會諸將議之하니 右將軍庾黔弼曰 今日之勢는 不容不戰하니 願王은 觀臣等破敵하고 勿憂也라하고 及彼未陣에 以勁騎數千으로 突擊之하여 斬獲三千餘級하고 擒術士宗訓과 醫師訓謙과 勇將尙達․崔弼하니 熊津以北三十餘城이 聞風自降하다
왕이 여러 장수를 모아 의논하니 우장군(右將軍) 유금필(庾黔弼)이 아뢰기를, “오늘날의 형세는 싸우지 않을 수 없으니, 임금께서는 신들이 적군을 무찌르는 것만 보시고 근심하지 마소서." 하였다. 저 편에서 미처 진을 치기 전에 강한 기병 수천 명을 거느리고 돌격하여 3천여 명을 목베고, 술사(術士) 종훈(宗訓)과 의사(醫師) 훈겸(訓謙)과 용맹한 장수 상달(尙達)ㆍ최필(崔弼)을 사로잡으니, 웅진(熊津) 이북의 30여 성이 소문을 듣고 스스로 항복하였다.
○ 是歲에 遣大相廉相하여 城通海鎭(平南 平原郡 永柔)하고 以元甫才萱으로 爲鎭頭하다
○ 西京에 旱蝗하다
○ 이해에 대상(大相) 염상(廉相)을 보내어 통해진(通海鎭)에 성을 쌓고, 원보(元甫)인 재훤(才萱)을 진두(鎭頭)로 삼았다.
○ 서경에 한재(旱災)와 충재(蟲災)가 있었다.